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극단의 스테디셀러 '스카팽'에 이어 '십이야'를 연출한 임도완 씨는 희극이 굉장히 어려운 장르라고 말합니다. 웃기려면 뇌도 풀가동해야 합니다. 리듬감, 시대감각, 캐릭터 해석까지 골고루 맞아떨어져야 웃음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하는데요, 고골리의 감찰관을 한국식으로 각색하려다 너무 '세다' 싶어 중단한 사연, 프랑스 연극학교에서 벌어진 '웃기기 실기시험'의 기억까지, 웃음 뒤에 숨은 연출의 기술을 만나보세요.
이병희 아나운서 : 희극 작품 많이 하시는데 특별히 좋아하시는 (작품이 있나요?)
김수현 기자 : 희극 작품만 하시는 건 아니지만.
임도완 연출가 : 원래 그렇게 희극 작품을 많이 하지는 않았어요.
김수현 기자 : 예전에는 심각한 작품도 많이 하셨던 것 같은데.
임도완 연출가 : 극단에서 희극 작품이라고 해봤자 휴먼 코미디 했었고. 그런데 국립극단에서 처음에 '스카팽'을 하자고 해서 그때서부터 계속해서 코미디로만 부르더라고요.
김수현 기자 : 그게 계기가 됐군요.
이병희 아나운서 : 어떠세요?
임도완 연출가 : 희극 하게 되면 굉장히 즐겁죠. 연기자들도 즐겁고 저도 즐겁고. 만만치 않거든요. 솔직히 어려워요.
김수현 기자 : 어떤 면에서 그럴까요?
임도완 연출가 : 사람들의 웃음을 사야 된다는 것 자체가, 포인트도 잘 알고 있어야 되고.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알고 있어야 되고. 텍스트도 잘 이해해야 되고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이. 리듬, 템포도 살려야 되고. 그게 아주 (어려워요).
어떤 배우는 코미디가 안 되는 배우도 있어요. 그래서 오디션 할 때 잘 뽑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요. 인물의 성격을 어떻게 가지고 가느냐를 만들어 오거나 지정해 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 어떨 때는 작품에 들어 있지는 않지만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또 다르게 각색을 해야 되는 부분도 있고 뭐 그런 게 어렵죠.
연기를 피라미드라고 하면 맨 꼭대기가 희극이라고. 그만큼 어려워요. 저도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마지막 학기에 희극을 해요. 그래서 코미디 희극 하는 첫 시간에 굉장히 당혹스러워요. 자크 르콕 선생님이 들어와서 '한 명씩 나와서 웃겨 봐.'
김수현 기자 : 그냥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임도완 연출가 : 어떤 걸 가지고 있는지 보는 거죠.
이병희 아나운서 : 연출 수업을 위해서?
임도완 연출가 : 그 학교에서는 연출, 연기, 작가, 무용수, 여러 분야에서 나오죠. 그러니까 유명한 사람들이, 프랑스 태양 극단의 아리안 므누슈킨도 그 학교고요. 영국 콩플리시테의 사이먼 맥버니도 그 학교고, 많아요.
김수현 기자 : 그때 뭐로 웃기셨어요?
임도완 연출가 : 그걸 했더니 나보고 동양 무사라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그전에 여기서 마임을 하면서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는 거를 많이 했어요. 번뜩 생각난 게, 칼을 뽑아서 뒤의 커튼을 칼로 내리면 '뒤에 두 명 서 있어'라고 한 다음에 쫙 갈라지게 하고, 그 칼을 바닥에 던지면 이게 떨리잖아요. 가만히 있다가 잡고 내가 같이 떨고. 다들 좋아하면서, 자크 르콕이 '네가?' (이러더라고요). 학교에서는 내가 굉장히 점잖은 사람으로 (보였는데).
김수현 기자 : 점잖고 진지하고 심각하고.
임도완 연출가 : 네. 조용하고 그랬는데, 내가 나와서 하니까 친구들하고 선생님들이 너무 재미있어했죠. 저도 무대 위에서는 마임 공연하고 그럴 때는 코믹을 훨씬 더 잘했던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십이야' 끝나고 나면 차기작 준비하고 있는 거 있으세요?
임도완 연출가 :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구로 재단의 상주 단체여서 일 년에 의무적으로 두 작품을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제가 하는 신작이 9월에 올라와요.
김수현 기자 : 뭐예요?
임도완 연출가 : 고골리의 '감찰관'. 그것도 코미디예요. 우리 방에다가 '고골리의 '감찰관'을 할까요? 체호프의 '갈매기'를 할까요?' 했는데 고골리 쪽이 더 많았어요. '감찰관' 쪽이.
김수현 기자 : 네, '갈매기'는 코미디라고 하기는... 코미디는 아니죠.
임도완 연출가 : 근데 저도 '갈매기' 무척 하고 싶었거든요.
이병희 아나운서 : 의견이 반대로 모아져서...
김수현 기자 : 한국식으로 각색을 하시는 건가요?
임도완 연출가 : 한번 해보려고 그랬어요. '한국적으로 해야지' 했더니, 너무 세요. 뇌물을 갖다 바치는 거잖아요. 감찰관이 어떤 시골 읍에 왔는데, 진짜가 아닌데 진짜인 줄 알고 그 친구한테 뇌물을 바치러 사람들이 오고, 그런데 그 친구는 그 돈 받아가지고 도망가 버리고... 근데 그 대사들이 너무나 센 거예요.
김수현 기자 : 한국으로 그냥 옮겨오기가.
임도완 연출가 : 러시아는 땅덩이가 넓잖아요. 근데 우리는 너무 좁아서, 만약 충청도 사투리로 한다면 '아니, 우리가 왜유?' 그럴 것 같아요. (웃음)
김수현 기자 : '우리를 무시하는 거예유?' (웃음)
임도완 연출가 : '우리가 언제 그랬슈!' 하면서. 그게 너무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그냥 먼 나라에 있는 이야기로 해서 빗대서 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각색을 하다가 그만두고. 너무 세지더라고요.
김수현 기자 : 그것도 그렇겠네요.
임도완 연출가 : 뇌물을 받는데, 만약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이런 사건으로...
김수현 기자 : 그렇죠. 잘못 또...
임도완 연출가 : '샤넬 백을 가져왔습니다.' '그건 백이라고 그러지 말고 파우치로 해.' 만약에 그렇게 써봐요.
김수현 기자 : 그러면 너무 직접적으로 그 사건을 얘기하는 것 같으니까.
임도완 연출가 : '십이야'나 그런 데서는 양념으로 살짝살짝 넣으면 웃음의 코드가 될 수 있는데, ('감찰관'에서는) 너무 시리어스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안 되겠다.'
김수현 기자 : 그럴 것 같아요.
임도완 연출가 : 그래서 그냥 '러시아로 가자.'
김수현 기자 : 그것도 재밌을 것 같았는데.
임도완 연출가 : 한번은 경남 창원에 갔는데 그분들이 모니터를 했어요. 공연을 보시더니 피디한테 '기역 미음 치읓 이응'에서 '경남 창원'은 꼭 해달라고. 그거는 꼭 여기서 빼지 말라고. (웃음)
김수현 기자 : 근데 사실 '기억 미음'이면 경남은 아닌데. 생각해 보니까, 비슷하긴 하지만. 그러네요.
이병희 아나운서 : 되게 궁금하네요.
김수현 기자: 가서 확인하십시오. '십이야'는 명동예술극장 공연 이후 제주, 김포, 창원, 부산에서 8월까지 주말마다 하시는 거네요. 공연장 사정에 따라서 배리어 프리로 운영하는 곳도 있고.
이병희 아나운서 : 좀 다를 수 있다.
김수현 기자 : 그리고 창원에서는 꼭 '기역 미음 치읓 이응' 할 때 '경남 창원'을 꼭 넣어달라. 진짜 관객들이 좋아하겠어요.
임도완 연출가 : 당부를 하고 가셨죠.
김수현 기자 : 관계자가 미리 와서 모니터링을 하고 그 부분을 꼭 넣어달라. 아마 지금 들으시면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실 텐데, 연극을 보신 분들이면 아마 아실 거예요.
임도완 연출가 : 연기자들이 지역 공연을 할 때마다 제주도면 제주도, 부산이면 부산에서, 특히 제주도 같은 경우에는 제주도 사투리를 특정한 걸 배워요. 무대 위에서 그걸 하면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김수현 기자 : 진짜 좋아하시겠네요. 준비할 게 많네요. 부산은 그러면 완전 본고장이네요.
임도완 연출가 : 그렇죠. '글나 안 글나.'
이병희 아나운서 : 엄청 좋아하시겠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얘기로 끝내겠습니다.
임도완 연출가 : 연극이 지금은 대중보다는 마니아층이 된 것 같아요. 맨 처음에 어떤 연극을 보느냐에 따라서 연극을 계속 보게 되든지, 아니면 '못 보겠다' 이렇게 되거든요. 연극에 친밀감을 가지고 계속해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십이야'를 보러 가시면 됩니다.
김수현 기자 : 앞으로도 임도환 연출님의 공연이 있으면 관심을 가지고 한 번. 그래도 명동예술극장 갈 때마다 '아, 그래도 아직 연극 관객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다른 공연을 볼 때보다 훨씬 관객층의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아, 그래도 아직 연극 관객들이 있구나. 꽤 있구나.' 그 생각을 저는 명동 예술극장에 갈 때마다 하게 돼요.
이번에도 아주 국제적인 하루를 보냈다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명동예술극장에 '십이야'를 보러 간 날에. 요즘 해외 관광객들이 많잖아요. 명동 한복판에 한국 국립극단이 연극을 하는 극장이 있다는 게 굉장히 상징적으로 느껴졌고요. 가기 전에 밥을 먹으러 해외 관광객들 막 뚫고 갔는데, 정말 한국적인 식당을 찾아서 갔는데도, 김치찌개 전문 식당인데 저만 한국인이었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저도 최근에 갔다가 똑같은 일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김수현 기자 : 옆에서 다 외국 분들이 주문하고 그런 와중에, 저 혼자서 '여기는 어딘가' 생각하면서 김치찌개를 먹고. 그 식당에는 또 모든 재료 원산지가 (쓰여) 있잖아요. 국내산도 있지만 덴마크산, 베트남산, 러시아산, 중국산, 원양산도 있고. 세계 각국의 식재료들이 와서 김치찌개, 부대찌개 등등으로 만들어지는 곳에서 밥을 먹고.
그리고 딱 들어갔더니 한국어로 하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런데 원래는 셰익스피어 원작인 '십이야'를 보고 나온 거잖아요.
임도완 연출가 : 근데 영어도 쓰고 불어도 쓰고 이탈리아 말도 하고.
김수현 기자 : 그래서 '오늘 굉장히 인터내셔널한 하루를 보냈다.' 인상적이었어요. 명동 한복판에 이런 극장이 있다는 게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어요. '소중하다'.
임도완 연출가 : 어떨 때는 (길을) 가다가 관광객들이 많은데 명동 극장이 딱 있는 거 보면, '약간 생소하다'. 없을 것 같은 건물이 하나 딱 있어서 여기서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김수현 기자 : 그 앞이 굉장히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잖아요.
이병희 아나운서 : 해외에 와 있는 느낌인데.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