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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세 협상, 윈-윈은 가능할까? [스프]

[이브닝 브리핑] 교착 상태 돌파할 한국만의 열쇠

1010 이브닝 브리핑
7일간의 긴 연휴 동안 정부는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의 방미 협상에 이어 주요 실장과 장관들이 회의를 이어가며 한미 관세 후속 협상을 조율한 겁니다. 이달 말로 임박한 경주 APEC에 트럼프는 오지만 실질적인 한미 정상회담이나 관세 합의는 아직 안갯속입니다. 극비리에 양국 협의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최종 고비는 경주에서 만날 두 정상 간 담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내에선 "차라리 25% 관세를 물고 미국에 줄 돈으로 기업들을 지원하자"는 반대 여론도 고개를 듭니다. 반면, 한미 관계는 통상 파트너를 뛰어넘는 상호 의존적 가치로 얽힌 만큼 단순화의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상호 의존이라 함은 한국도 트럼프가 자주 말하는 이른바 '카드'를 갖고 있고 이를 활용한 협상의 지혜를 발휘할 때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APEC까지 긴박한 3주…결렬은 미국도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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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측 예고에 따르면 트럼프는 먼저 일본을 방문하고 29일 방문해 1박만 합니다. APEC 본회의는 31일이니 참석하지 않고 그냥 들렀다가, 시진핑 중국 주석과 주로 만나고 간다는 취지입니다. 다자 외교를 경시하는 스타일이라지만 결국 '관세 합의 서명 안 하는 한국과 할 얘기가 별로 없다'는 압박일 수 있습니다. 막판 일정 변동 여부도 주목됩니다. 이번 방한이 그냥 지나가면 관세 협상은 교착 상태가 길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장 대미 자동차 수출에서 25%를 물며 고전하는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대미 무역에서의 타격이 장기화될 형국입니다. 하지만 백악관도 마음은 편하지 않습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APEC 일정에 합류해 은근한 '반미 연대' 외교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발 관세 전쟁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불만을 결집할 기회가 될 것입니다. 미국에 압박받는 한국을 위로하며 '중국이 있잖아'할 수도 있습니다. 또, 북한은 노동당 창건 기념일 열병 행사에 중, 러 2인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하며 이 연대 흐름에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안 준다고 소원해지기엔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은 적지 않게 필수적 우방입니다. 아마도 트럼프의 참모가 합리적이라면 '돈만 보고 한국을 대해선 안 된다'고 조언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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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다르다'…상업적 합리성의 명분

미국은 한국에 3천500억 달러의 사실상 직접 투자를 원하고 조건도 엄혹합니다.

지난 2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에 보낸 투자 양해각서(MOU)는 ① 한국의 대미 투자액 대부분을 직접 투자 방식으로 하고, ② 투자 수익은 미국 측이 90%를 가져가며, ③ 투자 기한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만료 시점인 2029년 1월로 한다는 내용입니다. 합의 불이행 시 고율 관세 복귀 등 사실상 일본과의 합의를 준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보도로 알려졌듯이, 한국에 요구하는 3천500억 달러는 우리 외환 보유액(약 4천150억 달러)의 80%를 넘습니다. 작년 대미 무역 흑자의 6배가 넘습니다. 물론 그동안 충전되는 외화도 있겠지만, 현 기준으로 3년 내 미국으로 투자한다면 당장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대외 지불 능력이 사라져 사실상 외환위기 상황이 됩니다. 한국 증시 호조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달러 환율이 1천400원대를 훌쩍 넘기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도 이런 불안감 때문입니다.

한국의 요구는 상식적입니다. 먼저, 막대한 달러 유출로 인한 리스크에 대응할 '통화 스와프' 체결입니다. 언제든 액수 제한 없이 원화를 달러로 바꿔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보면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다른 한 축은 '상업적 합리성'입니다. 거액을 투자한다면 투자자로서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정한 수익 배분과 투자 용도에 대한 결정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① 직접 투자 비율은 5%로 줄이고 대신 대출과 보증 한도로 액수를 맞추는 방식, ② 또 원금 회수 전까지 수익의 90%는 한국이 갖고, ③ 투자 기한을 더 늘리는 방식을 최근 미국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의 논리는 기축 통화국인 일본과 한국의 상황은 다르고, 미국 요구대로라면 어차피 국내 반대 여론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 또 국회의 동의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글로벌 기업인 한국 대기업들이 투자 리스크에 상응하는 수익 시나리오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죠. 미국 입장에선 요구 수준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막상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결렬에 대한 부담은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고 다른 명분을 찾는 로드맵도 가능합니다.

다시 주목받는 마스가(MASGA)…'트심' 움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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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현지 시간 4일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만난 직후인 5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미국 조선업 부활을 언급한 게 눈에 띕니다.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의 해군 창건 25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전 세계에서 들어올 수천억 달러 투자와 인력을 통해 조선소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말한 겁니다. 또 "그들이 미국에서 선박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미중의 군사적 경쟁에서 해군 전력의 열세를 의식하고 있는 점이 확실해집니다. 여기에 더해 4일 면담에서 김 장관이 미국 조선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더 구체화해 설득했을 거란 추측이 가능합니다. 조선업 부활 임무를 맡은 상무장관 러트닉을 통해 지난 한미 정상회담을 무난하게 유도하며 파국을 막았던 경험 때문입니다. 3천500억 불 대미 투자와 관련해 미국이 고집하는 조건 대신, 또 한 번 조선업 투자를 협상의 열쇠로 활용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물론 우리 조선업계의 협조가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두 개 중 한 개의 열쇠입니다.

미국이 아쉬운 건 이것…몸통을 흔들어라

또 하나의 열쇠는 무엇일까? 지난 1일 미국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의 방한에 이은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대규모 공급 계약에 활로가 있습니다. 한국이 글로벌 생산량을 압도하는 메모리 칩은 미국에겐 공식화하고 싶지 않은 약점입니다. 오픈AI가 공급을 요청한 웨이퍼 기준 월 90만 장의 반도체 물량은 한국 전체 생산량 110만~120만 장의 대부분입니다. 중국과 군사적 경쟁은 물론 AI 산업 경쟁을 벌이는 미국 입장에선 필수적인 계약인 셈입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반도체 물량의 부족을 절실히 경험한 미국은 유사시 메모리 칩 공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한국이 미국이 요구하는 물량을 대려면 생산시설 확장이 필요한데 미국은 내심 해당 생산을 미국 영토 안에서 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내 반도체 생산시설이 한국의 절대카드라는 점에서 미국 내 생산은 전략적으로 조절해야 합니다. 용인, 평택의 반도체 인프라는 계획대로 추진하면서 미국이 원하는 걸 탄력적으로 수용하며 압박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관세 협상이라는 몸통을 보이지 않게 흔들 수 있는 카드인 셈입니다.

관심 끄는 패키지 딜…"핵 보유 고려 없다"?

조선과 반도체, 2개의 열쇠에 이어 더 큰 시야에서 볼 때 관세 협상의 또 다른 변수는 바로 '안보 이슈'입니다. 한미 정부는 지금까진 관세 협상과는 별도의 트랙으로 한국의 국방비 증액, 미국 무기 구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을 논의해 왔습니다.

이 시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건 한미 원자력협정입니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지난달 17일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묘한 언급을 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핵무장을 고려하지 않는 입장"이라며 "우리가 추진하는 원자력협정은 순전히 산업적 측면"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미 안보 협상의 큰 틀은 한국이 국방 비용 부담을 늘리고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일정 선에서 수용하는 대신,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는 권리라는 점에서 핵확산에 민감한 미국 의회 등 조야 일각의 우려를 의식한 발언입니다. 이는 결국 협정 개정에 사실상 합의가 이뤄졌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결국 통상 관계를 넘어서는 한미 동맹의 틀에서 대북 억제에 관한 군사·안보적 정책 변경을 앞두고 있고, 이는 큰 틀에서 양국 관세 협상에 외적 변수로 작용할 거란 전망입니다. 안보 이슈에서 타결이 이뤄진다면 관세 협상 합의도 고비를 넘어선 것으로 봐야 한다는 낙관론도 나옵니다.

파국은 더 큰 부담…잃을 것에 대한 인내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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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증권사의 분석을 보면, 현대기아자동차가 올 3분기에 부담할 대미 관세 비용이 2조 4천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전 분기보다 52% 늘어났습니다. 지금까지는 가격에 관세 비용을 바로 반영하지 않고 할인 이벤트를 줄이면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휴 직전 한 신문에 보도된 정부 핵심 관계자의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미국의 태도를 보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도 일단 배부터 가르자는 것 같다"면서 "내년까지 협상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습니다. 말이 협상이지 사실상 최대 소비시장을 앞세운 힘으로 동맹국을 굴복시키고, 정치적 실적을 내세우고 싶은 트럼프식 통상 전략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한미 간 협상을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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