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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게 죽고 싶다"…각국의 조력사망 허용 어디까지

"존엄하게 죽고 싶다"…각국의 조력사망 허용 어디까지
▲ 존엄사 사전의사결정서

최근 생애 마지막에 무의미한 연명의료 대신 존엄한 죽음을 택하겠다고 서약한 사람이 3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임종 과정에서 치료 효과 없이 생명만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사전연명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전체 성인인구의 7% 가까이에 달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성인 남녀 1천2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조력 존엄사(조력사망) 합법화에 82%가 찬성하는 등 우리 사회에서도 조력 존엄사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조금씩 확산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조력 존엄사 도입을 둘러싼 움직임이 최근 들어 활발해지면서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존엄사와 안락사, 의사조력자살 등이 혼용돼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 용어는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안락사는 고통이 심한 환자에게 그 고통을 제거하거나 덜어주고자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안락사는 다시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나뉩니다.

이중 '존엄사'로도 부르는 소극적 안락사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행위를,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 투여 등의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를 가리킵니다.

'의사조력자살'은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가 투여하는 식으로 의사가 환자의 자살을 돕는 행위로, 넓은 범주에서 적극적 안락사에 포함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식의 소극적 안락사(존엄사)가 법적으로 허용됐고, 의사조력자살과 적극적 안락사는 불법입니다.

존엄사 → 의사조력자살 → 적극적 안락사 순으로 법적인 논란이 많고 사회적 합의가 어렵습니다.

존엄사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에서 합법입니다.

심지어 자살을 용인하지 않는 가톨릭에서도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합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1980년 5월 5일 '안락사에 관한 선언'에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할 때,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운 생명의 연장만을 초래할 처치를 포기하는 결정을 양심 안에서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죽음은 피할 수 없다"며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의 시간을 어떤 식으로 앞당기지 않고 우리의 책임에 대한 온전한 의식과 온전한 존엄성을 갖고 죽음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논란이 되는 것은 의사조력자살과 적극적 안락사입니다.

우리 형법에선 의사조력자살을 자살방조죄로, 적극적 안락사는 촉탁살인죄로 처벌합니다.

자살방조죄와 촉탁살인죄 모두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있던 조항입니다.

독일에선 자살방조죄가 없습니다.

자살이 범죄가 아니므로 공범에 해당하는 방조가 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의사조력자살이 독일에서 원칙적으로 허용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2000년대 들어 독일 내에 자살지원단체가 설립됐고, 이를 계기로 조력자살이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결국 독일은 2015년 11월 형법에 '업무상 자살방조죄'를 신설해 '타인의 자살을 방조할 의도로, 업무상 자살의 기회를 제공, 마련, 알선한 자'를 처벌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 2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면서 해당 조항은 무효가 됐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독일에서 의사조력자살은 합법입니다.

단, 적극적 안락사는 독일 형법 217조 '촉탁살인죄'에 해당하므로 불법입니다.

우리나라도 의사조력자살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2022년 6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력존엄사'를 신설하는 내용의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개정안은 조력존엄사를 "본인의 의사로 담당 의사의 조력을 통해 스스로 삶을 종결하는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법제화되지 못했습니다.

조력자살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가 스위스입니다.

스위스에서 (적극적) 안락사 자체는 형법 114조 촉탁살인죄로 처벌됩니다.

다만 의사조력자살은 그 동기가 이타적인 경우에 허용됩니다.

형법 115조에 의해 '이기적 동기'에 의한 자살방조죄만 처벌함으로써 이타적 목적의 조력자살을 용인한 것입니다.

스위스에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법령은 없고, 대신 형법 조항의 해석을 통해 의사조력자살을 '비범죄화'했습니다.

1942년 형법 개정 때 115조가 신설돼 통상 이때부터 스위스에서 의사조력자살이 합법화된 것으로 봅니다.

'의사조력자살'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스위스에선 도움을 주는 자가 의사일 필요가 없고 조력자살을 하는 자가 스위스 국적자일 필요도 없습니다.

스위스가 '조력자살의 천국'으로 알려진 것은 '디그니타스', '엑시트' 같은 조력자살 지원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조력자살의 문호를 외국인에게까지 개방했기 때문입니다.

스위스가 외국인들이 생을 마감하기 위해 찾는 '죽음 관광'(death tourism)으로 '오명'을 떨치자 2011년 취리히주에선 조력자살 금지를 놓고 국민투표가 실시됐습니다.

하지만 80%의 반대 의견으로 부결돼 '죽음 관광'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스위스에서는 조력자살이 대중화하면서 2018년부터 조력자살자 수가 일반 자살자 수를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스위스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조력자살자가 1천729명으로, 일반 자살자(995명)의 2배 가까이 됐습니다.

그해 사망자 7만1천822명 가운데 조력자살자 비중은 2.4%였습니다.

일부 국가는 의사조력자살을 법으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한 최초 국가는 미국입니다.

1994년에 제정, 1997년에 시행된 미국 오리건주의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이 그 효시입니다.

법 명칭은 '존엄사법'이지만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가 아니라 의사조력자살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6개월 이내 죽을 것으로 판단되는 18세 이상 성인 환자가 증인 2명 앞에서 서명한 약물요청서를 주치의에게 전달하면 조력자살에 대한 자발적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오리건주를 시작으로 워싱턴주, 버몬트주, 캘리포니아주 등 10개 주와 특별구인 워싱턴DC가 의사조력자살에 관한 법을 제정해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의사조력자살의 절차와 요건을 담은 '사망의사표시법'이 2021년 12월 제정돼 이듬해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프랑스는 의사조력자살 입법화를 추진 중입니다.

해당 법안이 올 5월 하원에서 가결됐고, 10월 상원 심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도 올해 6월 하원에서 말기환자 조력사 허용법안이 가결됐습니다.

가톨릭 본산인 이탈리아에서는 올해 2월 토스카나주가 처음으로 조력자살을 법제화했습니다.

안락사를 최초로 법제화한 국가는 네덜란드입니다.

2001년 4월 '요청에 의한 생명단절과 조력자살 심의법'을 제정해 2002년 4월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의사가 조력자살뿐 아니라 적극적 의미의 안락사를 수행하는 것에 대해 형사소추를 면제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한 법이 됐습니다.

네덜란드에선 12세 이상이면 안락사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단, 12∼16세는 부모나 후견인이 동의해야 하고, 17∼18세는 부모나 후견인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벨기에는 2002년 9월부터 발효된 '안락사에 관한 법률'을 통해 일정 요건을 갖출 경우 안락사를 인정했습니다.

2014년 2월에는 연령제한이 없어지면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전 연령대의 국민이 법적인 판단 능력이 있으면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후 유럽에서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도 안락사 법제화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비유럽권에선 캐나다가 2016년 '의료적 조력사망법'을 제정해 의사조력자살뿐 아니라 적극적 안락사도 합법화했습니다.

호주에서는 빅토리아주를 비롯한 일부 주에서 '자발적 조력사망법'을 마련해 의사조력자살을 인정하면서 환자 스스로가 약물을 투여할 수 없는 신체적 무능력 상태가 됐을 경우 의료진이 투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즉, 제한적으로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한 것입니다.

(사진=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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