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피아노 학원에서 친해진 형이 '스크랴빈'이라는 작곡가를 알려줬습니다. 스크랴빈에 빠진 아이는 오선지를 꺼내 하루종일 작곡을 하기 시작했죠. 바로 요즘 주목받는 19살 작곡가 이하느리의 어린 시절 얘기입니다. 지난해 바르토크 국제 작곡 콩쿠르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고, 요즘 국내외 곳곳에서 이하느리의 곡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이하느리에게 위촉한 곡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나란히 연주하기도 했죠. 이하느리와 작곡의 만남, 그리고 독특한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직접 들어봅니다.
박재현 기자 : 이렇게 많은 음악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참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곡을 언제쯤 시작하신 걸까요?
이하느리 작곡가 : 4살 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시작하면서 바이올린 전공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이올린 선생님이 '귀가 좋은 것 같다. 작곡해도 잘할 것 같다'는 말을 했어요. 근데 저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오선지 사서 가끔씩 뭔가 하긴 했지만 작곡을 하고 싶다는 건 아니었어요.
제대로 된 계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 친해진 중학생 형이 스크랴빈이라는 작곡가를 엄청 좋아했어요. 저도 그 작곡가를 들으면서 '나도 이런 작품을 쓰고 싶다', 그때부터 작곡을 하루 종일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연습 안 하고 작곡만 하고 있으니까 부모님께서 '작곡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 하셔서 4학년 때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 입학해서 작곡을 제대로 시작했습니다.
김수현 기자 :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3번 2악장을 듣고 작곡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듣고 너무 궁금해서, 사실 스크랴빈을 그렇게 많이 듣는 편은 아니었는데, 새삼 들어봤거든요. 뭐 때문에 이 곡을 듣고 작곡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궁금했어요. 그 곡의 어떤 점이 작곡 본능을 일으켰을까.
이하느리 작곡가 :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처음 들었을 때 뭔가 너무 멋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들어도 화성이 매력적인데 그때는 충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박재현 기자 : 제가 충격적인 건 중학생이, 어떻게 그 나이에 스크랴빈을. (웃음)
김수현 기자 : 좋은 학원을 다니셨나 봐요. 그 형은 지금 뭘 하고 계신가요?
이하느리 작곡가 : 지금은 실용음악 작곡을 하세요. 집도 가까워서 자주 만나다가 군대를 갔습니다.
김수현 기자 : 중3 때 피아노 하면서 스크랴빈을 알 수는 있지만, 초등학교 다니는 아는 동생한테 '나는 스크랴빈이 좋아. 들어봐'라니 참 신기한 일이다.

박재현 기자 : 입시 때까지만 해도 라흐마니노프 좋아하는 정도고, 스크랴빈까지는
김수현 기자 : 잘 안 가죠. 근데 되게 멋있었을 것 같아요.
박재현 기자 : 처음 스크랴빈을 접했을 때 몸이 배배 꼬이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매만지는 음악이라고 느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화성이 너무 매력적이고.
김수현 기자 : 요즘에는 어떤 작곡가 들으세요?
이하느리 작곡가 : 너무 많이 말하고 다녔는데, 비토 주라이라는 슬로베니아 작곡가예요. 재작년부터 알게 돼서 정말 좋아하는 작곡가이고 7월 3일 공연에서도 주라이의 작품을 올려요. 최수열 선생님도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셔서.
세계적으로 되게 잘 나가는 작곡가예요. 근데 이번에는 그 작곡가의 덜 연주되는 좀 희귀한 작품을 연주하게 되어서.
김수현 기자 : 편성은?
이하느리 작곡가 : 앙상블이에요. 이번에 굉장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 곡보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웃음)
박재현 기자 : 처음 들은 분이라 찾아봤는데 나이가 저와 크게 차이가 안 나네요. (웃음) 볼프강 림에게 배웠죠? 저는 그분의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이분은 처음 들었는데 궁금하네요.
김수현 기자 :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니까 이하느리의 영문 표기(Hanurij Lee)도 좀 독특하더라고요.
이병희 아나운서 : 맞아요. 처음에 저는 '오타인가?' (웃음)
김수현 기자 : 뒤에 j(제이)가 붙었어요. 특별한 의도가 있으세요?
이하느리 작곡가 : 의도가 있는데, 일단 제 여권상 영문명이 '하누리'라서 '하느리'와 발음이 똑같지 않아요.
김수현 기자 : 원래는 한글 이름을 '하늘'로 하려고 했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거예요?
이하느리 작곡가 : 동사무소에서 오타인지 잘못 알아들은 건지 '하느리'로 돼서 바꿀까 말까 하다가, 오히려 더 독특한 이름 같아서 (부모님이) 이걸로 정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김수현 기자 : 저도 처음에 '하늘'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이하느리 작곡가 : 사실 비토 주라이가 j로 '주라이(Žuraj)'인 것도 영향이 있고, 체코 작곡가 온드레이(Ondrej) 아다멕도 그러니까, 그 영향도 있고.
그냥 모양이 멋있고 '어차피 여권상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니 마음대로 해야겠다' 해서 그렇게 했어요.
김수현 기자 : 독특하고 평범하지 않은 이름 같아서.
이병희 아나운서 : 뭔가 신세대 같아. (웃음)
김수현 기자 : 비토 주라이에게 직접 연락해 보신 적 있으세요?
이하느리 작곡가 : 이번에 연주 때문에 연락했어요. '배치에 두 가지 옵션이 있어서 어떤 배치가 좋을까'
김수현 기자 : 좋아했을 것 같아요. 한국에 온 적이 없을 것 같은데요?
이하느리 작곡가 : 네. 게다가 연주도 잘 안 되는 '런어라운드' 작품을 한다고 하니까 좋아하는 것 같긴 하네요.
박재현 기자 : 이메일을 가득 써서 보냈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작곡가나 선생님께 메일을 보낼 때는 잘 써지지도 않고 길게 보내게 되더라고요. 당신의 음악에 대해서 쓰고, 내가 느끼는 것과 내 음악 어떻다는 것도 쓰고. 진심이 그분에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실제로 만나게 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