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도로 튄 '사형 선고' 방글라데시 전 총리, "시위대 1400명 죽었다"…'민주화 영웅'이 몰락한 독재자가 된 이유 살펴보니 [스프]

[딥빽]

딥빽
인도로 도피한 방글라데시 전 총리, 사형 선고…인도 퇴출 후 사형 집행 가능성? 

방글라데시에서 약 21년간 나라를 이끌어 왔던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
최근 사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서 현재 도피 중인 인도에서 퇴출을 당해 이 형을 집행 당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골람 모르투자 모줌데르 | 방글라데시 대법원 고등법원부 판사 (11월 17일)
이 세 가지 혐의에 대해 우리는 그녀에게 단 하나의 형량, 즉 사형을 선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도 외교부는 현재 방글라데시 과도 정부의 요청에 따라서 하시나 전 총리의 신변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검토 중이다 이렇게 입장을 밝혔는데요.

원래 민주화 투사로 알려져 있었던 이 여성 전 총리는 어떤 일이 있었길래 사형을 선고받고 또 현재 도피 중인 인도에서조차 퇴출될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요? 


한때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셰이크 하시나
먼저 이 인물이 누군지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는 한때 방글라데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인데요.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이끈 '건국 아버지'로도 불린 사람입니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하시나 전 총리는요. 다카 대학교라는 곳에서 학생 운동을 이끌었고요. 그러다 1975년 군부 쿠데타로 인해서 라흐만 전 대통령과 가족들이 군에 의해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당시 하시나 전 총리는 그러니까 하시나 전 총리의 아버지와 가족들을 군에 의해서 잃게 된 것인데요.

당시 하시나 전 총리는 동생과 함께 독일에서 유학 중이라서 위험을 피했는데 이후 방글라데시로 돌아와서 반군부 민주화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수차례 투옥과 가택 연금을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민주화 투쟁을 이어왔기 때문에 하시나 전 총리는 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인 칼레다 지아 전 총리와 함께 손을 잡고 민중 봉기를 주도해서 1990년 군부 통치자인 전 대통령 후사인 모하마드 에르샤드를 끌어내리기도 했습니다.

또 2017년에는 미얀마에서 온 로힝야 난민들을 대거 수용을 하고 또 적극적으로 지원책을 찾으면서 국제사회의 좋은 평가를 얻기도 했는데요. 유엔 총회에서 꾸준히 이 문제에 관해서 국제사회의 노력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는 등 하시나 전 총리는 로힝야 난민 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다만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보고서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당국은 난민 캠프에 있는 로힝야 난민들을 무장 단체와 범죄 조직의 폭력으로부터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또 방글라데시 당국은 로힝야 지도자들에게 '정보원' 역할을 하도록 강요해 왔으며, 이로 인해 그들은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납치되거나 살해될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지적도 나왔습니다. 


지난해 반정부 시위에서 최대 1400명 유혈 진압
비교적 초반에는 좋은 인상을 주는 듯했던 하시나 전 총리가 점차 민심을 차츰 잃어 왔습니다.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바로 지난해에 발생을 했는데요. 반정부 시위가 있었는데 이걸 무력 탄압을 했습니다.

지난해 6월 하시나 전 총리가 독립 전쟁 참전 유공자의 후손들에게 공직의 30%를 할당하는 정책을 다시 도입하겠다 이렇게 결정을 했는데요. 

대학생들이 이에 반대하면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강경 진압으로 대응을 했고 그 사이 시위는 전국적인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확산이 됐습니다.
 

특히 지난해 7월 16일 경찰의 발포로 한 대학생이 사망했는데요. 그 대학생이 경찰 앞에서 양팔을 벌리고 서 있었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소셜 미디어를 타고 확산이 되면서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더 커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방글라데시 전국의 대학교에는 무기한 휴교령이 내려졌고요. 이후 정부가 전국의 인터넷과 통신망을 차단을 하고 철도 운영까지 중단을 합니다. 그리고 군대를 동원해서 통행 금지령을 내리는 등 방글라데시 전역의 봉쇄를 본격화했습니다.

유혈 사태가 이렇게 계속되니까 정부가 독립 유공자 자녀의 공직 할당제 비율을 기존에 내세웠던 30%가 아니라 5%로 기존보다 축소를 하는 대법원의 중재안을 받아들였거든요. 그러면서 시위가 일시적으로는 진정이 됐지만요.

시위대 석방을 비롯한 시위대들이 한 요구들이 수용이 되지 않으면서 지난해 7월 29일 방글라데시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다시 진행이 됐고요. 시위대는 하시나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지난해 8월 5일 하시나 전 총리는 사임을 발표하고 인도로 도피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시나 전 총리는 올해 11월 17일 방글라데시 다카 법원의 재판에서 시위의 유혈 진압을 지시한 혐의가 인정이 되어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하시나 전 총리의 '살해 지시' 그리고 '유혈 진압 조장' 그리고 '잔혹 행위 방치' 등 "3가지의 혐의가 유죄로 판명이 됐다"라고 하면서 사형을 선고했는데요.


이번 달 '사형' 판결에 방글라데시 국민 환호
사형 판결이 나온 이후 법정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판결 직후 전국 각지에서 사형 선고를 환영하는 시민들의 행진이 이어졌고요. 일부 단체는 수도 다카의 도심에서 하시나 전 총리의 사형 집행 장면을 보여주는 듯한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현재 방글라데시는 하시나 전 총리의 퇴진 후에 들어선 과도 정부가 통치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방글라데시 과도 정부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무함마드 유누스 최고 고문이 현재 이끌고 있습니다. 무함마드 유누스는 빈곤층에 무담보 대출을 해주는 그라민은행을 설립해서 그 공로로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이 과도 정부에 의해서 하시나 전 총리가 이끄는 옛 여당인 아와미연맹(AL)은요 활동이 금지가 돼서 내년 총선에 출마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참고로 유엔 인권사무소는 올해 2월 보고서에서 정부와 또 비정부 기관이 집계한 사망자의 보고와 또 기타 입수가 가능한 증거를 다 종합을 했을 때 지난해 7월 15일부터 지난해 8월 5일까지 시위 관련 사망자가 최대 1400명에 이를 것이다라고 추산했습니다.

또 이 중 대다수는요. 방글라데시 보안군이 일반적으로 쓰는 군용 소총과 산탄총에 의해서 살해되었고 사망자 중에 약 12%에서 13%가 어린이였다라고 보고서는 분석을 했습니다.

하시나 전 총리는 자신의 사형 판결에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판결 직후 그의 소속 정당 페이스북을 통해서 성명을 냈는데요. 자신에 대한 판결이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비선출 정부가 설립을 하고" 그러니까 그가 이야기하는 비선출 정부라는 거는 현재의 과도 정부를 뜻하는 거죠. 

그리고 "그 비선출 정부가 주재하는 조작된 재판소에서 내려진 것이다"라고 하면서요. 이 판결이 "편향됐고 또 정치적 동기에 따른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이 재판은 자신의 소속 정당인 아와미연맹을 희생양을 삼아서 과도 정부의 최고 고문인 무함마드 유누스와 그의 장관들의 실패로부터 세계의 관심을 돌리려는 것이다, 그리고 과도 정부의 통치 아래 공공 서비스가 붕괴됐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사지브 와제드 | 방글라데시 전 총리 셰이크 하시나의 아들
인도는 항상 좋은 친구였고, 이번 위기 속에서 인도는 사실상 어머니의 목숨을 구해주었습니다. (중략) 그들은(뉴델리는) 이 범죄인 인도 요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도 정부가 그런 불법적인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엔 인권사무소는 하시나 전 총리에 대한 판결을 두고 희생자들에게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사형에는 반대한다 이러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라비나 샴다사니 |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대변인 (11월 17일)
오늘 국제범죄재판소가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에 대해 판결을 내린 것은, 지난해 시위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중대한 인권 침해의 피해자들에게 중요한 순간입니다. (중략) 우리는 또한 사형이 선고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사형에 반대합니다.


방글라데시 시위 배경 ① 독립 유공자 자녀 공무원 할당제
그렇다면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이 시위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고 또 이 외에 예전부터 쌓아왔던 분노, 불만은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이 시위의 근본적인 원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하시나 전 총리가 '독립 유공자 자녀 공무원 할당제'라는 것을 추진했다고 제가 말씀을 드렸는데요. 이 조치는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참가자들의 자녀들에게 공직의 최대 30%를 할당하는 정책입니다. 예전부터 이어져 온 정책인데요.

공무원 채용 제도의 개혁을 요구를 했던 대규모 대학생 반대 시위로 인해서 해당 정책이 2018년 폐지가 됐거든요. 독립전쟁 참가자 자녀에게 공직의 30%를 할당하고 또 여성과 특수 지역 출신에게 각각 10%, 그리고 소수민족과 장애인에게 총 6%를 할당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독립 전쟁 유공자들이 할당제를 복원해 달라고 청원을 하니까 법원은 2024년 6월 정책 폐지 결정을 무효로 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다시 할당제에 대해서 반발을 하게 된 건데요.

국제노동기구가 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요. 방글라데시의 청년 실업률은 16.8%입니다. 이런 높은 실업률도 당연히 문제이지만요.

AP 통신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서는 일부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 기회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더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정부의 일자리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에 비해서 공무원 수는 충분하지가 않은데요. 매년 약 40만 명의 졸업생이 약 3천 개의 공직을 위해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시위가 더 확산이 된 걸로 보입니다.


방글라데시 시위 배경 ② 경제 성장 이면의 '부의 양극화'
그렇다고 해서 이 할당제만 이 시위의 배경이냐, 그건 아닙니다.

하시나 전 총리의 집권 기간 방글라데시가 경제 성장을 이뤄오긴 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 보면 여러 문제가 존재합니다.

하시나 전 총리의 재집권 이후, 코로나19 확산 전까지 방글라데시 경제는 지속적으로 5-7%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여왔습니다.

특히 그 성장의 중심에는 섬유 산업이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 섬유 산업은 연간 470억 달러 정도를 창출하며, 이는 전체 수출 수익의 82%에 해당하는데요.

이러한 경제 성장 이면에 있는 여러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부의 양극화 문제입니다. 하시나 정권은 부자감세와 서민증세, 법인세 인하를 추진해 왔습니다.
 
2023년부터 방글라데시의 재산세 공제 구간은 기존 3억 타카(약 33억 원)에서 4억 타카(약 44억 원)로 높아졌고요. 재산이 4억 타카가 넘더라도 1년간 소득이 없었다면 세금을 내지 않도록 했습니다.

참고로 이런 조치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전체 인구의 10%에 가까운 1천640만 명이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전락한 이후에 나온 조치들이기 때문에, '안 그래도 배분 없는 성장만 외쳐왔는데, 이렇게 양극화를 더 가속화해도 되는 것이냐', 이런 취지의 비판이 제기가 됐습니다. 

또 인권 문제, 특히 여성과 아동의 인권·노동 문제도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가령 방글라데시 여성 인권과 관련해서도, 권위주의적인 방글라데시 정부가 겉으로는 여성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한 국제원조를 받으면서, 반대쪽으로는 정권 유지를 위해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지지를 이용해 여성의 역량 강화를 방해한다는 연구가 오래 전부터 나오는가 하면, 최근에는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에 대한 질적 연구 등 다양한 연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방글라데시의 아동노동 규제를 연구한 한 논문에서는요. 방글라데시와 한국의 노동시간, 임금 등을 비교했을 때, 방글라데시의 미성년자는 계약 시간을 초과해서 더 많이 일하며 적절한 초과노동 임금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위험에도 더 자주 노출될 수 있는 구조적 문제가 크다고 비판했습니다.


방글라데시 시위 배경 ③ 권위주의 독재로 민주주의 저해
하시나 전 총리의 독재 역시 시위 촉발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1996년 선거에서 승리했다가 2001년에 패하고 다시 2009년부터 총리를 맡아서 오랜 기간 집권을 했던 하시나 전 총리는요, 독재로 인해서 민주주의를 저해했다라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2022년에는 폭동 선동 혐의로 야당 사무총장 등 지도부 2명을 체포했고요.

2023년에는 총선을 앞두고 같은 야당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이 20년 넘게 발행을 하던 '다이니크 딘칼'이라는 신문을 폐간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인플레이션을 지적하는 기사를 쓴 신문 기자를 체포하는 일도 벌어지는 등 권위주의적인 통치로 계속해서 지적을 받아왔는데요.

그리고 방글라데시에는 1991년에 처음으로 중립 내각이 구성이 되었지만 하시나 전 총리가 2011년에 앞으로는 이 중립 내각을 구성할 수 없도록 관련 조항을 폐지를 했습니다.

중립 내각이라는 건 쉽게 말씀드리면 비정치인으로 구성이 되는 중립 내각이 90일 동안 총선을 관리하는 겁니다. 이런 조항을 폐지한 하시나 전 총리는 당시 야권에서 비판을 받았고요.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는 결과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최근 고발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하시나 전 총리가 실각을 한 뒤에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올해 11월 20일, 14년 만에 총선 관리를 위한 중립 내각 구성 헌법 조항을 복원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년 2월에 예정이 되어 있는 총선은 우선 현 과도 정부에 의해서 실시가 되지만 앞으로 중립 내각이 총선 과정을 관리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방글라데시 시위 배경 ④ 하시나 전 총리 둘러싼 부패 문제
또 하시나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방글라데시의 부패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지난해에는 하시나 전 총리의 최측근이었던 베나지르 아흐메드 전 경찰청장이 수백만 달러를 착복을 한 혐의로 방글라데시 반부패 위원회의 조사를 받았고요.

또 전 수도사령관인 아지즈 아흐메드도 뇌물 수수 혐의가 보도가 되었습니다.

하시나 전 총리의 전 가사 도우미 역시 무려 3천4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7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한 걸로 알려져 논란이 됐는데요. 그의 자리를 이용해서 로비라든지 입찰 조작이라든지 뭐 뇌물 수수 이런 것들에 관여한 것 아니냐, 이러한 의혹을 받았습니다.
 

또 지난 1월에는요. 하시나 전 총리를 비롯해서 그의 자녀들과 여동생 등 일가족이 수도 다카 교외의 대규모 노른자위 땅을 불법적으로 나눠 가진 혐의로 고발이 됐습니다.

이렇게 방글라데시 사회와 정치권에서 여러 문제들 그리고 여러 불만들이 겹겹이 쌓여왔던 것이 결국 반정부 시위로 분출이 됐고요. 그 시위에서 분출이 된 정확한 민심을 제대로 읽지를 못하고, 혹은 그 민심을 부정을 하고 무시를 한 결과가 이번 하시나 전 총리의 사형 선고로 이어진 겁니다.


반복되는 민주주의 위기..."민주주의는 스스로 굴러가지 않는다"
사실 방글라데시는 유엔 산하 경제사회이사회가 3년마다 갱신하는 최빈국 리스트에서 내년에 빠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봉기를 일으켜서 하시나 정권을 밀어냈습니다. 

여기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만, 결국 하시나 정권이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취한 부자 감세와 법인세 인하, 서민 증세가 '분배 없는 성장'만을 외친 결과를 만들었고, 결국 양극화만 부추기는 역효과를 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하시나 전 총리는 학생 운동가로 시작을 했던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지도자에서 결국 독재 장기 집권의 끝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국가의 수치로 전락을 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확인한 건 민주주의라는 것은 결코 스스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 지속적으로 관리가 되고 감시를 받아야 유지가 되는 시스템이라는 점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더 깊고 인사이트 넘치는 이야기는 스브스프리미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콘텐츠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하단 버튼 클릭! | 스브스프리미엄 바로가기 버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SBS 연예뉴스 가십보단 팩트를, 재미있지만 품격있게!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연합뉴스 - 국내최고 콘텐츠판매 플랫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