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증시가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2023년 3월에 겪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의 기억이 다시 소환되고 있습니다. 미국 유력 투자은행과 지역은행 몇 곳에서 부실 대출로 인한 손실이 확인되면서, 일시적으로 관련 은행 주가가 폭락하고 S&P500은 물론 유럽 증시도 급락했다가 하루 만에 일단 진정된 겁니다.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분석과 코로나 팬더믹 시점에 풀려나간 막대한 자금이 느슨한 심사를 통한 대출로 곳곳에 스며들어 부실 위험이 있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공존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의 AI 버블 논란과 미국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 속에 새로운 악재가 시장을 크게 흔들 것이라는 시장의 불안 심리 때문입니다.
무슨 상황인데?
잘 나가던 미국 월가의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주가가 현지시간 16일, 10% 넘게 급락했는데 10월 들어 25% 넘게 떨어졌습니다. 5년 만에 가장 큰 낙폭입니다. 자회사를 통해 7억 달러 넘게 대출해 준 미국 자동차 부품업체가 파산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미국 지방은행들 2곳의 부실도 확인됐습니다. 미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의 '자이언스뱅코프', 미 남서부 지역의 '웨스턴얼라이언스' 은행인데, 모두 대출을 제때 회수하지 못하면서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아울러 JP모건체이스의 자회사도 기업에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이달 초 파산을 신청한 바 있습니다.
배경을 보면 최근 미국 내 자동차 담보대출업체와 부품 공급사가 잇따라 파산했습니다. 또 상업용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도 부실화 조심이 나타났습니다. 두 가지 갈래로 우려가 나오는데 하나는 미국 소비경기가 지역 중심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것, 또 하나는 남아있는 대출의 규모가 너무 큰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시장의 눈은 이들 은행의 손실 자체보다도 '대출 방식'에 쏠리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경제 타격을 줄이기 위해 미 통화당국은 막대한 유동성을 시장에 풀었고 초저금리 상황이 오래 지속됐습니다. 주로 2020년부터 약 2~3년 동안입니다. 이 과정에서 뇌관으로 키워온 것이 이른바 '사모신용' 대출 방식입니다. 투자은행이 자회사 형태로 운영하는 자산운용사나 사모펀드가 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 자금을 빌려줄 때는 직접 대출뿐 아니라 예상되는 수익을 미리 유동화한 채권을 매입하는 등의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을 이용합니다. 대출한 기업이 물건을 납품하고
받아야 할 외상대금을 매출채권으로 사주는 방식 같은 겁니다.
일반 은행 자금보다 금리는 높지만 심사기준이 느슨하고, 또 대출 방식은 당사자들만 아는 형태가 많습니다. 언제 누구에게 얼마를 빌려줬는지 비공개가 많아 불투명한 겁니다. 빠른 자금 공급을 위해서인데 경기가 좋고 사업이 잘 될 때는 효율적이지만 그만큼 잠재 위험도 커집니다. 월가의 황제 소리를 듣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인다면 아마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시장의 불안감이 더 커졌습니다. 부실기업이 한두 곳이 아니고 그 영향권에 은행이 더 있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미국 투자은행은 우리의 은행과는 개념이 훨씬 더 큽니다. 개인 예금과 대출도 하면서 기업 채권도 사고 M&A도 주도합니다. 또 현금이 아닌 부동산, 제품자산 등 다양한 자산을 유동화(팔고 살 수 있는 채권으로 만드는 것)해서 파생금융 상품을 사고팝니다. 우리나라도 큰 어려움을 겪었던 2008년의 리먼브라더스 사태도 대형금융사는 물론 중소 은행과 금융사들이 주택담보대출을 해주고 받는 상환금을 채권화해서 금융 상품처럼 유통시키다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벌어졌습니다. 채권을 담보로 채권을 또 만들며 이중, 삼중의 파생금융상품으로 만든 것이 미전역에서 거래되다가 갑자기 부실화하면서,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 됐었습니다.
이번에 우려가 쏠린 '사모신용'은 은행이 일반 고객에게 받은 예금을 대출하지 않고, 연기금이나 조합, 자산가들 같은 전문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고금리로 대출하는 방식이라 미국 금융 감독 당국도 정확한 규모와 위험성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상황을 알아야 보다 엄격한 담보설정이나 지급 준비여력을 갖추도록 강제할 수 있겠죠. 모건스탠리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조 달러였던 이런 사모신용 시장 규모가 작년에는 1조 5천억 달러로 늘었고 이런 추세라면 4년 뒤 2조 6천억 달러에 이를 전망입니다. 한미 관세협상에서 트럼프가 한국에 압박하는 투자 금이 3천5백억 달러임을 비교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16일(현지시간) 급락한 해당 은행들의 주가는 17일 시장에서 일제히 반등했습니다. 걱정은 되지만 지역은행 문제가 시장 전반의 위기로 퍼지지는 않을 것이란 반론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주요 대형은행들이 올해 좋은 실적을 내고 있고 2008년 이후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부실 대출이 통제되고 있다는 겁니다. 시장 분석가들은 주요 은행들이 시스템적으로 안정돼 있다면 특정 은행의 문제는 털어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