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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정치 천재 vs '그럴 줄 알았어'…새 뉴욕시장이 선 갈림길 [스프]

[깐깐남in뉴욕] 김범주 SBS 뉴욕특파원

깐깐남뉴욕에 새로운 역사가 쓰였습니다. 34살 젊은 무슬림 시장이 탄생했습니다. 조란 맘다니. 뉴욕에 있다 보니까 한국에서 나오는 보도 중에 '저게 맞는 거야'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부분이 '맘다니가 이겨서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하지 않는다' 글쎄요, 미국에서 볼 때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뭐 잘 됐어요, 좋아요' 오히려 이런 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맘다니가 당선되면서 사실 더 슬픈 쪽은 민주당입니다. 민주당 주류, 민주당 핵심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겁니다. '맘다니가 민주당 후보 아니었어?' 민주당 주류는 원래 맘다니를 후보로 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맘다니가 개인기로 돌파해서 후보가 돼버린 거예요.

2021년 뉴욕시장 선거 결과를 보죠. 맨해튼, 브루클린, 브롱스 다 민주당이죠. 민주당이 깃발만 꽂으면 시장이 되는 지역입니다. 지난 선거 결과를 봐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7 대 3, 6대 3 정도로 항상 민주당 후보가 이기는 지역이에요.

민주당 주류가 뉴욕 시장 후보로 밀었던 사람은 앤드류 쿠오모라는 인물이에요. 뉴욕 주지사를 10년간 했던 사람이고요. 쿠오모라는 이름에서 느낌이 오듯 이탈리아계입니다. '대부'에 나오던 마피아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뉴욕시는 이탈리아계가 꽉 잡고 있는데 바로 그 이탈리아계고, 보통 가문이 아닙니다. 아버지 마리오 쿠오모도 12년 동안 뉴욕 주지사를 한, 뉴욕 주지사를 대물림한 뉴욕 지방 정치의 어마어마한 가문의 적자 출신이에요.

이 가문이 뉴욕에서 어느 정도의 파워가 있느냐? 뉴욕 북부에 가면 5km짜리 다리가 있습니다. 달려보면 정말 멋있고 대단합니다. 2017년 완공됐는데 당시 주지사인 앤드류 쿠오모가 아버지 이름을 따서 마리오 쿠오모 다리로 지어버립니다.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어요. 그 정도로 뉴욕에서는 파워를 자랑하는 가문의 적자가 뉴욕 시장 후보로 나온 겁니다. '그럼 된 거 아니야?' 그런데 이 사람이 두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쿠오모

뉴욕 주지사를 10년 했는데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뒀습니다. 성추문 사건이 벌어졌고 문제가 커지니까 중도 포기를 하고 내려와 버렸어요. 명예 회복을 하겠다고 이번 뉴욕시장 선거에 나온 겁니다. 그런데 본인이 그게 좀 껄끄러워서였는지 어쨌는지, 선거 운동을 제대로 하질 않습니다. 하는 둥 마는 둥 정책도 별 게 없고 토론도 별로 안 하려고 하고 '나 쿠오모야. 저 잔챙이들 찍을 거야? 나 찍어야지' 이런 느낌을 받을 정도의 선거 운동을 했던 거죠.

뉴욕 시민들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상황입니다. 원래 뉴욕이 민주당 텃밭이긴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잖아요. 트럼프 대통령이 폭주하고 있지 않습니까? 민주당도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죠. 근데 가장 중요한 뉴욕 시장 자리에 저런 사람을 내보내서 저런 식으로 우리를 대한다고? 우리가 우스워? 화가 나기 시작한 거예요.

대안 없어? 꼭 저 사람만 해야 돼? 두리번거리다 보니까 맘다니라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저인망식으로 밑에서부터 열심히 발품 팔아서 선거 운동하면서, 상당히 말을 잘해요. 그리고 뉴욕 시민들이 그동안 굶주려 왔던 삶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합니다. 뉴욕 시민들 입장에서는 대안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뉴욕시 민주당 당내 경선 여론조사 결과 추이입니다. 2월에 맘다니는 출마 선언을 한 뒤지만 쿠오모는 아직 나올까 말까 재던 시절이에요. 쿠오모는 33%의 지지, 맘다니는 1%였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야' 하는 수준의 지지율이었다가 3월 출마 직후에 10%까지 올라왔습니다. 계속 치고 올라와서 22%, 32%로 접전을 만든 다음에 6월 경선에서 뒤집어 버리는 드라마를 만들고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가 된 겁니다. 민주당 주류는 한 방 제대로 맞은 거죠.

그런데 쿠오모가 승복하지 않습니다. '내가 경험도 없는 사람한테 졌다는 건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탈당해서 무소속 출마를 강행합니다. 당내 경선에 불복하고 나와버렸어요. 더 황당한 것은 민주당 당내 후보가 정해졌는데 민주당 주류가 맘다니 지원을 꺼립니다. 심지어 일부 주요 정치인 중에는 당적을 두고 있으면서도 쿠오모 지지를 선언하는 경우도 나왔습니다.

그러면 쿠오모도 정신을 차려야 될 거 아니에요? 이렇게까지 칼을 갈고 나왔으면 뭔가 다른 전략을 구사해야 되는데 쿠오모가 구사한 선거 전략은 단 하나였습니다. 자신의 레퍼토리는 없고 '맘다니는 안 된다. 맘다니는 위험하다. 경험이 없다' 이 공격만 계속한 겁니다.
앤드류 쿠오모 | 무소속 뉴욕시장 후보 (11월 4일)
저는 민주당원입니다. 마리오 쿠오모나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존 F. 케네디처럼요.
만약 급진 좌파 사회주의자가 승리한다면 장기적으로 민주당의 미래에 매우 해로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이 도시도 사회주의 도시가 아닙니다.

물론 그게 일부 불안했던 부유층 등을 자극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저소득층 등이 사는 지역들이 더 똘똘 뭉쳐서 맘다니를 지지해서 결국 50 대 40으로 맘다니가 승리합니다.
맘다니
조란 맘다니 | 뉴욕시장 당선자 (11월 4일)
뉴욕은 앞으로도 이민자의 도시로 남을 겁니다. 이민자가 세우고 움직이는 도시, 그리고 오늘 밤부터는 이민자가 이끄는 도시가 될 것입니다.

보통의 뉴욕시장 선거는 100만 명 조금 넘는 사람들이 투표해서 60~70%를 민주당이 가져가고 끝나는 게임이었어요. 그런데 이번 뉴욕시장 선거는 2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투표장에 몰려와서 맘다니에게 100만 표가 넘는 표를 던졌습니다.

물론 쿠오모가 받은 표도 만만치 않아요. 이걸 그대로 가져오면 예전 같으면 시장이 되고도 남았죠. 그런데 민주당이 뉴욕에서 쿠오모를 앞세워서 하는 것들에 대해서 못마땅했던 수많은 사람들,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모여서 맘다니를 찍었고 결과적으로는 쿠오모와 민주당 주류에게 아픈 패배가 됐습니다.
맘다니

이번 선거의 두 번째 의미, 20~30대 젊은층의 사상 첫 번째 정치적 승리입니다. 취재를 위해 선거 당일 밤에 워치 파티라고 하는 맘다니 지지자 행사에 갔었는데 그 젊은 사람들의 눈빛, 열기가 대단했어요. 열망과 갈망이 끓어오르는 듯한, 진심에서 환호가 나오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데이비드 케슬러 | 뉴욕 시민
저는 이 도시 대다수의 노동자들을 진심으로 대변하는 사람을 원했고 조란 맘다니는 끝까지 자신과 자신의 유권자들에게 진실했습니다. 그 진정성을 지킨 덕분에 승리한 것입니다.

출구조사 결과인데 29살까지의 78%가 맘다니를 지지합니다. 거의 8 대 2 수준이고, 44세 이하도 70% 가까이가 맘다니를 지지했어요. 65세 이상은 쿠오모 지지가 많죠. 젊은 세대가 똘똘 뭉쳐서 맘다니를 찍어서 승리를 만들어 낸 겁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미국은 본인이 가서 유권자 등록을 해야만 투표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동안 20~30대들은 '해봐야 뭐가 달라지겠어' 하고 등록을 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이번엔 나가서 표를 던졌고 맘다니가 당선되는 쾌감을 처음으로 얻게 된 거예요. 미국 전역에서 젊은층들에게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주류 민주당 입장에서는 맘다니의 승리가 자신들이 원했던 대로 뉴욕을 조정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서 20~30대 젊은층의 끓어오르는 욕구를 받아내야 하는 두 가지 숙제가 안겨진 거죠.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남아 있는 겁니다.

맘다니 시장 당선자가 내년 1월 1일에 취임하게 되는데 두 가지 큰 난제가 걸려 있어요. 내부의 적이 있고 외부의 적이 있습니다. 민주당에 맘다니가 안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죠. 40년, 50년 동안 뉴욕에서 정치를 한 쿠오모 가문의 지지자들이 많겠습니까? 이제 4년 정치를 한 맘다니의 지지자들이 많겠습니까?

당내에서 안 되기를 기원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거고, 안 되기를 바라는 것까지는 아닌데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캐시 호컬, 뉴욕시장 위에 있는 뉴욕주지사예요. 많은 권한이 있습니다. 선거 직후 호컬 주지사가 얘기합니다. "공짜 교통 안 된다" 공짜 교통은 주지사가 허락해줘야 됩니다. 예산권이 주지사한테 있어요.

"무상 보육도 안 된다" 무료 버스는 1년에 1조 원이 들어가고 무상 보육은 21조 원이 들어가는데 결국 주지사가 부담해야 될 거거든요.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맘다니에게 태클을 건다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안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민주당 지지 세력 혹은 지지 언론들은 맘다니가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대표적 진보 언론인 뉴욕타임스가 선거 다음날 이런 칼럼을 실었습니다. '맘다니의 승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큰일이 아닐 수 있다' 제목이 뭐냐? '뉴욕의 다음 시장은 민주당원들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기대하지 말라는 겁니다.

며칠 뒤에는 '맘다니는 민주당의 미래가 아니다'라고 칼럼을 써요. 언제든지 헤어질 결심을 지금 이미 하고 있는 겁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맘다니 입장에서는 도와줘야 되는 우군들이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어요.

두 번째, '외부의 적' 트럼프입니다.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공격 대상이 생겼는데요. 뉴욕시장 선거와 함께 치러진 중요한 선거가 2개가 더 있었어요. 뉴저지 주지사와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가 있었는데, 뉴욕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진 게 아니지만 이 두 가지 선거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패를 한 게 맞습니다.

먼저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2021년 공화당이 2% 가깝게 이겨서 주지사가 됐습니다. 접전주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올해 15% 차이로 확 벌어져 버렸어요. 공화당 표 수가 조금 줄어든 반면 민주당 수가 확 늘어났습니다. 뉴저지 주지사 선거도 막판까지 접전이라고 했었습니다. 결과를 까봤더니 역시 14% 차이가 나버렸습니다. 참고 있던 사람들까지 나와서 민주당을 찍었다는 얘기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시장 선거는 기쁠지 몰라도 다른 주요 선거 결과를 보고 나면 '아 이건 뭐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다시 정치적으로 힘을 얻어야 되는데, 맘다니 만큼 좋은 공격 대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맘다니를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하는 거죠.

내년 1월에 만약 취임하고 나서 뭔가 비틀거린다? 민주당도 안 도와주는 시장인데 공격하기 얼마나 쉽습니까? 우군 없는 시장, 젊은 시장, 공격하기에 너무 좋죠. 트럼프 대통령의 강공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맘다니 입장에서는 우호적이지 않은 민주당 내 세력들과 바깥에서 매처럼 노려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이 양쪽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당히 어려운 정치게임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내년 1월에 취임하면 가장 강력한 지지층인 20~30대의 여론을 어떻게든 내 쪽으로 가지고 와서 동력으로 삼아 '우리가 하니까 되네'라는 승리의 맛을 본 20~30대들의 아이콘으로만 떠오를 수 있다면, 뉴욕뿐 아니라 미국 정치 전반에 상당히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본인이 원하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집중할 걸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희망을 품고 지지를 던졌던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무료 버스, 무료 보육, 월세 동결 등 큰 어젠다를 제시했는데 걸맞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실망도 빠를 거예요. 상당히 위험한 게임을 초반에 진행해야 될 겁니다.

두 번째, 민주당은 이번 선거로 반으로 갈렸습니다. 하던 대로 하던 주류의 민주당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이대로 가서 중간선거나 대선 이길 수 있겠냐'라는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반으로 갈라졌어요. 과연 이걸 붙일 수 있겠는가? 어떤 방법으로, 어떤 인물이 떨어져 나간 민주당을 단합시킬 수 있겠는가? 잘 단합시키는 사람이 다음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을 거고요. 이대로 간다면 내년 선거 장담 못 합니다. 3년 뒤 대선 장담 못 해요. 뭘 믿고 찍어주겠습니까?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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