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12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서울중앙지법 청사를 나서고 있다.
지난 3년여간 끊임없이 온갖 미디어를 장식했던 의혹의 당사자, 김건희 여사에 대한 법원의 구속 결정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정재욱 영장전담판사는 어제(12일) 자정이 되기 전, 피의자 김건희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대형 정치 사건 피의자의 구속심사는 통상 자정을 넘긴다는 불문율도, 부부가 동시에 구속되는 일은 드물다는 불문율도 모두 깨졌다. 야당과 언론의 숱한 문제 제기와 수사기관 조사에도 '모르쇠'로 일관해 온 김 여사는 오늘 새벽, 그렇게 구치소로 들어갔다.
'거짓말'에 발목 잡힌 김건희…'증거 인멸' 수사가 결정타
결정타는 2022년 김 여사가 나토 순방 때 착용한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 수사였다. "지인에게 빌린 것이다" (2022년 논란 불거진 직후) → "모조품이다" (올해 5월 검찰 제출 의견서) 라며 목걸이에 대한 진술을 바꿔 온 김 여사는 지난 6일 김건희 특검에 출석해서는 "20년 전 홍콩에서 모조품을 구입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앞서 지난달 25일, 김 여사 오빠의 장모 집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가짜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가 발견된 터였기에, 김 여사의 '거짓말'이 진실로 굳어질 가능성도 상당했다.
하지만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했다'는 거짓말의 '구체성'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특검팀은 '반클리프 아펠'에 대한 압수수색과 관련자 조사 등을 통해 김 여사가 착용했던 '스노우플레이크' 모델의 디자인 출시 연도가 2015년이라는 점을 파악했다. 디자인이 출시되기 10년도 전에 홍콩에서 모조품을 샀다는 김 여사 진술이 어불성설이 되는 순간이었다.
▶ 관련 기사 [취재파일] 김 여사, 오늘은 말해야 한다. (25.08.06)
특검팀은 또 2022년 대선 직후인 3월 14일경, 서희건설 이봉관 회장의 비서실장이 김 여사가 착용한 것과 동일한 모델의 목걸이를 구매했다는 사실도 특정했다. 해당 모델은 국내에서 소량만 판매됐는데, 서희건설 측이 굳이 상품권 다발을 지불해 가며 이 목걸이를 샀다는 것이다. 이봉관 회장 사위는 목걸이 구매 3개월 뒤인 2022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의 지명으로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김 여사가 서희건설 사위의 고위직 임명 대가로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를 받았고, 이후 문제될 것을 우려해 모조품을 마련한 뒤 오빠 장모 집에 은닉했다는 의혹은 점차 뚜렷해져 갔다.
서희건설 '자수서' 제출 뒤 판사 질문에도 또다시 '거짓말'

조여오는 수사망에 서희건설 측은 김 여사 영장심사를 하루 앞두고 특검에 '자수서'를 제출했다. SBS 취재 결과 '자수서'에는 서희건설 이봉관 회장이 김 여사에게 목걸이를 전달한 상세 경위가 담겼다. 이 회장이 대선 직후 자택 지하 식당에서 김 여사를 직접 만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명목으로 목걸이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김 여사에게 '자신이 주도하는 조찬 기도회에 참석해 달라'고 말했고, 이후 김 여사를 다시 만나 '맏사위인 박성근 전 검사가 윤석열 정부에서 일할 기회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내용도 자수서에 상세히 담겼다. 목걸이 전달 경로뿐만 아니라, 목걸이 제공에 청탁 대가성이 있었음을 공여자가 '자백'한 셈이었다.
▶ 관련 기사 [단독] 서희건설 "당선 축하 선물…사위 인사 청탁도" (SBS 8뉴스 단독, 25.08.12)
서희건설 측은 자수서와 함께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 실물도 특검에 제출했다. 모조품과 진품, 한 쌍의 목걸이는 어제 김 여사 영장심사 법정에도 현출됐다. 정재욱 영장전담판사는 구속영장심사 과정에서 목걸이와 관련해 상세 설명을 하려는 특검 측에 "영장 청구 혐의 외의 별건이니 짧게 하라"고 말하며 제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판사는 그러면서도 김 여사에게 "목걸이를 받은 것이 맞는지" 직접 물었고, 김 여사는 "아니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수서와 진품·가품 목걸이를 모두 살핀 영장전담판사로서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대답이었을 것이다.
'김건희 구속' 큰 산 넘었지만…'양평 의혹' 등 규명은 과제
하지만 특검법에 규정된 규명 대상 의혹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점은 과제다. 특히 민주당이 야당 시절 국정조사까지 요구해 가며 드라이브를 걸었던 '양평고속도로 의혹' 수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김건희 특검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정부 여당의 핵심이 된 민주당 의원들은 야당 시절 원희룡 국토장관 등을 겨냥해 파상공세를 폈지만, 수사기관이 기소에 이르기까지 규명해야 할 사실관계의 복잡함은 정치권 공방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민주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형사사법제도 개편 진행 상황도 변수다. 김건희 특검 이전에 출범한 특검들은 기한 내 마무리하지 못한 사건들을 검찰로 넘겨 수사가 계속되도록 해왔다. 박근혜 국정농단 특검이 삼성그룹 경영진의 횡령 등 혐의를 서울중앙지검에 이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검찰 개혁'을 모토로 추진되고 있는 수사기관 개편이 연말까지 정교하게 완성되지 않을 경우, 수사 대상이 가장 많은 김건희 특검의 고심은 깊어질 수도 있다. 이미 여권에서는 "3특검 중 김건희 특검에 대해서는 기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 여사 신병 확보로 수사 반환점을 돌았지만, 김건희 특검이 짊어진 짐의 무게가 아직은 가볍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