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이든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국어 공연과 영어 공연은 별개의 프로덕션입니다. 윌 애런슨(작곡가·작가)-박천휴(작사가·작가) 콤비가 공동 창작한 대본과 음악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같지만, 각기 달리 만들어진 공연입니다.

출발점은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
한국어 버전 공연과 함께 영어 버전 공연도 투 트랙으로 추진되었는데요, 2016년 뉴욕에서 우란문화재단 지원으로 리딩 공연을 한 후, 토니상을 여러 번 받은 베테랑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드가 영어 버전 '어쩌면 해피엔딩'의 제작자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영어 버전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보다 느리게 진행됐습니다. 2020년 애틀랜타에서 성공적으로 트라이아웃을 마쳤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브로드웨이 입성은 지난해 가을에야 이뤄졌습니다.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에선
이번에 토니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남자 주인공 대런 크리스는 '글리'로 친숙한 스타 배우이고, 연출상을 받은 마이클 아덴, 무대 디자인상을 받은 데인 레프리와 조지 리브 등이 브로드웨이 공연의 제작진입니다. 브로드웨이의 '어쩌면 해피엔딩'은 1,000석 규모 극장에서 공연되는 만큼 규모 자체가 커졌습니다. 등장인물은 3명에서 4명으로 늘었고, 무대도 화려해졌습니다.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같지만 문화권 차이를 고려해 대사와 뮤지컬 넘버도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에서 '어햅'으로 통했으니, 영어 버전(Maybe Happy Ending)을 '메햅'으로 지칭한다면, '어햅'이 '매헵'의 출발점이 됐던 것은 맞지만, 토니상을 받은 것은 '어햅'이 아니라 '메햅'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토니상 수상이 한국 뮤지컬 산업에 큰 경사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비영어권에서 처음 개발됐던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이렇게 큰 성과를 낸 건 드문 사례이고, 한국인 작가의 토니상 수상도 처음입니다. 윌-휴는 한국의 뮤지컬 생태계에서 활동하고 성장한 창작진이라는 의미도 빼놓을 수 없고요.
윌-휴는 토니상 수상 후 한국인 관객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여러 번 했는데요, 10년 전부터 공연을 올릴 때마다 지지해 준 한국 관객이 있었기에, 뉴욕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고집을 꺾지 않고 작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한국 관객의 지지가 브로드웨이의 성공을 낳은 '토양'이 되었다는 겁니다.

한국판 '어쩌면 해피엔딩'이 '오리지널'

"굳이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국인 작가가 한국을 배경으로 쓴 이야기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작가로서 예술적인 목표가, 관객들이 낯선 세상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아! 저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미국 관객들이 공감해 주신 것 같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어쩌면 해피엔딩'을 보고 나서 윌-휴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잘 봤다는 감상을 전했고 최근에 화상 통화도 했는데, '한국 배경에 한국인 캐릭터가 나오는 점이 정말 좋았다'고 했답니다. 또 '어쩌면 해피엔딩' 다음 작품인 '일 테노레'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고 하죠. '일 테노레'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조선 최초의 테너'가 나오는, 한국적 색채가 더욱 물씬한 작품입니다. (*'일 테노레'에 대해서는 초연 당시 썼던 스브스프리미엄 칼럼 참고하세요.)
'약점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강점이 되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많은 매체 보도에서 'K-뮤지컬'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박천휴 작가에게 K-뮤지컬의 특징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도 기자회견에서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K-뮤지컬이라는 용어는 전세계적으로 쓰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K팝'만큼 정립된 개념은 아닙니다.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관객 분들이 '한국에서 온 뮤지컬이야. 한국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이야' 라는 말씀을 해주시는데, 그때 뿌듯합니다. 주연 배우들이 대기실에서 어느 순간부터 한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대기실 가면 저를 붙들고 (한국어로) '밥 먹었어요?' 합니다. '나의 문화'가 어느 순간 이들이 공부하는 문화가 된 거죠. 내가 윌과 함께 쓴 뮤지컬이 어느 순간부터 이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뮤지컬이 된 건데, 그러면 'K-뮤지컬'이라고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창작 뮤지컬'과 'K-뮤지컬'의 개념과 관련해, 스브스프리미엄 칼럼도 함께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올가을 돌아오는 오리지널, '어햅'
"저희 한국 무대 디자이너 분은 굉장한 부담감을 갖고 계시는 상황입니다. 토니상에서 심지어 무대 디자인상을 받아버려서 압박감에 시달리고 계신데, 저는 한국 공연은 브로드웨이 공연의 '지침서' 같은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이 공연의 대본과 음악 자체가 완벽하고요 두 창작진이 지문 하나하나 섬세하게 담아냈고 무대에서 구현돼야 될 장면들을 실제적으로 디테일하게 적어놨거든요. 그래서 한국 공연은 최대한 그 감성과 감정을 유지하고 새로운 공연장에 맞춰서 보완하는 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봐주셨던 관객 분들한테는 익숙하면서도 반가운 무대가 되고, 또 이번 기회로 '어쩌면 해피엔딩'을 알고 새롭게 보시는 분들께는 신선한 감성을 드리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박천휴 작가도 "(한국에서) 10년째 하고 있는 이 공연을 브로드웨이 공연이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해서 굳이 애써서 바꾸고 싶지 않다'며, '우리의 정서와 우리의 감수성을 지키면서 다시 한국 관객들을 만나는 게 굉장히 설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토니상을 받은 '메햅'을 한국 관객들은 볼 수 없는 걸까요? 한경숙 프로듀서는 브로드웨이 버전 '어쩌면 해피엔딩'은 2028년에 한국에 들여오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이거나, 아니면 브로드웨이 공연팀의 내한공연이 되겠지요. '어햅'과 '메햅'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는 건 뮤지컬 업계 종사자에게든 관객에게든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국경과 언어를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스토리와 음악의 힘이겠지요. 일단 올가을 다시 한국 무대에 돌아오는 '어햅' 공연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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