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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은 유연하게, 재생은 싸게"…출범 2개월 기후부 5대 과제 [취재파일]

물리적 통합 넘어 화학적 결합으로…전기요금·신규 원전 '고차 방정식' 풀까

■ 알아두면 좋은 용어 설명

▶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란?
NDC는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각 나라가 스스로 정하는 탄소 감축 목표를 말한다. 한국은 2030년 목표를 이미 정했고(2018년 대비 40% 감축), 이번에 2035년 목표를 새로 정했다(53~61% 감축). 쉽게 말해 "우리나라가 2035년까지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줄이겠다"는 국제적 약속이다.
▶ ESS(에너지저장장치):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쓰는 장치. 스마트폰 보조배터리의 대형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SMR(소형모듈원전): 기존 대형 원자력발전소를 작게 쪼갠 형태.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 현장에 설치한다.
▶ LNG(액화천연가스): 천연가스를 액체로 만든 것. 석탄보다 깨끗하지만 여전히 탄소를 배출한다.
▶ CCUS/CCU(탄소 포집·활용·저장):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붙잡아서 땅속에 묻거나(저장) 다른 제품의 재료로 쓰는(활용) 기술이다.
▶ETS(배출권거래제): 기업들이 탄소배출 허가권을 사고파는 제도.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은 돈을 내야 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간담회에서 주요 정책과 현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제가 2차관실 왔다 갔다 하려면 두 번 왔다 갔다 하면 만 보가 넘습니다."

1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기자간담회. 통합 2개월을 맞은 기후부 수장의 이 한마디가 현재 이 조직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환경부와 산업부 에너지 부문을 합친 이 매머드 조직은 물리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여전히 '통합 중'이다.

환경과 에너지, 탄소중립과 산업 성장, 재생에너지와 원전이라는 서로 다른 DNA를 가진 조직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간담회는 그 복잡한 여정의 중간 지점을 보여주는 보고서였다.
 

30+30 에너지믹스…2035년의 그림

"대한민국이 대략 30% 전후의 원전과 2035년까지 30%대의 재생에너지를 믹스할 것입니다. 특히 봄가을철에 재생과 원전만으로 전력을 맞춰야 하는 때가 곧 옵니다. 현재 와 있기도 합니다."

기후부가 풀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에너지믹스다. 김 장관이 제시한 명확한 그림이다. 문제는 이 두 전원의 특성이 정반대라는 것이다. 원전은 한번 켜면 끄기 어렵고(경직성),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하다(간헐성).

"대전제는 석탄발전소와 장기적으로는 LNG를 어떻게 빨리 퇴출시키느냐가 다 붙어있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쓰는 전기는 주로 석탄, 원자력, 천연가스,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로 만든다. 석탄은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다. 그래서 석탄을 줄이고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려는 것이다. 하지만 원전은 24시간 내내 같은 양을 생산하고,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생산량이 달라진다.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핵심 과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간담회에서 주요 정책과 현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전기요금 안 올린다"…재생 단가 전쟁

"재생에너지가 늘어난다고 곧바로 그게 전기요금의 인상 요인으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면 전기요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국제 유가였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전기요금을 올릴 것이라는 우려에 김 장관은 명확히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를 석탄·LNG보다 싸게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현재 태양광 입찰가는 킬로와트시(kWh)당 150원대, 풍력은 160원대 수준으로 점차 낮아지고 있습니다. 육상풍력은 150원 이하까지 낮추는 로드맵을 짜고 있습니다."

정부가 2025년 상반기 재생에너지 입찰에서 제시한 상한가는 태양광 15만 5천742원/MWh, 풍력 17만 6천565원/MWh다. 석탄발전 정산단가(2024년 10월 기준 118원 수준)보다는 아직 비싸다. 김 장관이 강조하는 '재생 단가 전쟁'의 목표는 이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김 장관이 밝힌 태양광 150원대, 풍력 160원대는 'REC(신재생에너지 인증서) 포함 입찰가'다. 이는 실제 발전 비용(SMP)에 정부 보조금 성격의 REC를 더한 금액이다.

"국제 유가가 안정되면서 한전의 이익이 조금 늘어난 상태"라며 "과거에도 재생에너지 요인이 크지 않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달 말 결정되는 내년 1분기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낮게 본 것이다.

그러면서도 업황이 어려운 석유화학·철강업계의 전기 요금 감면 주장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대기업보다 협력 업체가 문제인데, 어떤 기업은 깎아주고 어떤 기업은 안 깎아주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원전의 변신…경직에서 유연으로

"최근에는 원전도 경직성을 최소화하고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R&D를 합니다."

김 장관은 원전 운영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예고했다. 특히 봄과 가을철 대응이 핵심이다.

"기존 것도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특히 봄과 가을철에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 수요가 커버되는 그 시점에 원전을 어떻게 유연하게 할 거냐 이 문제가 있어서 그 실험을 실증합니다."

봄·가을에는 날씨가 좋아 태양광 발전이 잘 되는데, 원전까지 더하면 전기가 너무 많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원전 출력을 낮추는 방법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원전의 출력 조절, 즉 탄력 운전(자동차로 치면 엑셀을 밟았다 뗐다 하며 속도를 조절하는 것) 프랑스에서 35년 넘게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 원전은 재생에너지 출력 변동에 맞춰 매일 50~100% 사이로 출력을 조절한다. 국내는 한전원자력연료가 2025년 6월부터 2028년까지 기술을 개발하고, 2030년대 중반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ESS(에너지저장장치)가 핵심 카드다.

"ESS의 가격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낮아지고 있고 안전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ESS를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점차 간헐성을 보완해나갈 수 있습니다."

ESS는 2017년 이후 화재 사고가 잇따랐지만, 충전 제한과 제조 공정 개선으로 최근 안전성이 크게 향상됐다. 실제로 기후부는 ESS 보급 2차 공모에서 국내 산업 기여도를 배점에 반영했고, 그 결과 배터리 3사가 국내 생산을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양수발전도 주목할 대안이다.

"기존 댐이 있는 곳에 하부댐을 짓거나 상부댐을 지을 곳을 찾고 있습니다. 아직 발표는 안 됐지만 기존 양수댐 정도의 효과를 갖는 양수댐 위치가 몇 군데 확인되고 있습니다."

양수발전은 전기가 남을 때 물을 위로 퍼 올렸다가, 전기가 필요할 때 물을 떨어뜨려 발전하는 일종의 '물 배터리'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충북 영동 500MW를 시작으로 5개 양수발전소를 순차 준공할 계획이다.

LNG는 브릿지 역할이다.

"LNG는 가급적 줄여나가야겠지만 석탄보다 탄소 배출이 적고 기동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태양이나 풍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비상전원으로 의미 있는 대목들이 꽤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그린수소 발전소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신규 원전 공론화, 올해 안 착수

"전기본 위원들을 조만간 구성하고 킥오프를 별도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원전 2기를 어떤 과정과 공론화를 거쳐 판단할지 프로세스를 결정하겠습니다."

올해 2월 확정된 11차 전기본(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1.4GW급 대형 원전 2기를 2037~2038년 도입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무게를 두는 김 장관은 11차 전기본을 존중하되 공론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올해 내로 기왕에 한수원이 약속한 것도 있고 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그 방식과 절차에 대해 내부 의견수렴을 거쳐서 곧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안에는 없냐"는 질문엔 "닫혀 있지 않다"고 답했다.

김 장관은 SMR(소형모듈원전)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처음에는 '할 거면 대형 원전 하지, 왜 쪼개서 하냐'고 생각했는데, 세계적인 동향을 보니 다른 방향으로 가는 측면이 있다"며 입장 변화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대략 2028년까지 설계하고 2030년까지 허가를 받고 2030년 이후에 설치를 시작해서 2035년 정도에 발전을 해보겠다는 게 현재 계획입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아주 큰 게 아니라서 그 자체로 아주 의미 있는 실험이라고 생각됩니다."
 

NDC 이행이라는 실전…부처 간 실행 전쟁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거는 실제로 실행하는 일입니다."

김 장관이 가장 강조한 부분이다. 2035년 NDC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으로 정했다. 이제 관건은 이행이다. 그는 53%는 배출권거래제(ETS) 중심으로, 61%는 연구개발(R&D) 중심으로 가겠다고 선을 그었다.

"철강은 30만 톤 규모의 수소환원제철을 본격적으로 합니다. 석유화학하고 시멘트는 CCUS, CCU 이쪽은 문재인 정부 때 구상은 됐는데 실행이 안 됐습니다. 수송 분야에 건설기계, 농기계, 선박 이쪽 R&D가 멈춰버렸습니다."

산업별 탄소 줄이기는 이렇게 진행된다.
 
- 철강: 지금은 석탄(코크스)으로 철을 만드는데, 앞으로는 수소로 철을 만든다(수소환원제철). 석탄 대신 수소를 쓰면 이산화탄소 대신 물이 나온다.
- 석유화학·시멘트: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잡아서(포집) 땅속에 묻거나(저장), 다른 제품의 재료로 활용한다. 이게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또는 CCU(탄소 포집·활용) 기술이다.
- 수송: 전기 건설기계, 전기 농기계, 전기·수소·암모니아 선박을 만드는 연구개발을 진행한다.

문제는 이 과제들이 모두 다른 부처 소관이라는 것이다. CCU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석화는 산업통상자원부, 농기계는 농림축산식품부, 건설기계는 국토교통부, 선박은 해양수산부가 담당한다.

김 장관의 해법은 명확하다.

"저희 부서가 직접 R&D를 편성할 수는 없지만 전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NDC 목표 확정 이후에 이행 계획 갖고 부처 간 협의를 쭉 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이행 과정을 점검할 겁니다."

실제로 이행하지 않는 부처에 대해서는?

"정 안 되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앞에서 이 일을 꼭 해야 하는데 잘 안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선박 분야는 기후부가 직접 나서겠다고 밝혔다.

"기후부가 가진 선박 중에 우선 발주할 수 있는 건 전기선박, 수소선박, 암모니아선박으로 발주해서 우리 부서부터 선박을 바꾸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겠습니다."

NDC 세부자료 공개 시점도 밝혔다.

"NDC 결정 과정에서 부처 간 각 감축 분야별 총량과 세부 데이터는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이라도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조만간 국회 보고하는 시점에 맞춰서 세부 내용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초 총론만 발표해 '깜깜이 NDC'라는 비판을 받았던 부분이다.

김 장관은 물리적 통합도 1/4분기 안에 완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라는 걸 그는 강조했다.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거는 2030년까지 이재명 정부가 얼마나 더 실행할 것인가입니다. 디테일 속에 숨어있는 악마를 걷어내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실제로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멋진 보고서를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실제로 세상의 탄소 배출을 줄이고, 탈탄소 녹색문명으로 전환하는 실체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경부와 에너지 부문을 합친 매머드 조직. 만 보가 넘는 물리적 거리는 곧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탄소중립과 산업 성장, 재생에너지와 원전, 환경 보호와 개발 이익 사이의 거리는 훨씬 더 멀고 복잡하다.

"대한민국이 소위 산업혁명기에는 농사짓느라 바빠서 세계 문명을 주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세 번째 문명기는 우리 대한민국이 주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범 2개월, 기후부의 진짜 여정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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