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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늙으면 하겠다고요?"…인생을 후회 없이 사는 법 [스프]

[오프 더 모먼트] 김사다함 (한복 인플루언서)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보는 잠깐의 '틈'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돌보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성인 4만 4천 명을 상담했던 장재열 상담가가 자신의 삶에서 소진을 겪었던 전문가를 만나 일상 속 멈춤과 쉼의 비결에 대해 묻습니다.
인터뷰어 : 장재열 (상담가 겸 작가, 월간 마음건강 편집장)
인터뷰이 : 김사다함 (한복 인플루언서)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검은 옷을 많이 입는 나라 중 하나가 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오늘의 주인공은 누구보다 시선을 모으는 옷, 한복을 매일 입고 살아갑니다.

유명 패션모델, 피트니스 트레이너, 한복 인플루언서까지.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만 평생 하며 살아온 사람인데, 사실은 내향적이고, 낯도 가리고, 걱정도 많은 성격이라고 말하는 오늘의 주인공 김사다함. 이 아이러니한 삶은 일견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의 이야기에 딱 10분만 더 귀 기울여보면 '시선보다 몇 곱절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누군가의 시선이나 평가 때문에 움츠러든 적이 있는 당신이라면, 오늘 인터뷰만큼은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생각지 못한 의외의 순간에 작은 용기의 씨앗 하나가 움틀 겁니다.
김사다함
장재열(이하 장) :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께 한 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사다함(이하 김) :
저는 늘 한복을 입고 살아가는 '한복 생활인' 김사다함입니다. 여러분, 한복하세요(웃음)

장 : 행복하세요의 응용 버전인가요? 재미있네요. 그런데 보통 자기소개를 할 때 제일 먼저 직업을 말하곤 하잖아요. 변호사입니다, 의사입니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사다함 님은 그런 식의 자기소개는 잘 안 하시겠어요, 아무래도.

김 :
네. 제 직업 자체가 설명이 좀 필요하기도 하지만, 원래도 저는 직업보다 저라는 사람을 드러내는 게 더 맞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가끔 이런 소개도 하는데요. 굳이 비유를 하자면 저는 매미 같은 사람이라고도 해요. 여름 한 철 잠깐 울고 사라지지만, 그 순간은 목청껏 자기 목소리를 내는 존재잖아요. 저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열심히 외치고 싶어요.

장 : 아, 매미라니 재미있네요. 그 비유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김 :
매미가 땅속에서 오래 지내다가 딱 나와서 노래하는 시간이 짧잖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40대가 되어서야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거든요.

장 :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데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김 :
사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저는 오히려 '지금이라도' 목소리를 내게 된 게 더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제가 가진 크론병 때문인데요. 30대 후반에 생긴 자가면역 질환인데, 식도에서 항문까지 어디든 불시에 염증이 생길 수 있어요. 어디가 아플지 모르니까 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이에요. 염증이 심해지면 장이 서로 붙어버려서 장폐색이 오기도 하고, 그럴 땐 잘라내야 하죠. 그러다 보면 장이 점점 짧아져요. 그래서 늘 건강을 조심해야 해요.

장 : 듣기만 해도 쉽지 않은 질병이네요. 그런데 그런 상황이 장애가 된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게 계기가 되었다라… 이 부분은 좀 의아한데요. 일단 그전에, 이것부터 질문을 드리죠. 원래부터 한복이 좋으셨던 건가요?

김 :
네, 사실 한복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아주 오래전이었어요. 중학교 때였나, 할아버지 칠순 잔치에서 어떤 어르신 부부께서 두 분 모두 새하얀 한복 차림으로 오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 아주 곱게 늙으신 모습이랄까요. 그때 '나도 나이 들어서 인생의 말년 시기 즈음에는 저렇게 고운 모습이어야지'라고 생각했죠.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었던 거예요.
김사다함

장 : 그러면 어떤 인생 후반부의 버킷리스트 같은 거였네요? 젊었을 때부터는 아니었고요.

김 :
네. 젊을 때는 전혀요. 제 첫 직업은 모델이었거든요. 18살 때 길거리 캐스팅이 돼서 우연히 시작을 했었는데요. 서울 패션위크 무대에도 서고, 제가 당시에 장발이었는데 나름 희소성이 있어서 모델로는 꽤 알려졌어요. 그런데 모델은 늘 마르고 날씬해야 하잖아요. 얼굴도 타면 안 되고, 그래서 밖에를 거의 안 나갔어요. 그렇게 안 먹고 안 나가고 살다 보니 187cm에 56kg인 상태로 영양 불균형이 늘 기본값이었죠. 그러다 기립성 저혈압이 와서 화장실에서 소변 보다가도 푹 쓰러지곤 했죠.

장 : 그렇게까지 힘들었군요. 부모님이 걱정이 많으셨겠는데요.

김 :
네.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제 스스로도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머리도 싹둑 자르고 모델 생활을 접었어요. 그러면서 운동을 시작했죠. 살려고. 안 그러면 죽겠다 싶더라고요. 저체중으로 군대도 갈 수 없는 수준까지 말랐었는데 운동을 하면서 군대도 갈 수 있을 만큼 건강해졌고, 군 전역 후엔 어느새 트레이너로 일할 수 있을 만큼 운동에 푹 빠지게 됐어요.

장 : 살려고 시작한 게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준 셈이네요? 그게 몇 살 때쯤이었죠?

김 :
30대 초반 즈음이었네요. 20대 땐 모델로, 30대 땐 트레이너로 살아온 셈이죠. 제가 해 보다 보니 너무 좋았고, 저는 늘 좋은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도 함께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이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크거든요. 그런데 운동은 남을 가르치려면 책임감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내 주변 사람들도 건강해져 가는 모습을 보니 성취감도 컸어요. 그래서 자격증도 따고 결국 트레이너가 된 거죠. 제 지식으로 누군가의 몸과 마음이 바뀌는 걸 보는 게 보람 있었거든요.

장 : 그런데 사다함 님은 말씀을 나누다 보니 직업적인 이미지에 비해서는 상당히 내향인으로 보이는 면이 많으신데, 모델도 트레이너도 다 시선을 받거나 하루 종일 대화를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괜찮으셨나요?

김 :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고요함 속에 있었죠. 저는 INFP라서 원래 집에서 혼자 게임하거나 영화 보는 걸 좋아했거든요. 모델일 때도 다른 모델들은 쇼핑을 가거나 클럽을 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소비 자체가 별로 많은 사람도 아니고 기질도 이래서 늘 만화책 보거나 게임하거나 그 정도면 충분했어요. 트레이너 시절에도, 사실 지금도 그런 라이프스타일은 비슷해요.

장 : 그런 분이 애초에 모델 길거리 캐스팅에 응하신 것부터가 너무 신기하긴 해요.

김 :
그러니까요. 신기하죠. 저도 가끔 스스로 놀라요. 근데 처음에는 알바처럼 시작해 본 일이었고, 원래 제가 법대 다니면서 사시 준비했었거든요.

장 : 네? 이야기가 갑자기 그렇게 간다고요? 그건 또 생각지 못했네요.

김 :
네(웃음), 사법고시 마지막 세대였거든요. 로스쿨로 전환되기 전에 준비해서 쳤는데 제 길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생 때 캐스팅돼서 우연히 하던 모델 일을 더 진지하게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임하게 됐고요. 그때부터 조금씩 저도 변화가 쌓여온 것 같아요. 늘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었는데, 모델 하면서는 무대 위 시선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트레이너 하면서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상황에 익숙해졌어요. 그 경험이 쌓여서 지금 다 사용되고 있네요.
김사다함

장 : 그렇다면 사다함 님이 인생의 말미, 그러니까 노년기의 모습으로 아껴두셨던 한복을 지금 꺼내 입고 '한복 생활인'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 계기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한복을 입게 되신 건가요?

김 :
코로나 시기 즈음이었네요. 앞서 말한 크론병이 처음 발병해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다인실 병실에 말기 암 환자분들이랑 함께 배정이 됐어요. 그때 말기 암 환자분들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거죠. 낮에는 괜찮아 보이시다가도 밤만 되면 고통에 시달리고, 심지어 임종 직전의 모습까지 봤거든요. 그때 저는 제 병이 저 정도 병이니까 같은 병실에 배정이 된 거지 않을까 생각해서 심각하게 삶에 대해 다시 생각을 시작했죠. '아, 나도 언제가 생의 마지막일지는 모르는 거다'라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요. 그동안은 '나중에 늙으면 한복 입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이미 늦을 수도 있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죠.

장 : 죽음과 가까이 닿아 있던 경험이 삶의 방향을 바꿨네요.

김 :
맞아요. 그래서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친구에게 전화했어요. '나 한복을 입고 싶다'라고요. 사실 그전에도 한복에 대한 마음은 계속 있었어요. 트레이너 시절에도 생활한복을 입고 트레이너 생활하고 싶다고 했다가 관장님이 깜짝 놀라셔서 접고, 그러다 한복을 입을 계기가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취미로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장 : 아, 그러면 무조건 입어야 되니까?

김 :
그렇죠. 한량무라고(웃음) 그 외에도 전통 악기도 배우고, 콩쿠르도 나가고… 그러면서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어요.

장 : 그만큼 한복이 좋았군요.

김 :
네. 그러다가 결국은 병을 계기로 트레이너를 지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원하던 것을 이제는 더 미루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SNS에 한복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하나둘 관심을 가지면서 지금처럼 알려지게 된 거죠.

장 : 요즘은 이제 시선을 받는 일, 익숙해졌나요? 샤이 가이에서 벗어났나요?

김 :
이건 제 성격이니 여전히 남아있죠. 여전히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는 긴장도 하고, 제 자신을 부풀려서 과장하거나 자랑하는 건 잘 못해요. 아까도 장재열 작가님 오시기를 기다리면서 에어팟 끼고 있었던 거 보셨나요? 뻘쭘함도 잘 느끼고요. 특히 한 명 한 명이 지나갈 땐 괜찮은데 아주 어린 커플은 무적이거든요(웃음). "야, 저거 봐. 저 사람 봐."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말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한복을 너무 좋아하고, 또 한복 진짜 아름답잖아요. 사람들이 더 알고, 느꼈으면 좋겠고 그래서 입는 거죠.

장 : 결국 남의 시선을 즐기는 성향으로 바뀐 게 아니라 여전히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예전에 살기 위해 운동하다 트레이너가 되었듯이 내가 경험한 좋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다는 마음과 후회하지 말자는 마음, 그 두 개가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을 넘어선 거군요.

김 :
맞아요.

장 : 그런데 저는 그것만으로는 다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이 있어요. 제가 사다함 님을 보면서 정말 인상 깊었던 건 한복이나 자태가 아니라 지금 올해 만 40세, 1985년생이시잖아요. 한복 인플루언서만으로는 소득이 충분치 않아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생활상을 SNS에 숨기지 않고 드러내시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팔로워가 많으신 분들은 다 잘 버는 줄 알았거든요?

김 :
많이들 그렇게 아시죠. 사실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잘 버는 척' '잘 되는 척' '협찬 많이 들어오는 척' 해야 그만큼 더 일이 들어오고 단가가 비싸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더라도 필사적으로 숨기기도 해요. 특히 패션, 뷰티 이런 분야는요.
김사다함

장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김 :
글쎄요. 저는 그렇게 심각하게 질문할 일인지 오히려 잘 모르겠네요. 아르바이트하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요? 전혀 아니죠. 제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노동일 뿐이에요.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그걸 드러내는 게 더 솔직하고 건강한 것 같아요. 그만큼 한복 인플루언서가 다른 옷을 입는 인플루언서보다 살아가기 어렵다는 건 우리가 얼마나 한복을 외면하고 있는지에 대한 솔직한 방증이기도 하고요. 저는 카페에서 일하고, 또 그걸로 가끔 돈이 충분치 않은 달에는 김밥 집에서 김밥 마는 알바도 해요. 물론 한복을 입고요. 저는 한복 모델이 아니라 늘 한복을 입는 한복 생활자니까요.

장 : 그런 부분이 저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또래의 중년 남성으로서, 내 집을 사고 집값 상승에 희비가 갈리고, 이제는 좀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나이와 직급이 된 입장에서 정말 신선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김 :
저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누군가는 저를 몽상가, 돈키호테처럼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부끄럽지 않아요. 한복 인플루언서를 하고 싶어 하는 어린 친구들에게도 일부러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거 돈 잘 버는 일 아니다. 알바하면서도 해야 하는 거다." 이런 현실을요. 화려함만을 보고 좇다가 어린 친구들이 좌절하지 않게, 좀 더 신중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말이죠. 각오가 필요한 거예요.

장 : 그러네요. 그런데 또 그 태도 덕분에 오히려 일할 때 당당하게 '저 돈 필요해요, 페이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거겠죠.

김 :
맞아요. 이건 한복과 전통문화 분야의 아직 부끄러운 모습이자 잘못된 관행인데요. 일을 시키면서도 돈을 안 주고 현물로 주려고 해요. 예를 들면 어느 지역의 전통주 관련 축제에서 섭외가 오면 돈을 안 주고 전통주 몇 박스를 저희 집으로 보내고 퉁치는 거예요. 그럴 때 저는 당당히 말해요. "저 여기서 일한 돈을 받지 못하면 또 다른 알바를 하며 살아야 되니까 현물 말고 돈으로 주세요." 그게 오히려 이 분야의 관행을 바로잡고 올바른 구조를 만드는 것 같아요.

장 : 세상에. 2020년대에도 여전히 그런 일이 있다니, 그걸 또 총대를 메시다니 여러 가지 의미로 놀라운데요. 저는 사다함 님 얘기를 들으면서 오늘 인터뷰는 결국 한복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시선과 용기, 그리고 드러냄에 대한 대화였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많이 놓치고 있는 무언가이기도 하고요.

김 :
저도 동의해요. 사실 한복은 그릇이고 본질은 제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좋아요. 모델 때는 장발 남자 모델이라는 어떤 신비한 이미지에 갇혀 있었고, 트레이너 때는 하루 종일 수업을 하며 가르치는 사람으로 바빴는데, 지금은 제 삶을 제가 만든 룰대로 온전히 살 수 있거든요. 많이 벌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걱정을 하지만 이런 삶이 주는 충만감과 행복감은 비교할 수가 없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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