'흑백요리사2' 우승자 최강록 셰프의 입에서 '도파민 충전'이라는 말이 나왔다. 의외였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 우승 이후 11년, 다시금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도전했고 방송 중반부에 탈락했다. 그리고 1년 만에 다시 재도전에 나섰다. 올라가면 '본전', 떨어지면 '망신살'인 재도전에 임한 이유로 '도파민'을 언급한 것이다. 1시간 여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야, 그가 말한 도파민의 의미는 우리가 익히 쓰는 개념과는 조금 다른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도파민'은 '동기 부여' 혹은 '자기 점검'과 같은 말이었다.
"재도전이라서 좋았다"가 아닌 "재도전해서 좋았다"라는 마지막 회 멘트의 의미도 일맥상통한다. 두 문장은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후자는 능동의 성격을 띤다. 최강록은 자신의 이름을 건 두 번째 도전을 스스로 선택했고,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자칭 '최고'라 자부하는 100명의 요리사가 3억 원의 상금과 이름을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 미슐랭이라는 훈장도, 줄 서는 식당이라는 유명세도 눈을 가린 심사위원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오로지 '맛'으로 승부한다. 그리고 그 맛에는 만든 이의 '의도'와 '전략'까지도 보여야 한다.
우승자 최강록의 필살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조림'이었다. 시간을 들여 마냥 조리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조림'은 요리의 기술 중에서도 고난도에 속한다. 시시각각 불조절을 해야 하고, 재료의 익힘 정도를 파악해 최상의 맛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림인간' 최강록에게 요리란 '시간과 귀찮음이 만들어내는 예술'이었다.
최강록은 달변가보다는 눌변가에 가깝다. 쓸데없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아니라 해야 할 말을 최소화 함으로써 상대의 경청과 공감을 끌어내는 방식의 대화법이었다. 인터뷰에 나선 그는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엔 항상 헛기침과 '예...'로 시작하면서도 필요한 말은 모두 다 했다.
Q. 우승해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
A. 앞으로 계속해서 나이를 먹을 텐데 한 10년 정도는 힘을 내서 살아가야 할 이유? 원동력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Q. 결승 미션 '나를 위한 요리'에서 깨두부를 넣은 국물 요리를 한 이유가 궁금하다.
A.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음식이었다. 보통 '스텝밀'이라고 한다. 메뉴로는 낼 수 없고 직원들끼리 해서 먹는 음식이다. 이게 결승에 어울리는 음식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미션에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각각의 음식에는 요리를 해야 하는 의미가 있다. 깨두부가 내게 준 의미는 '게을러지지 말자'다. 이게 나이가 들면 잘 안 하게 된다. 힘이 들고 (팔이) 아프니까. 예전에는 거뜬하게 만들었는데 나도 이제는 좀 힘들다.
Q. 시즌1에서 중도 탈락하는 아픔을 겪고도 시즌2에 재도전했다. 전과 달리 시즌2에서는 우승에 대한 욕심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승해야 한다는 목표의식과 당위를 어디에서 찾았나?
A. '히든 백수저'라고 해서 깜짝 등장을 했는데 사실 그런 연출인 줄 알았으면 아마 안 나갔을 거다. 내려가고 싶었는데 너무 높은 데다 올려놓으셔서 점프할 수도 없고... 난감했다. 그런데 올라가서 느낀 게 있다. '흑백요리사' 시즌1이 잘되면서 제 주변에도 여기 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왔던 사람이 또 나온 것에 대한 책임감이랄까.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최대한 많이 올라간 다음에 집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결승전에서 "'척'하면서 살았다"는 고백이, 많은 이들이 울렸다. '스타 셰프'로 10년 간 살아오셨는데 개인적인 결핍을 언제 자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A. 이 이야기를 하자면 '마스터 셰프 코리아'(2013)를 빼놓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조림'을 잘하는 요리사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알게 모르게 가면을 쓴 것 같았다. '흑백2'의 마지막 미션이 '나를 위한 요리'가 아니었다면 자기 고백을 못했을 것 같다. 그런데 마침 그 미션이 나왔고 그런 '척'을 했던 나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Q. 평소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많이 본다고 들었다. 경연 예능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A.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서 도파민 충전이라고 한 건데... 사실 충전이 된다. 살면서 큰 무대는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나가기 위한 가면을 써야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기회가 있다면 잡는 게 좋지 않을까. 후배들에게도 나를 자꾸 욕하지 말고 너도 나가 보라고 말한다. 항상 '대본 있죠?', '짜고 하죠?'라고 묻는데 나가보면 (대본이 없다는 것을) 알 거다. 실제로 나갔다 와서 제 손을 잡고 '힘들었겠어요'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Q. 식당 문을 닫은 이유에 대해서 여러 말이 있다. 진짜 이유는?
A. 사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식당 문을 닫은 건 (임대) 기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시즌1이 잘되면서 기대감을 가지고 온 손님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다행히 엑시트 기회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문을 닫았다.
Q. 2024년에 운영하던 식당을 닫고 휴지기에 들어갔다. 식당을 오픈 계획이 궁금하다.
A. 지금 당장은 계획이 없다. 좋은 기억을 헤치고 싶지 않다. 노년에는 작은 국숫집을 열 계획이 있다.
Q.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읽고 요리에 입문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요리사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면?
A. 나는 요리를 장사의 수단으로 생각했다. 장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음식을 접했다. 그러고 나서 정식으로 음식을 배운 경우다. 거꾸로 간 거지. 장사를 해보니 요리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서른이 다 된 나이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그 나이대에 유학을 가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런데 콤플렉스를 갖고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기왕에 시작했으니까 일본요리와 문화를 잘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콤플렉스를 없애고 일을 하는 게 좋으니까. 요리를 해서 좋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매 순간순간이다. 특히 손님이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 가실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Q. '조림'의 대가로 유명세를 탔다. 센 불에 빠르게 만드는 요리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시간을 들여 느리게 해야 하는 조림 요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A. 저도 있어 보이는 요리를 하고 싶긴 하다. 그러나 '요리가 뭐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좀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 '시간과 귀찮음이 만들어내는 예술'이라고 답하곤 한다. 거기에 걸맞은 조리법이 '조림'이다. 물론 이것이 첫 번째는 아닐 수 있지만 가장 부합하지 않나 싶다. 물론 중식처럼 다이내믹하게 요리하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하다. 아무래도 일본 요리는 좀 정적이지 않나. 일본은 물의 요리, 중식은 불의 요리라고 한다.
Q. 지난해 발간한 책에서 자신의 조림 점수는 51점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A. 인생의 52%가 요리의 비중이라고 쓴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래도 여기서 우승했으니까 이제 53%가 된 것 같다.
Q. 이번 '흑백요리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심사평은? '마셰코'의 심사위원이었던 강레오 셰프와는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 아는데 우승 이후 어떤 말을 해주시던가?
A. 안성재 셰프께서 마지막에 '저에게 최강록 셰프님은 언제나 조림핑이십니다'라고 말씀해 주신 게 기억에 남는다. 앞에서는 (연쇄조림마가 아니라) 연쇄살인마라고 해놓고···.(웃음) 강레오 셰프님에겐 우승 이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Q. 약 10년 간격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10년 후에 또 서바이벌 출연 기회가 온다면 출전할 것 같은가. 혹시 심사위원 제안이 온다면 응할 생각도 있는지 궁금하다.
A. 시즌1 때 함께 출연하셨던 여경래 셰프님을 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싶었다. 지는 것에 굉장한 부담감이 있었는데, 대선배들을 보면서 '저분들도 저렇게 임하는데 나 따위가...' 싶더라.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는 존재였다. 시즌2에선 후덕죽 셰프님이 그런 존재셨다. 10~20년이 지나고 그 나이가 되어도 현업에 있을 때 (심사위원) 제안이 오면, 그런 존재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은 해봤다.
Q. 스포일러 금지 조항 때문에 가족에게도 말을 아꼈다고 들었다. 우승을 알게 됐을 때 가족의 반응이 궁금하다.
A. 딸아이와 마지막 회를 같이 봤는데 다 보고 나서 나를 '툭' 치더라. 배우자한테는 중간에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꾸 외박을 하게 되니까. 가정에 금이 갈 것 같아서 중간에 말했다. 아무래도 초반에 숨기는 게 어렵더라.
Q.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요리사로서 최강록이 생각하는 최강록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요리는 'TT(Time&Temperature)관리'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온도의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요리는 그 숫자를 잘 따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요리사들이 그렇게 한다. 나만의 특별한 것 없다고 생각한다.
Q. 상금 3억 원의 사용 계획은? 10년 전인 '마셰코'때도 우승 상금이 3억이었는데 시세 반영이 안 된 우승 상금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A. 상금은 아직 못 받았다. 노년에 작은 국숫집을 할 생각인데 그때 보태 쓰겠다. 시세 반영은... 네에... 그쵸.(동의의 멋쩍은 미소).
Q. 결승에서 '나를 위한 요리'를 했는데, 만약 최강록의 '나 혼자 먹는 요리'라면? 가장 즐겨 먹고, 좋아하는 음식이 궁금하다.
A. 흰쌀밥에 오이짠지 먹는 걸 좋아한다. 쌀의 당분과 짠지의 염분이 어우러지는 게 개인적으로는 '가장 맛있다'라고 생각한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