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추운 극지방 북극이 지구상에서 가장 핫한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북극권에 속해있는 미국, 러시아 같은 나라뿐 아니라,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도 북극에 대한 관심을 내비치고 있죠. 이번 정부에서는 북극항로 개척을 대선 공약으로 약속한 만큼 관련해서 내년 예산에 총 5,499억 원을 편성하기도 했어요. 오늘 오그랲에서는 도대체 북극이 왜 이렇게 핫해진 건지, 또 북극항로라는 게 정말 가능성이 있는지 데이터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에게 북극항로가 중요한 이유
일단, 우리나라는 무얼 먹고사는 나라일까요? 바로 수출입니다. 우리나라의 작년 GDP는 1조 8,697억 달러로 전 세계 12위를 기록했죠.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 동안은 세계 10위 안에 위치하면서 10대 경제강국 타이틀을 달았지만 지금은 10위 밖에 속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수출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 GDP 대비 수출 비중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G20 국가들 가운데 3위를 기록할 정도죠.
해외에 물건을 팔 수 있는 방법은 땅으로 가거나, 바다로 가거나, 하늘로 가거나 인데 사실상 우리나라는 섬과 같아서 바닷길과 하늘길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바닷길이 대한민국 물동량의 99%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한 번 유럽에 상품을 내다 판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닷길로 유럽 시장을 노리기 위해선 유럽 최대의 항만인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로테르담까지 갈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수에즈 운하를 통해 지중해를 거쳐 가는 게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 항로는 아시아-유럽 교역의 핵심 통로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그 길목에서 지속적으로 항로를 위협하는 후티 반군 때문에 문제가 많죠.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을 공격해 오고 있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이렇게 위험한 항로를 이용할 순 없으니 대신 다른 우회로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바로 희망봉을 경유해서 대서양을 지나 네덜란드로 향하는 루트죠.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를 통해 두 항로의 이용 현황을 살펴보겠습니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은 꾸준히 증가했어요.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면서 2022년 12월엔 두 항로의 격차가 월간 986척까지 벌어지기도 했죠. 하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엔 이렇게 역전되어 버립니다. 지난 7월엔 희망봉 경로를 이용하는 선박이 1,819척이나 더 많아질 정도로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요.

문제는 희망봉 항로는 수에즈 운하보다 거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더 걸린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해 로테르담항까지 가면 거리는 약 2만 400km 시간은 30~34일 정도 걸립니다. 반면 희망봉을 경유하면 거리는 약 4,000km 늘어나고 시간은 6일 더 걸리죠. 원래 이용하던 경로는 위험해서 이용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대안책은 시간도, 거리도 더 길어진 상황인 거죠.
게다가 한국 기업들 입장에선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갈등도 신경이 쓰입니다. 남중국해에 있는 섬을 두고 중국, 타이완, 필리핀, 베트남 등 여섯 개국의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최근엔 중국 함정이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를 뿌리자 미국 국무부가 규탄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죠. 우리나라 해상 무역의 90% 이상이 바로 이 지역,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항로를 통과하다 보니 골치가 아픈 겁니다. 기존 항로의 불안전성이 점점 심화되면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기존 항로의 대체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게 바로 북극항로일 수 있는 거죠. 아래로 가는 게 아니라 더 위로, 북극으로 가는 거죠.
지구온난화가 준 기회? 북극의 바닷길이 열리고 있다
북극은 남극과 달리 대륙이 아니라 바다입니다. 북극에 보이는 하얀 건 땅이 아니라 북극해의 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이죠. 물론 북극권에 위치한 육지에서 만들어진 민물이 언 빙하도 있겠지만 북극해를 채우고 있는 건 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해빙이 대다수입니다.
이 해빙은 계절마다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추워지는 가을과 겨울철에는 발달했다가, 따뜻해지는 봄과 여름에는 수축하는 식으로요.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를 통해 북극 해빙의 크기를 살펴보겠습니다.

1978년부터 2025년까지 월별 북극 해빙 크기입니다. 북극의 해빙이 가장 작아지는 시기는 9월 초 무렵으로 최대 시점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죠. 북극 해빙의 크기가 가장 쪼그라드는 시점인 9월의 데이터만 가지고 그래프를 다시 그려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최근으로 오면 올수록 해빙 면적이 점점 줄어들고 있죠. 1970년대 말에는 미국 본토 크기만 한 해빙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어요. 이렇게 된 건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지구온난화의 영향 때문입니다.
문제는 북극은 지구 평균보다 훨씬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1980년대 이후를 살펴보면 북극의 평균 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 상승률과 비교하면 세 배 가까이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어요. 그런데 왜 추운 북극이 이렇게나 더 빠르게 뜨거워지는 걸까요? 그 이유는 북극의 눈과 얼음들 때문입니다.

북극에 있는 해빙은 태양빛을 우주로 반사하는 거대한 거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녹아버린다면요? 얼음 밑에 있던 어두운 바다가 노출되고, 그러면 태양빛을 반사하는 양은 줄어들고 흡수하는 양이 늘어나게 됩니다. 게다가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온실효과가 강한 메탄 같은 기체가 배출되면서 상승세가 가속되고 있어요.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북극을 뒤덮고 있던 해빙이 더 많이 녹고 그 영향으로 북극의 바닷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유럽 시장과의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 항로로 북극항로가 떠오르게 된 거죠. 만약 여름철 해빙이 많이 녹았을 때에 북극항로를 이용한다면 그 운송비용은 기존 항로 대비 크게 줄어듭니다.

수에즈 운하 항로를 이용할 경우 우리나라 선박의 운항 비용은 383만 달러 정도로 나옵니다. 거리가 더 먼 희망봉 항로는 418만 달러이고요. 반면 북극항로는 300만 달러 수준으로 운항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북극을 향한 강대국들의 야욕
북극항로의 경제성뿐 아니라 북극 내 에너지 자원도 상당하다는 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많은 국가들이 북극을 전략적 요충지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단 북극권 8개국이 가장 적극적입니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러시아까지 8개 국가들은 1996년에 북극에 관련된 각종 문제를 논의하는 북극이사회를 꾸렸습니다. 북극이사회에선 북극의 환경 보호와 과학적 연구, 또 개발을 하더라도 지속가능한 개발만 논의하기로 합의했어요. 과거 냉전 시기의 북극은 미국과 소련의 잠재적 공격 루트이자, 군사 작전 지역이었지만 냉전이 끝나고 꾸려진 북극이사회에선 북극을 인류를 위해서, 평화롭게 이용하자고 약속한 거죠.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북극이사회에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러시아를 제외한 7개 회원국이 러시아를 보이콧했고, 러시아는 이사회 참여 중단을 선언했거든요. 게다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안보가 불안해진 핀란드와 스웨덴이 연이어 NATO에 가입하면서 북극권이 다시금 절반으로 나뉘어 버렸습니다.
사실 그전부터 러시아는 북극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권을 점점 늘려오고 있었습니다. 과거 소련시절 사용한 북극의 군사기지를 재개하고 새로운 사령부를 세우며 인프라를 확장해 왔거든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가 닥친 이후엔 그 돌파구로 북극항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죠. 그래서 러시아의 북극항로 물동량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1년 311만 톤이었던 러시아 북극항로 물동량은 작년 3,789만 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앞으로 그 규모는 꾸준히 증가해 2028년엔 최대 8,510만 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요. 이렇게 점점 북극항로가 열리고 있지만, 서방의 제재가 풀리지 않는다면 당장 국제 운송로로 활용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중국과의 교역이 북극항로 화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죠. 러시아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중국과의 접점을 더 늘리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북극항로 개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죠.

중국도 사실 나쁠 이유가 없습니다. 중국은 북극권에 속해 있지도 않지만 지난 2018년에 '극지 실크로드'라는 중국만의 북극 정책을 발표하면서 북극 운송로 개척을 추진해 왔어요. 그리고 지난 9월 22일 중국 닝보항을 떠난 선박이 10월 12일에 영국 펠리스토우 항구에 도착하면서 중국 최초로 북극항로 상업 운항을 성공시키기도 했죠.
중국은 단순히 북극항로에서만 러시아와의 접점을 늘리는 게 아니라 북극 내의 군사, 안보 협력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함께 북극해를 합동으로 순찰하기도 하고, 양국 폭격기가 합동으로 알래스카 근처에서 정찰 비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미국은 북극항로가 어느 한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항로가 아니라 모두가 이용가능한 국제 수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면서도 동시에 미국도 북극해 주도권을 확보할 목적에서 말이죠.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야욕도 북극권 내의 미국 영향력 확대로 해석할 수도 있고요.

문제는 미국의 인프라가 너무 달린다는 겁니다. 미국이 보유한 쇄빙선은 현재 3척뿐입니다. 반면 러시아는 41척, 중국은 5척이나 되죠. 최근에 핀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중형 쇄빙선 11척을 공동 건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완성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북극항로의 딜레마... 경제성과 환경 사이
많은 국가들이 북극항로 개척을 위해 뛰어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북극항로에 마냥 장밋빛 미래만 보장된 건 아닙니다. 일단 기존 항로와 비교해서 비용이 적게 드는 건 맞지만 여러 가지 따져보면 경제성이 아주 높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컨테이너 선들은 최종 목적지까지 가면서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항구를 들르며 화물을 싣고 내리며 돈을 법니다. 하지만 현재 북극항로에서는 중간에 들를 항구가 러시아 외에는 없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또한 유빙 충돌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선 무겁고 단단한 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건조 비용도 많이 들고 연료 소모도 커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여전히 북극항로가 기존 항로보다 위험하다 보니 보험비가 많이 발생한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북극항로는 여름과 초가을에만 열리고 겨울에는 운항이 제한될 수 있는 계절 항로라는 것도 걸림돌이 됩니다.
북극항로가 초래할 환경 파괴 역시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중유를 쓰는 대형 컨테이너선이 배출하는 그을음, 이른바 블랙 카본 문제입니다.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는 북극 지역에 배출된 블랙 카본 데이터를 가지고 그려봤습니다.

이 지도는 2021년 북극 지역에 배출된 블랙 카본을 시각화한 자료입니다. 2021년 북극에서 운항한 선박들이 배출한 블랙 카본은 모두 1,529톤입니다.

이렇게 배출된 블랙 카본이 북극의 눈과 얼음에 달라붙게 되면 얼음이 햇빛을 덜 반사하게 되면서 빛을 더 흡수하고, 더 빠르게 녹게 되죠.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스위스의 MSC는 이러한 환경 문제를 이유로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1위 기업뿐 아니라 2위, 3위 기업 모두 환경 파괴와 경제성을 이유로 북극항로 이용을 포기했죠. 일단 국제해사기구 IMO에서는 북극해를 통과하는 선박은 중유를 사용하지 못하고, 운반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한 극지의 환경오염을 최대한 낮추는 연료를 사용하도록 '극지 연료'라는 개념을 도입하려는 논의도 이어가면서 지속가능한 북극항로 이용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수에즈 운하 개통이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해운 허브로 만들었듯이, 북극항로 시대에는 새로운 싱가포르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그 주인공이 대한민국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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