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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이자 성소수자'…경계선을 밟고 선 퀴어 영화 [스프]

[취향저격] <3670> 종로 3가 6번 출구 7시, 0부터 시작…새로운 퀴어 영화에서 만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글 :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3670
9월 3일에 개봉한 박준호 감독의 <3670>은 지금까지 봐왔던 퀴어 영화 서사와는 다르다는 말부터 시작하고 싶다. 성소수자들의 은밀한 관계를 다루는 퀴어 영화들은 비슷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주로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반대편에는 주류사회에서 보내는 혐오의 시선이 존재한다. 설사 영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더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시선 때문에 둘의 관계는 더욱 애절하게 묘사될 수밖에 없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들은 퀴어 영화 장르로 자리 잡고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퀴어 영화에서 묘사되는 동성애자들의 관계가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인기를 모았던 대표적인 퀴어 영화들을 보면, <브로크백 마운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캐롤> 그리고 한국 영화 <윤희에게>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친근하거나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고 있다. 특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캐롤>의 영상미는 동성애를 환상으로 바꾸어놓을 만큼 뛰어나다. 관객이 인정하는 동성애 관계는 영화 안에서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현실과는 간극이 있다. 말하자면 퀴어 영화 장르는 인정하지만, 현실에서 동성애 관계는 인정하기 힘들다는 간극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3670>에서는 동성애자나 성소수자라는 단어 대신 '이쪽'이라고 지칭한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쪽'의 세계를 저쪽에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달리 말하면 이쪽이라는 표현만으로도 동질성이 강하게 작동되는 커뮤니티를 갖기도 힘들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둘 때, <3670>만큼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정서가 현실감 있게 다가온 영화는 없었다. 세트 촬영으로도 가능할 터이지만, 박준호 감독이 종로 3가와 이태원의 실제 공간에서 촬영을 고수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 감독이 영리하게 시도한 새로운 방식이 설득력을 얻은 셈이다.
3670

주인공인 철준(조유현)은 탈북민과 성소수자라는 두 영역의 교차지점에 있다. 탈북민 커뮤니티에서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고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밝힌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는 또 다른 시선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원래 시나리오의 제목은 '경계인'이었는데 감독은 부제였던 <3670>을 선택했다. 숫자 4개의 조합으로 여러 의미가 담긴 새로운 시공간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맨 끝 숫자는 참가자 수를 의미한다. 0으로 시작된 맨 끝 숫자가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밟고 있던 경계선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옮겨가는 느낌이 들지만 그런 느낌은 순간적이다. 소속감은 순간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영화는 그런 순간들을 포착해 낸다. 어떤 식으로든 이런저런 커뮤니티에 얽힐 수밖에 없는 대다수 사람들이 수없이 느꼈을 법한 순간이 영화에서는 수시로 나온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경계선을 밟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영화를 연출하면서 감독이 의도했던 보편성의 느낌이 전달되는 순간은 관객에게 그런 식으로 다가온다. 이어폰을 낀 사람들, 철준이 고른 빨간색 야구모자 같은 소품들이 보여주는, 소속감을 원하면서도 혼자만의 세계를 지키고 싶은 양가성 역시 공감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퀴어 영화를 보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시선은 같을 수 없다. 퀴어 영화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하는데, 그 안에서 관객 각자가 지닌 개인적이고 특수한 고독으로 해석했다면 그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오독이라고 해야 할까라는 고민도 생긴다. 퀴어 영화에서 느끼는 보편성은 분명 새로운 영역의 문을 여는 시작이고 성소수자만의 이야기에서 확장된다는 장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퀴어 영화의 특수성이 묻힐 수 있다는 점이 양날의 칼이다.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성향을 가진 남성 또래집단의 성장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관객이 있을 우려 때문에, 이 영화는 분명히 퀴어 영화라는 선언처럼 첫 장면을 파격적으로 설정했다고 감독은 밝혔다. 첫 장면만 보고 이 영화의 흐름을 예상한다면, 그다음부터는 뒤통수를 맞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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