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개발도상국에 부여되는 특별대우를 더 요구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특혜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그간 개도국 지위 남용을 지적하며 중국의 자발적 포기를 요구해왔던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위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블룸버그 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세계개발구상(GDI) 고위급 회의 연설에서 "현재와 미래의 모든 WTO 협상에서 더 이상 새로운 특별 및 차등 대우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리청강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담판대표 겸 부부장(차관)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중국이 국내외 정세를 모두 염두에 두고 대외적으로 내린 중요한 입장 선언"이라면서 "다자간 무역 체제를 확고히 수호하고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와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적극 이행하는 중요한 조치"라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와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하고 있는 외교 전략 중 하나로,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한 발전 지원과 공정하고 합리적인 국제 질서 추구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리 부부장은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하며 '일부 국가'가 잇따라 무역전쟁과 관세전쟁을 일으켜 다자무역체제를 심각하게 타격했다고 언급해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우회 비판했습니다.
그는 "규칙에 기반한 다자무역체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패권주의·일방주의·보호주의가 만연하고 있다"면서 "국제 경제무역 질서를 심각하게 혼란시키고, 글로벌 경제 발전에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초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국제 사회는 다자간 무역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강해지고, WTO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런 배경에서 중국은 WTO 협상에서 새로운 특혜와 차별적 대우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며, 이는 다자간 무역 체제를 실제 행동으로 지지하는 중국의 확고한 입장과 대국으로서의 책임을 더욱 부각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중국의 개도국 지위와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다면서 관련 국가들과 개혁을 함께 추진하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개도국 관련 특혜는 사실상 포기하지만 공식적인 '개도국 지위'는 유지하면서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의 좌장 역할은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리 부부장은 "중국은 항상 글로벌사우스의 일원이며, 항상 개도국과 함께 서 있다"면서 "다자간 무역 체제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WTO 개혁과 국제 경제무역 규칙 조정에 전면적으로 깊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의 이번 결정은 개도국 자격 남용을 공개 비판하며 WTO 개혁을 요구해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를 중국이 어느 정도 수용하는 수순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당시인 2019년 중국 등 경제력이 갖춰진 국가들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무역 특혜를 받고 있다며 자발적 포기를 요구해왔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결정에 대해 "무역협상에 걸림돌이 돼 왔던 미국과의 논쟁점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WTO는 개도국에 규범 이행 유예와 무역 자유화 의무 완화, 기술·재정 지원, 농업·식량안보 등 일부 분야에 대한 보호 조치 등 특혜(SDT)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개도국 지위에 대한 공식적인 기준이나 정의는 없으며, 가입국의 자기 선언 방식으로 해당 지위를 가지게 됩니다.
한국의 경우 1995년 WTO 가입 시 개도국으로 선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압박 3개월여 만인 지난 2019년 10월, WTO 가입 25년 만에 개도국 지위를 공식 포기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