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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권 바뀌었다고 기준도 바뀐다? '특수활동비 논란'이 남긴 것

[취재파일] 정권 바뀌었다고 기준도 바뀐다? '특수활동비 논란'이 남긴 것
▲ 유상범, 김은혜가 4일 용산 대통령실 정문에서 우상호에게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증액 추진 관련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돈 봉투 만찬'이 불러온 것 

불현듯 '돈 봉투 만찬'이 떠오른 건, 최근 여러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한 두 단어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와 지금, 비슷했기 때문이다. '검찰개혁'과 '특수활동비(특활비)'가 그것이다. 지난 2017년 법무부와 검찰 고위 간부 및 검사들의 저녁 자리에서 서로 간에 돈 봉투가 오고 갔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부 등에 감찰을 지시했다. 그리고 정권 출범 초, 이는 검찰개혁의 신호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감찰이 중점을 둔 부분에는 이들이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위반했는지 여부 등도 있었지만, 돈 봉투 속 돈의 출처가 어디인지, 나아가 법무부와 검찰이 특활비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까지도 포함됐다. 감찰 착수 20일 만에, 당시 검사장에 대해 수사가 의뢰되는 등의 조치가 내려졌고, 특활비로 격려금을 지급한 것은 예산 집행 지침 위반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아는 사람은 알던 특활비의 존재에 세간이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된 이 사건 이후, 시민단체가 특활비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며 특활비는 재조명받게 된다.
 

"언제부터 특활비가 민생예산?"…삭감한 민주당

앞서 소개한 법무부와 검찰 특활비 외에도 특활비는 존재한다. 기획재정부 지침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이 특활비는 검찰뿐 아니라 대통령실, 국가정보원 등 여러 정부 조직에서 운용하고 있다. 기재부의 '2025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르면,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 경호 등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이를 사용하게 되는 기관장은 현금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고 받지만, 불가피하게 현금으로 썼을 경우 '경비 집행의 목적 달성에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특활비가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쌈짓돈이라는 비난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 이듬해인 2025년 예산 편성 국면에서 이 특활비를 문제 삼았다. 그리고 예산 심사 과정에서 이를 삭감했다. 지난해 11월 4일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 정부(윤석열 정부)의 예산 역행을 바로 잡겠다"며 "법무부와 대통령실 등 권력기관의 특활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등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했다. 재정 수입은 확충하고 문제 사업은 감액하는 한편, 민생·미래 예산 증액을 적극 추진하겠단 설명도 뒤따랐다. 2025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대통령실 특활비는 82억여 원, 법무부 특활비는 80억 원 가량이었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어디다 쓴지도 모르는 특활비를 삭감한 것인데, 이것 때문에 살림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사실 조금 당황스러운 얘기"라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전현희 민주당 최고위원 역시 "그동안 국가권력기관이 영수증도 없이, 용처 입증도 없이 마치 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특활비를 마음대로 써 왔다"면서 "언제부터 검찰, 대통령실의 특활비가 민생예산이었나"고 꼬집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10일, '깜깜이 예산 집행으로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은' 이들 특활비를 감액한 예산안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다만, 필요성과 집행내역을 소명했다고 판단한 대통령경호처와 국세청 등의 특활비는 감액 대상에서 제외했다).
 

"특활비 전향적 검토"…'민생 추경'에서?

이 기억 때문에, 이번 2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과정 중 민주당에서 나온 한 질의는 시선을 모았다. 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지난 1일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임기근 기획재정부 2차관을 향해 특활비에 대해 질의했다. "새로운 정부도 출범한 만큼, 검찰, 경찰, 감사원, 대통령실 등이 경호처와 같이 적극적으로 소명하고 투명한 절차를 만드는 과정을 거치면서 특활비에 대해서는 전향적으로 검토를 다시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특활비의 부족 문제가 일을 하는데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예산에 있어서도 반영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 조 의원은, 예결위 조정소위 심사 과정에서 직접 특활비에 대해 증액 의견을 냈다. 대통령비서실에 있어서는 "국익 및 안보 등과 연계되어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증액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고, 검찰에 대해서도 "마약, 보이스피싱 등 민생침해 범죄 수사와 형 집행 활동을 통한 국민안전 및 민생지원을 위하여 특활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추경을 두고 민주당은 '민생 추경'임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추경의 규모 못지않게 내용도 중요하다"면서 "소비 진작과 민생 회복에 효과적인 사업들에 집중해야"하고, "대통령의 지시처럼 취약 계층과 자영업, 소상공인 지원을 우선 고려해야"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같은 날 박찬대 원내대표 역시 "내수 진작과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최소 20조 원 이상의 추경 예산 편성에 착수하겠다"며 경제의 숨통을 틔우기 위한 추경 편성임을 분명히 했다. 자연스레, 앞서 전현희 최고위원이 언급했던 것처럼, 특활비 증액이 이번 추경의 본질과 맞는 것이냐는 지적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
야댱은 곧장 반발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생 추경이라면서 추경이 급하다고 우기더니 대통령실 특활비가 그렇게 급했단 말이냐"고 꼬집었다. 과거 특활비를 앞서서 삭감했던 민주당이 증액을 요구하고 나선 데 대해, "큰 소리 땅땅 치더니 특활비가 없어서 살림을 못 하겠다는 말이냐"며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는 내로남불 표리부동의 끝판 세력"이라고 직격했다.
 

정권 바뀌면 기준도 바뀌어야?

특활비를 둘러싼 여야 간 공방은 예결위 조정소위에서도 이어졌다. 각 상임위에서 예비심사를 한 내용,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종합정책질의를 한 내용을 바탕으로 상세 내역에 대해 깎을 건 깎고 정부 측 의견도 듣는 자리다. 지난 2일 열린 예결위 조정소위의 회의록이 공개됐는데,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은 '이러면 안 된다'고 얘기를 꺼냈다. "'우리가 그때 잘못했다, 생각해보니까 필요하다'라고 하시든지, (중략) 이렇게 슬그머니 대통령비서실 특활비를 90몇 억 이렇게 올리겠다고 요청하는 것은 좀 아니라는 것을 기록에 남기고 싶습니다." 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이에 대해 "슬그머니 올린 게 아니"라면서, 지난해 예결위에서 예산이 삭감된 뒤 불법계엄이 터지면서 여야가 추가로 협상할 여지없이 본예산이 통과된 안타까운 상황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제도개선을 전제로 해서 (특활비를) 정상화시키는 것도 충분히 국회가 논의해야 되는 문제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내로남불이다, 아니다' 공방은 그 이후에도 이어졌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 : 당시에 뭐라고 했습니까? 특수활동비 없다고 살림 못 사냐, 나라 경영 못 하냐. (중략) 그런데 조기 대선이 있어 가지고 이게 바뀌었다고 해서 이 예산을 다시 달라고 청구를 합니까? 저는 아무리 여야가 바뀌어도 이것은 너무 염치없는 짓이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 : 진짜 특활비가 필요한 건지, 없어도 운영이 가능한지, 없어서 운영이 안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러면 이 국회에서의 문제 제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자발적인 계획을 세우고 또는 어떤 프로세스 개선이 가능하다고 보는지 이런 것들 의견을 들어 보고 합리적이면 당연히 여야를 불문하고 받아 줄 수 있겠지요. 저는 이건 염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중략)

임미애 민주당 의원 : 사실은 작년과 똑같은 기준으로 올해도 또 적용하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다라는 얘기를 좀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정권이 바뀌었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작년의 기준 가지고 올해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된다라고 얘기를 하면 사실 그게 일을 풀어 나가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다라는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 : 이번에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되지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지난번 정권 때는 그렇게 하고 이번 정권 때는…… 진짜 이 말 내가 안 쓰려고 그랬는데 여기서도 또 내로남불 합니까?

임미애 민주당 의원 : 아니, 그게 아니라 권력기관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와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얘기를 한 거지요.

이틀 뒤인 지난 4일, 다시 열린 예결위 조정소위에서도 논쟁은 이어졌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 : 그러면 지난 정부보다 업무추진비를, 업무지원비를 더 투명하고 책임성 있게 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셨습니까?

이소영 민주당 의원 : 기재부가 답변하시지요.

임기근 기재부 2차관 : 부대의견 7항에 보시면 '정부는 특수활동비를 당초 편성한 목적에 맞게 부적절한 집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투명성 제고를 위해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을 철저하게 준수하여야 한다' 이 부대의견의 취지에 맞춰 가지고 개별 기관별로 개선 방안을 강구할 것입니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 : 그냥 '잘하세요'라고 덕담하시는 수준 아닙니까, 이것은? 실질적으로 구속력 있는 제도적 개선은 없었던 거지요? (중략) 기준이 바뀐 겁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것에 대해서 저는 민주당이 유감 표명은 한번 하셨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소영 민주당 의원 : 지금 전임자와 후임자가 있는데 새로 들어온 후임자한테 특활비를 배정한 것을 사과하라는 건지 아니면 특활비와 관련해서 각종 의혹에 휩싸였던 전임자의 특활비를 삭감한 것을 사과하라는 건지 저는 사실 이해하기가 좀 어렵고요. (중략) 야당이 이제는 견제의 입장이신 거니까요, 여당보다는 야당이 더 견제하는 입장이신 거니까 저는 좋은 제도개선책이 있으면 제안해 주시는 것도 정말로 우리나라 국가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요.

기존에도 있던 지침을 잘 준수하는 것 외에 특별한 특활비 사용 검증 대책이 마련되지는 않은 상황에서,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권력기관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와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펴며, 다른 좋은 제도 개선책이 있으면 제안해보라는 민주당의 접근은 설득력을 얻기 쉽지 않아 보인다. 단순히,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이야기로 들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특활비 없이 한 달 동안 운영을 해 보니 안 되겠더라, 특활비를 일방적으로 삭감했을 때 어려움에 대해 (이제) 이해한다, 유감을 표명한다' 이렇게 하면 특활비 넘어갈 수 있다"는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의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사과나 유감 표명, 논쟁 없이 예결위 조정소위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민주당에서도 반발..."'내란 검찰'에 먹이 줄 수 없어"

혼란은 예결위 조정소위에서 그치지 않았다. 민주당 내에서도 반발이 터져 나온 것이다. 2차 추경을 최종 처리하기 위한 본회의가 예고된 지난 4일, 그에 앞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예결위 단계에서 증액된 특수활동비 중 특히 검찰 특수활동비를 문제 삼는 의견들이 나왔다. 야당 의원 9명과 민주당 조승래 의원이 증액 의견을 냈던 검찰 특수활동비 40억 여 원 증액에 대해, 반대 의견이 나온 것이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검찰 특활비 때문에 민주당 의원총회도 중단됐다며 검찰 특활비를 이번 추경에 편성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검찰개혁을 추석 전 마무리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민주당에서 검찰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될 수 있는 특수활동비 부여를 두고 검찰개혁 강경파 의원들이 반발한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완전히 의견이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된 특활비 증액, 결국 민주당은 논의 끝에 예산안 수정안에 다음과 같은 부대의견을 다는 방향을 선택했다. '법무부는 검찰의 특활비를 검찰개혁 입법 완료 후 집행한다'는 것이다. 검찰 특활비는 법무부장관이 승인해야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당 의원들의 검찰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반영해서 처리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마무리했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검찰, 대통령실 등 4개 기관의 특활비 105억여 원이 이번 추경 예산에 포함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민형배 의원은 "아쉽게도 검찰 특활비 예산이 (추경에) 휩쓸려 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우리 정권인데 잘 통제하면 되지 않겠느냐 누군가 말할 수 있지만 안 된다"면서 "권력의 사냥개로 전락한 검찰이 민주주의를 물어뜯었고 그런 검찰에 힘 되는 예산을 주는 건 미친개에게 다시 먹이를 주는 격"이라고 덧붙였다. '내란 검찰'에 먹이를 줄 수 없다는 거친 표현도 나왔다.
 

"책임 있게 쓰고 소명"…남겨진 약속

'민생 추경' 논의 과정에서 도리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논란의 한가운데에 놓인 특활비. 결과적으로 일종의 '수혜'를 받게 된 대통령실은 특활비에 대해 "국회와 법무부, 검찰청 등의 의견을 고려해 향후 책임 있게 쓰고 소명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추경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다음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미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느냐'는 지적에서 마냥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지침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 내놓은 이 '책임 있게 쓰고 소명하는 과정'은 이제 새로운 약속으로 남았다. 그 약속을 지킬 때야만, 역시 스스로 말했듯 정권이 바뀌어, 권력기관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와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말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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