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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하러" 속속 집으로…"이런 난리는 처음" 처절

"샤워하러" 속속 집으로…"이런 난리는 처음" 처절
▲ 올여름, 강릉에는 가뭄이 심각해 식판에 비닐 씌워 사용하기도 했다.

"샤워는 5분 만."

올여름 강원 강릉지역에서는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며 '물과의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강릉시민들은 옛날부터 태풍, 폭설, 산불 등 다양한 재난을 겪어왔지만, 올해와 같은 가뭄은 또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비 소식이 간절해진 시민들은 기우제까지 지냈습니다.

"샤워는 5분 내로 해주세요"

피서철 강릉시 경포해수욕장 샤워 시설 입구에 붙은 안내문은 올해 강릉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줬습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당연히 흘러나오던 시절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세족장은 아예 수도꼭지를 뽑아 발을 씻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즐겨 찾던 공공 수영장은 7월 중순부터 휴장에 들어갔습니다.

일부 공공화장실은 세면대를 봉쇄하거나 아예 잠정 폐쇄되면서 불편은 일상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강릉 시민들은 장마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올여름 전국적으로 '마른장마'가 이어지며 강릉은 더욱 메말라갔습니다.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오봉저수지는 연일 최저치를 경신했습니다.

급기야 지난 12일 저수율은 역대 최저치인 11.5%까지 곤두박질쳤습니다.

바닥이 훤히 드러난 저수지를 바라본 주민들은 서로를 향해 "이대로는 큰일"이라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강릉은 말 그대로 '물과의 전쟁터'가 됐습니다.

시민들은 자발적인 절수에 나섰습니다.

대관령 샘터에는 커다란 생수통을 들고 온 주민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주부들은 설거지할 때마다 물을 절반만 쓰기 위해 애썼고, 일부 가정은 아예 일회용 그릇을 꺼내 들었습니다.

가뭄이 장기화하자 "차라리 강릉을 떠나자"며 아이들을 데리고 친척 집이나 타지역으로 '물 피난'을 가는 가족도 있었습니다.

비를 향한 시민들의 마음은 절실했습니다.

지난달 23일 강릉단오제보존회는 평창군 대관령 산신당과 국사성황사에 모여 기우제를 올렸습니다.

이어 유림도 향교 마당에 모여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습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어민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평소라면 비를 반기지 않던 이들조차 바다에 나가 용왕께 "제발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우제에 참가한 한 어민은 "어민이 비를 기다린다는 건 정말 마지막이라는 뜻"이라며 "물 없인 우리도, 관광객도, 도시도 다 버틸 수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상황이 악화하자 결국 중앙정부가 나섰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강릉을 직접 방문해 오봉저수지를 둘러봤습니다.

메마른 저수지 바닥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재난 사태 선포와 국가소방동원령 발령을 지시했습니다.

같은 날 오후 7시 행정안전부는 강릉 전역에 재난 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재난 사태 선포 직후, 전국에서 지원의 손길이 몰려왔습니다.

소방청은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해 전국 각지의 소방차를 강릉으로 집결시켰습니다.

시내 곳곳에서 붉은 소방차가 줄지어 이동하며 물을 나르는 장면은 이례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산림청 초대형 산불 진화 헬기, 육군 치누크 헬기까지 동원돼 하늘에서 물을 퍼부었습니다.

해경·해군 함정도 강릉 앞바다에 배치돼 급수 작전에 합류했습니다.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육·해·공'이 총출동해 강릉을 살리기 위한 작전을 펼쳤습니다.

생수 기탁도 잇따랐습니다.

강릉 아레나 주차장은 전국에서 보내온 생수 상자로 가득 메워졌습니다.

거대한 창고를 방불케 하는 이곳에서 시는 생수를 나눠 시민들에게 배부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뭄이 장기화하면서 강릉 시내 곳곳에서 불편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시가 대규모 수용가 대상 급수 제한 조치를 실시하면서 시민 불편이 극대화됐습니다.

시는 100t 이상 저수조를 보유한 대수용가의 제수변 잠금 및 운반 급수를 통해 물 사용 절감을 유도하기로 했습니다.

이때부터 일부 아파트에서는 시간제 제한 급수에 돌입했습니다.

시민들은 단수가 되기 전 씻기 위해 집에 일찍 귀가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상황은 이달 중순부터 비가 내리면서 점차 나아졌습니다.

9월 초에도 비가 내렸지만 찔끔 내리며 가뭄 해갈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2일 오후부터 내린 비는 오다 그치기를 반복하며 오봉저수지 저수율을 점차 높여나갔습니다.

결국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지난 22일 오후 60%에 도달했습니다.

평년보다는 여전히 부족한 수치지만, 가뭄 해갈에는 충분한 양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에 안도하며, 마침내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부족 걱정에서 한숨 돌리는 분위기입니다.

장기간 제한 급수로 인해 빨래와 세탁, 화초 물주기 등 일상적인 생활에 불편을 겪었던 주민들은 이제 평소처럼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노인층과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물 사용이 자유로워진 것에 안도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소상공인과 숙박업계 관계자들도 여름철 관광객 감소로 인한 매출 손실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한 소상공인은 "가뭄 때문에 손님이 줄었는데, 비가 내린 뒤에는 다시 방문객이 늘어나고 있다"며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농업인들도 논밭과 시설하우스 작물에 물 공급이 가능해져 한숨 돌리는 모습입니다.

이와 함께 시민들은 자연의 소중함과 물의 가치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일부 주민은 "평소에는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이번처럼 오랜 가뭄을 겪으니 물 한 방울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며 가정에서도 절수와 물 절약을 더욱 신경 쓰겠다는 다짐을 전했습니다.

가뭄으로 인한 심리적 피로와 불안감도 한결 완화된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공원을 찾은 한 가족은 "지난달에는 아이들과 물놀이할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제 마음 놓고 놀 수 있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시민들은 이번 가뭄을 계기로 앞으로도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에 대비해 절수와 관리에 신경 쓰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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