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묘년' 글자가 적힌 목간 출토 당시 모습
경기 양주시 대모산성에서 약 1천500년 전인 삼국시대 때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이 발견됐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목간 가운데 가장 오래됐을 가능성이 제기돼 문헌 자료가 많지 않은 한국 고대사 연구에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이 쏠립니다.
경기 양주시와 재단법인 기호문화유산연구원은 올해 5월부터 양주 대모산성에서 진행한 제15차 발굴 조사에서 목간 3점을 새롭게 찾아냈다고 오늘(20일) 밝혔습니다.
목간은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전, 혹은 널리 보급되기 전에 쓰인 기록 자료로 당대 사람들의 삶과 생활사를 담은 '타임캡슐'로 여겨집니다.
이번에 발견된 목간은 성안에서 쓸 물을 모아두던 집수 시설에서 나왔습니다.
출토 위치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백제가 한성에 도읍을 둔 시기(기원전 18년∼475년) 유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기 조각 등이 지층에서 함께 출토됐습니다.
토기를 비롯해 발견된 유구 대부분은 5세기 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사단은 목간이 백제시대 유물이 쌓인 층, 즉 백제 문화층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올해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연대 정보가 기록된 목간입니다.
한국목간학회 소속 전문가들이 나무판에 남은 글자를 판독한 결과, '기묘년'(己卯[年])이라는 글자가 확인됐습니다.
기묘년은 60갑자 중 16번째 해에 해당합니다.
함께 출토된 유물을 고려하면 439년 혹은 499년 등을 지칭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목간학회 측은 "함께 출토된 토기 연대, 475년 백제의 웅진(지금의 충남 공주) 천도 등을 고려하면 '기묘년'은 439년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간 학계에서는 서울 몽촌토성에서 발견된 목간을 두고 논의가 이어져 왔습니다.
고구려 토기와 함께 발견된 목간은 출토 당시 정황과 자연과학 분석, 역사적 사실을 종합하면 늦어도 551년 이전에 제작됐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한성백제박물관 측은 2022년 조사 성과를 공개하면서 "목간이 551년 이전에 만들어졌다면 삼국시대를 통틀어 국내 최고(最古) 목간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만, 전문가 자문과 적외선 촬영에도 불구하고 글자를 정확히 판독하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이번에 발견된 '기묘년'이 439년으로 특정된다면 몽촌토성 출토 목간보다 100년 정도 앞서게 됩니다.
문자 판독과 자문에 참여한 이재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는 439년 가능성을 언급하며 "국내에서 연도가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목간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나머지 목간 2점 역시 연구 가치가 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앞·뒷면을 합쳐 20자 이상 적혀 있는 목간의 경우, 주검이나 시체를 뜻하는 '시'(尸) 자 아래에 여러 글자가 있으며 '천'(天), '금'(金) 자도 보입니다.
목간이 발견된 주변에서는 점 뼈, 즉 점을 치는 데 쓰던 복골(卜骨)도 여럿 나왔습니다.
양주시는 전문가 자문 결과를 토대로 "중국이나 일본의 부적과 유사한 양상"이라며 "주술 성격을 지닌 목간으로 산성 안에서 제의적 행위가 이뤄졌음을 보여준다"고 전했습니다.
일종의 '부적' 목간과 복골이 함께 발견된 사례는 드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금물노'(今勿奴) 글자가 확인된 목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는 '흑양군은 본래 고구려 금물노군이었는데, 경덕왕(재위 742∼765)이 이름을 고쳤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금물노 또는 흑양군은 현재 충북 진천 일대로 여겨집니다.
목간학회 관계자는 "고구려계로 알려진 지명이 백제 토기와 함께 발견된 목간에 등장한 것"이라며 "그간의 학계 통설을 뒤집을 수도 있는 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양주 대모산성은 최근 발굴 조사에서 목간이 잇달아 출토되고 있습니다.
대모산 정상부에 쌓은 산성은 내부 면적이 약 5만 8천㎡에 이릅니다.
임진강과 한강 유역을 잇는 길목에 자리하며 교통과 군사 요충지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난 2023년 발굴 조사에서는 궁예(?∼918)가 세운 나라 '태봉'(泰封)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이 발견됐습니다.
국내에서 태봉국과 관련한 목간이 확인된 건 처음입니다.
작년에는 '금와인'(金瓦人), '토와인'(土瓦人) 글자가 남아있는 목간, 숫자가 적힌 목간 등이 나와 주목받았습니다.
올해는 기존 조사 구역과 떨어진 성 내부 하단부를 집중적으로 살폈으며, 내년에도 조사를 이어갈 방침입니다.
양주시와 연구원은 28일 오후 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그간의 조사 성과와 목간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사진=양주시·기호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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