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하반기 화제작인 <프랑켄슈타인>과 <세계의 주인>. 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객의 이목을 끌고 있다. 먼저 <프랑켄슈타인>은 기예르모 델 토로의 신작이다. 그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등에서 기묘하고 신비로운 존재, '크리처(괴생명체)'를 중심으로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주었다. 크리처는 얼핏 보아 이질적이며 두려움을 안기지만, 그것의 진심을 꿰뚫어 본 인간은 교감에 성공한다. 두 세계의 만남. 우리는 낯선 존재와 마음으로 접촉할 수 있음을 기예르모는 강변하여 왔다.
한편, 한국영화 <세계의 주인> 역시 꾸준히 호평받아 온 윤가은 감독의 신작이다. 그녀는 <우리들>과 <우리집>에서 섬세하고도 치열한 아이들의 세계를 포착한다. 그녀의 영화에서 아이들은 조금 미숙하지만, 그만큼 투명하고 뜨겁게 마음을 내보인다.
두 편의 영화는 모두 자기 색깔이 뚜렷하며,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결이 다른 둘을 하나로 묶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이 두 편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 그것이 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를 찾아온 두 편의 영화가 동시에 바라보는 곳을 찾아가려 한다. 아래부터 <프랑켄슈타인>과 <세계의 주인>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다.
<프랑켄슈타인>에서 빅터(오스카 아이작)는 슬프고도 오만한 의사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후 죽음을 극복하겠다고 다짐한다. 마치 블록을 조립하듯, 신체를 조각조각 이어 붙이면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믿는 빅터. 그는 과학과 기술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사회를 은유한다.
빅터는 전쟁터에서 죽은 시체를 이용해 생명을 탄생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작품을 혐오한다. 홀로 남겨진 크리처(제이콥 엘로디, '프랑켄슈타인'으로 알려졌지만 이 영화에서 그의 이름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이전의 기록을 살펴보며 자기 탄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다. 그는 시쳇더미에서 태어난 생명. 크리처는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오점일 뿐.
하지만 그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인간이다. 눈먼 노인(데이비드 브래들리)은 그를 '친구'라 부르고, 엘리자베스(미아 고스)는 그와 손을 맞댄다. 부디 용서해 달라는 빅터의 마지막 유언.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그의 과오에 비해 사죄는 너무 약소하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처가 만난 모든 이들은 그에게 생의 의미를 조금씩 일깨워 준다.
크리처는 사실 우리 모두에 대한 비유다. 인간은 별 의미 없이 세상에 나와 시종 방황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삶의 이유를 스스로 찾아야 하며, 찾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다 끝내 실패하더라도 괜찮다는 것. 그 자체로 아름답기에(영화에서 크리처의 움직임은 괴이하지만 아름답다). 그것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세계의 주인>은 쪽지에 관한 영화다. 주인(서수빈)이 받는 성가신, 때론 폭력적인 쪽지. 동시에 그녀의 동생 해인(이재희)이 즐겨하는 놀이가 마술, 그중에서도 종이 뭉치를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이라는 점은 공교롭다. 주인이 학교에서 쪽지를 받으며 과거의 상처를 떠올린다면, 해인은 자기 방에서 마술로 종이를 없애려 하지만 한다(하지만 자꾸 실패한다). 이때 남매의 가슴 한편에 남겨진 어두운 기억은 한 뭉치의 종이로 형상화된다.
그렇기에 영하 후반부에 주인이 손에 들고 있는 쓰레기 뭉치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주인이 그동안 꾹꾹 눌러 온 상처의 더미를 나타내는 것 같다. 밝고 장난기 많은 주인에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감정이 남아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봉사모임 사람들은 한데 모여 쓰레기장 같은 집을 부지런히 청소한다. 또 세차장 신을 포함해 이 영화에는 유독 '청소' 장면이 자주 나온다.
<세계의 주인>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내게 던지는 쓰레기들. 방심하면 자꾸만 쌓이는 마음의 짐. 그것을 마술처럼 없앨 수는 없지만, 깨끗이 치울 수는 있다고. 그걸 함께해 줄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그러니 홀로 힘겹게 감추지 말고, 여기 꺼내 놓으라고. <세계의 주인>은 주인이 맘의 멍울을 세계에 드러내는 과정을 응원하는 영화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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