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모처럼 모두가 반가워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우리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대해 지급해야 했던 4000억 원 규모의 배상금과 이자 지급 결정을 모두 취소 받은 것입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 1650만 달러 손해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는 기존 판정을 취소한다고 선고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4000억 원 가까운 국고 손실을 막게 된 겁니다. 위원회는 소송 비용 73억 원도 론스타가 부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며 국제투자분쟁을 제기한 지 13년 만에 받아 든 결론입니다. 그런데 희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뜻밖에 여야 간 '숟가락'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공을 세운 사람은 따로 있으니 슬그머니 '숟가락 얹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대 자본 론스타와의 국제 소송을 승리로 이끌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4000억 원 → 0원, 론스타 취소소송 완승...여야 서로 "숟가락 올리지 마"
어제 오후 총리실에 긴급 공지가 뜨면서 기자실이 술렁거렸습니다. '론스타 ISDS 취소 신청'관련 긴급 브리핑을 생중계로 진행하며 김민석 국무총리가 직접 주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취재기자들은 론스타 소송의 주무 부처는 법무부인데, 정성호 법무장관은 배석시키고 김민석 총리가 중앙에 선다는 말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김 총리는 국제분쟁 승소 소식을 전했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ISDS 취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승소' 결정을 선고받았습니다. 취소위원회는 2022년 8월 31일 자 중재 판정에서 인정했던 '정부의 론스타에 대한 배상금 원금 2억 1천650만 달러 및 이에 대한 이자'의 지급 의무를 모두 취소했습니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ISDS 취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승소' 결정을 선고받았습니다. 취소위원회는 2022년 8월 31일 자 중재 판정에서 인정했던 '정부의 론스타에 대한 배상금 원금 2억 1천650만 달러 및 이에 대한 이자'의 지급 의무를 모두 취소했습니다"
당초 1차 판정에서 인정됐던 4000억 원 규모의 정부 배상 책임이 모두 소급해 소멸됐다고 강조하면서, 새 정부가 이룬 쾌거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
"국가 재정과 국민 세금을 지켜낸 중대한 성과이며 대한민국의 금융감독 주권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이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의 성공적 개최, 한미중일 정상외교, 관세협상 타결에 이어 대외 부문에서 거둔 쾌거입니다"
"국가 재정과 국민 세금을 지켜낸 중대한 성과이며 대한민국의 금융감독 주권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이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의 성공적 개최, 한미중일 정상외교, 관세협상 타결에 이어 대외 부문에서 거둔 쾌거입니다"

어젯밤 한바탕 론스타 관련 소식이 TV 저녁뉴스를 장식한 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SNS에 글을 올렸습니다. 법무장관 당시 론스타 취소소송을 낸 자신을 향해 '근거 없는 자신감', '희망고문'이라고 비아냥대며 발목 잡기만 하던 민주당과 관련자들은 황당한 자화자찬 대신 반성하고 국민 앞에 사과부터 하라는 내용입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SNS 中
"저를 상대로 소송 지면 당신이 이자를 대신 낼 거냐고 압박했습니다..서울시 때리기에 전념하던 김민석 총리가 뜬금없이 직접 브리핑했던데, 속보이게 숟가락 얹지 말고 대표로 사과하십시오"
"저를 상대로 소송 지면 당신이 이자를 대신 낼 거냐고 압박했습니다..서울시 때리기에 전념하던 김민석 총리가 뜬금없이 직접 브리핑했던데, 속보이게 숟가락 얹지 말고 대표로 사과하십시오"
국민의힘은 수석대변인 명의로 '숟가락 얹는 대신 대장동 7,800억부터 환수하라'는 논평을 냈습니다. 당 지도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의식해서인지 '한동훈'이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논평 中
"송기호 현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은 "취소 절차에서 한국 정부가 이길 가능성은 제로"라고 단언하며 지난 정부를 공격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성과라고 포장하고 있습니다"
"송기호 현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은 "취소 절차에서 한국 정부가 이길 가능성은 제로"라고 단언하며 지난 정부를 공격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성과라고 포장하고 있습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구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적인 성과와 더욱 빛나게 된 대한민국을 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은 야당의 '숟가락' 논평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강득구 의원은 SNS에 "보수 진영은 또 '숟가락 얹기다'라며 억지 프레임을 들고 나오지만, 이번만큼은 그 어떤 프레임으로도 덮을 수 없는 명백한 이재명 정부의 성과"라고 썼습니다. 조상호 법무부장관 정책보좌관은 한동훈 전 대표가 오히려 다른 사람의 공을 가로채려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습니다.
조상호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SNS 中
"한동훈 씨, 23년 말 본인 퇴직 뒤에 변론이 개시됐는데 법무부 직원의 성과를 본인이 뭘 한 것처럼 당겨 가는 건 좀 부끄럽지 않나요?"
"한동훈 씨, 23년 말 본인 퇴직 뒤에 변론이 개시됐는데 법무부 직원의 성과를 본인이 뭘 한 것처럼 당겨 가는 건 좀 부끄럽지 않나요?"

조상호 보좌관은 이번 론스타 취소소송 대응에 직접 참여한 법무부 공무원은 아닙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 재판 변호인 출신으로 법무부에 합류한 뒤 정무적 사안의 대응을 주로 맡고 있습니다.
1차 판정, 론스타 청구액의 4.6%만 인정...'외환카드 주가조작 유죄'가 결정적
과거 론스타 사건을 되짚어보며 중요한 국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론스타는 IMF 외환위기 이후 휘청거리는 한국 금융시장을 파고들어 2003년에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 3834억 원에 매입해 새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불과 9년 만에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을 팔면서 배당과 매각 차익으로 4조 7000억 원을 챙겼습니다. 그러나 론스타는 그것도 모자라, 외환은행을 HSBC에 더 높은 가격으로 팔 수 있었는데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불발됐다며 6조 8천억 원대 보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어왔습니다.
사건을 접수한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는 무려 10년 간 심리를 진행했습니다. ICSID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6월에야 중재 절차 종료를 선언했고, 두 달 뒤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 165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판정했습니다.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의 4.6%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였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우리 정부의 책임을 4.6%만 인정한 '선방한' 소송 결과가 나오게 된 데는 한동훈 전 대표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소송 과정에서 론스타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던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을 한동훈 전 대표가 검사 시절 집요하게 수사해 유죄를 이끌어 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4차례 영장이 기각되는 가운데도 수사를 이어가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에 대해 징역 3년, 론스타에 대해선 벌금 250억 원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이러한 론스타의 유죄 기록을 ICSDI는 중재 판정의 중요한 요소로 삼았습니다. 당시 론스타 사건 중재 판정부가 법무부에 보낸 판정 결정문에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유죄 판결'에 따라 론스타 측의 과실이 인정되므로 배상액을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상당히 괜찮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고'에 나서기로 한 것도, 오늘의 결과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잘한 결정입니다. 아무리 정부 소송이라도 지연 이자만 1000억 원이 넘게 나오는 송사를 계속 진행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국민의 세금이 나가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법무부의 소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피 같은 세금을 한 푼도 유출해서는 안 된다"며 이의제기를 결정한 당시 한동훈 장관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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