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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성분' 장군 인사 어언 8년…'장군 질 추락' 어찌 하리오 [취재파일]

"비육사 출신 장군 비율이 ○○%까지 올라왔고, 목표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 몇 달만 도와주시오."

문재인 정부 후반기 초여름 어느 날,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오찬 중 단둘이 남게 되자 기자에게 던진 부탁이었습니다. 단단히 준비한 말 같았습니다. 반세기 넘게 육사 출신들의 독주로 육사 순혈주의의 폐해가 심해지던 군부에 문재인 정부가 비육사의 새로운 피를 주입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한 단면입니다.

문재인 정부부터 현재까지 실력보다는 출신을 앞세우는, 일견 보복성으로도 비치는 군 인사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육사 출신들을 대거 솎아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비육사 출신은 내치고 육사 출신들을 선별해 품는 반작용을 일으켰습니다. 계엄의 강을 건너는 이재명 정부는 다시 육사 출신을 내다 버리고 있습니다. 진보 정부는 비육사를, 보수 정부는 육사를 우대하는 공식이 생길 판입니다.

출신 성분과 정치적 잣대로 장군들 줄 세운 지 어언 8년. 실력 본위의 인사 기준이 맥을 못 추니까 고갱이는 가고 껍데기가 남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력 본위의 장성 인사가 자리 잡았다면 12·3 계엄은 없었을 것이라는 후회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육사 출신 장교들의 독점이라는 원죄를 떨치고 실력 본위의 인사 원칙이 복구돼야 할 필요성이 상당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비육사' 우대, 윤석열 정부는 '육사' 우대

첫 별을 다는 준장들에게 지급되는 삼정검

문재인 정부의 첫 장군 인사는 2017년 8월 단행됐습니다. 4성 대장 인사였습니다. 육군 독식의 합참의장 자리에 공군참모총장인 정경두 대장을 앉힌 것부터 파격이었습니다. 참모총장, 연합사부사령관, 1·2·3군 사령관 등 육군의 5명 대장 중 2명은 학군, 3사 등 비육사 출신이 차지했습니다. '비육사의 약진'이라는 기사가 쏟아졌고, 국방부는 "출신 간 균등한 기회"를 강조했습니다.

넉 달 뒤 3성 중장 이하 장군들을 인사했습니다. 준장 진급 77명, 소장 진급 30명, 중장 진급 2명 등이 대상이었습니다. 육군의 경우 준장 진급자 중 육사와 비육사 출신의 비율이 7대 3으로 나타났습니다. 비육사 출신의 비중이 통상 20% 미만이었는데 부쩍 늘어난 것입니다. 국방부는 "3사 및 학군·학사장교 출신 중 우수자를 다수 발탁해 사관학교 편중 현상을 완화했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비육사 출신 우대의 하이라이트는 2020년 9월 학군 출신 남영신 대장의 육군참모총장 기용이었습니다. 1969년 육사 출신 참모총장이 처음 배출된 이래 51년 만의 비육사 출신 총장입니다. "장관, 의장은 내줘도 총장만은 안 된다"는 강박 아닌 강박 속에 살던 육사 출신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결과, 문재인 정부 후반기 육사 출신과 비육사 출신의 장군 비율은 6대 4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육사 38기 김용현의 영향력이 성성했던 윤석열 정부는 육사의 시간이었습니다. 육사 개교 이후 처음으로 찬바람 맞았던 문재인 정부 5년을 한풀이하듯 육사 독식의 습성이 되살아났습니다. 2022년 5월 대장 인사에서 육사 출신들은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연합사부사령관, 지상작전사령관의 직위를 되찾았습니다. 비육사 출신은 2작전사령관만 챙겼습니다. 언론들은 "육사의 부활"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후에도 육군참모총장, 연합사부사령관, 지상작전사령관은 육사 출신 전용이 됐습니다. 후방이라서 중요도가 떨어지는 2작전사령관 한 자리만 비육사 출신에게 허용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6대 4였던 육사 출신과 비육사 출신의 장성 비율은 윤석열 정부에서 거의 8대 2까지 벌어졌습니다. 육사 출신 예비역들도 다시 전성기를 구가하며 국방장관, 국방정책실장, 방사청장 등 국방 고위직을 독차지했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육사' 홀대…'출신 성분' 인사의 결과는?

지난 9월 2일 대장 진급 및 보직 신고를 받는 이재명 대통령

이재명 정부 들어 첫 장성 인사는 지난 9월 1일 대장 7명 전원 교체였습니다. 육사 배제의 예상을 깨고 육사 출신들이 육군참모총장, 연합사부사령관, 지상작전사령관에 임명됐습니다. 비육사 출신은 2작전사령관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앗! 이재명 정부는 출신 성분 안 본다"는 말이 회자됐습니다.

잠시뿐이었습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전체 중장 중 3분의 2, 즉 20명을 교체한 11월 장군 인사를 통해 "민주당 정부에서 육사는 찬밥"이라는 공식이 재확인됐습니다. 육군 중장 진급자 14명 중에서 비육사 출신은 5명에 달했습니다. 국방부는 "비육사 출신 진급 인원이 최근 10년 이내에 가장 많았다", "육사 출신과 비육사 출신의 장성 비율이 3.2대 1에서 1.8대 1로 급변했다"며 뒤바뀐 출신 성분별 판도를 설명했습니다.

12·3 계엄의 뿌리를 뽑는다는 차원에서 육사 출신에게 불이익을 주는 인사 평가를 한 정황이 역력합니다. 이해 못할 바 아닙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육사 배제에 골몰하다 보니 그동안 중요 보직을 거치지 못한 장군들 여럿이 예상을 깨고 진급하는 진풍경이 나왔습니다. 자질을 인정받던 장군들은 무더기로 물을 먹었습니다. 국방부 핵심 관계자는 "중요한 핵심 보직에서 단련된 장군들이 군대를 떠났다", "계엄과 무관한데도 육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한 인원들이 많다"고 한탄했습니다.

'육사 vs 비육사'의 잣대가 군 인사의 기준이 되면서 '유능 vs 무능'의 잣대는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급기야 박안수, 여인형, 이진우, 곽종근 등 자격 미달의 장군들이 별 서넛 달게 됐고, 계엄을 저질렀습니다. 출신 성분별로 특정 정파를 뒷받침하는 군의 독특한 정치화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입니다. 출신 불문하고 실력과 인성, 비전을 갖춘 장군들을 등용하는 통 큰 군 인사가 시행돼야 합니다. 실력 있는 장군의 기용은 안보를 굳건히 하는 첩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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