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 콘텐츠에서 한 가지 경향이 두드러진다. 바로 '여성과 여성의 관계'가 중요해졌다는 것.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인기를 끌었던 <은중과 상연>이 대표적인데, 우정, 질투, 동정 따위로 정의할 수 없는 두 여자 사이의 복잡함을 탐구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또 여성 버디물 <하얀 차를 탄 여자>나, 다음 달 개봉하는 <프로젝트 Y> 역시 여성-여성 관계에 집중한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물러나 있던, 혹은 이성 관계의 한 축에 머물렀던 그녀들은 이제 서로를 마주 보기 시작한 것이다.한국 넷플릭스 시리즈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자백의 대가>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서사도 치밀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무척 훌륭하다. 그러나 <자백의 대가>를 이끄는 주요한 동력은 두 여성 사이를 오가는, 그 터질 듯이 팽팽한 감정이다. 그 감정을 우리가 익히 아는 단어로 정리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녀들의 마음에 찬찬히 다가가 그 형태와 색채에 대해 말해보기 위하여. 대체 모은(김고은)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안윤수(전도연)가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아래부터는 <자백의 대가>의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해서 읽어주기를 바란다.
이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모은이 윤수에게 어떤 제안을 하는 때부터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윤수를 대신해서 그녀의 혐의를 대신 자백해 주겠다는 제안. 하지만 대가가 있다. 보석으로 풀려나면 자기를 대신해 누구를 죽여달라는 것이다.
스토리의 측면에서 볼 때, 모은이 제안을 한 이유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서다. 그러나 그 제안의 대상이 하필이면 유약하고 투명한 윤수라는 점.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은 그녀라는 점은 의문스럽다. 차라리 일 잘하는 냉혈한과 손잡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극의 진행을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는 이 불투명한 지점 안을 헤매며 이야기를 이어갈 생각이다. 그러니까, 모은은 왜 하필 제안의 상대로 윤수를 택한 것일까.
모은이 윤수를 설득하는 과정은 가스라이팅의 교보재로 써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모은은 윤수의 모성애를 자극해 제안을 받아들이게 하고,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를 착착 진행한다. 예상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일을 성공시키는 그녀의 모습은 신뢰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자아낸다. 모은은 무슨 일이든 해낼 것이라는 신뢰. 그러니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두려움. 모은은 또 윤수를 고립시킨 뒤(이렇게 비윤리적인 계획을 다른 이와 공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를 더 효과적으로 압박한다. 이것은 모은이 윤수를 지배하는 과정과 겹친다.
물론 모은은 자기 목표를 위해 이런 일들을 한다. 그러나 목표물을 지우고 두 여자의 관계만을 놓고 보면 어떤가? 모은은 은밀하게 지배를 시도하고, 윤수가 자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이것이 모은의 또 다른 목표라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 상대가 유약한 윤수라는 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녀의 유약함은 범죄를 수행하기에 불리하지만, (모은이 윤수를) 지배하려 들 때에 유리하게 작동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결말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윤수가 살인을 거부하며 모은의 작업은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지배의 측면에서 보면 모은은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
혹여나 오해는 말아주었으면 한다. 나는 가스라이팅을 통해서라도 사람을 쟁취하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현실에서 그건 죄일 뿐이다). 또 범죄를 애틋하게 낭만화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 작품 안에서, 두 여자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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