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휘자 백윤학 씨는 춤추듯 지휘하는 모습을 담은 '직캠'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춤추는 지휘자'로 유명해졌는데요, 지휘 전공으로 미국의 명문 음악학교 커티스를 졸업한 후 오페라 코치 과정을 공부하고, 미국의 오페라 컴퍼니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원래 '오페라 전문'이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공연이 많지 않아 오페라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데요, 그가 들려주는 오페라와 성악의 세계에 빠져보세요.
김수현 기자 : 커티스에서 끝내고 오페라 코치 과정을 다른 학교에서 또 하셨더라고요.
백윤학 지휘자 : 맞아요. 지휘가 어려운 게, 지금 지휘하는 분들은 다들 굉장히 어려운 시기가 있어요. 뭔가 지원했을 때 왜 안 되는지 잘 모르는 거예요. 지휘자는 지휘 외에 여러 가지를 보게 돼요. 남들 앞에 서야 하는 직업이니까.
저도 학교를 졸업했을 때 여러모로 좋은 조건을 갖추긴 했죠. 오케스트라가 있는 데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한테 직접 레슨을 받고, 학교에 있는 오케스트라도 미국 오케스트라 악장의 40%를 차지하는 학교 애들이고, 유자 왕과 같이 실내악 하는 거 보고.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니거든요. 지휘자는 펀딩도 해와야 되고, 단원들을 먹여 살려야 되는 것도 있으니까. 커티스라는 좋은 학교를 졸업했지만 직장은 바로 안 오는 거예요. 일도 안 들어오고.
1년 정도는 좀 우울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공대 나왔는데 갑자기 커티스 돼서 갔어. 한국 들어와서 얼굴 내밀면 '뭐 해?' '졸업했어.' 그럼 '어디 뭐 취직한 거야?' 하면, 저는 이미 거기까지 예상을 하니까 아예 안 만나게 되는 거예요. 다행히 그때 넷플릭스가 있었어요. DVD 왔다 갔다 하는 거. 그런 걸로 영상도 보고 은둔 생활을 좀 했죠.
그러다가 한국에 들어가려니까 나이도 좀 어린 것 같고 서른 초반이었는데. 어쨌든 미국에 좀 나와 보자 해서, 같은 전공은 비자 연장이 어려워서 오페라 코치 과정을 들어갔죠. 워낙 오페라 좋아하기도 했고.
근데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컸어요. 음악이라는 건 결국 자기 몸으로 만들어야 되는 부분인데 저는 남한테 지시만 했던 사람이거든요. 축구 감독이 되려면 축구 선수 경험이 짧든 길든 있는 게 중요한데, 반대가 된 거죠. 축구 감독 수업을 미리 받고 선수를 뛰어 볼 수 있는. 그때는 진짜 피아노 연습도 많이 하고.
김수현 기자 : 오페라 코치 과정에서 뭘 배우고 오페라 코치는 어떤 일을 하는 건지 설명해 주시면 잘 모르는 분들께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백윤학 지휘자 : 음악 쪽이 기악하고 성악하고 구분되긴 해요. 둘 다 듣는 경우는 드문데, 성악하는 분들이 오페라 할 때는, 우리가 볼 때는 음정도 틀리는 것 같고 이렇게 들릴 때가 많아요. 근데 사실 이분들이 무대에 서는 거는 쉽지 않은 일이에요. 소리를 몸으로 내기 때문에,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망칠 수도 있고.
이들이 집중해야 되는 건 자기 악기인 거예요. 악기가 항상 좋은 소리가 날 수 있도록 컨디션 조절을 해야 되는데 가사, 내용까지 다 알고 발음도 고쳐야 되고, 이런 것까지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일인 거예요. 이 보조를 도와주는 게 오페라 코치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음정도 잡아 주고, 발음도 잡아 주고, 오페라 내용이나 캐릭터도 가이드라인을 잡아 주고.
어떻게 보면 성악가가 다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오페라 코치가) 있음으로 인해서 훨씬 전문적이고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보통 오페라하우스에 있고 이 사람들이 똑똑해요. 그래서 성악가 캐스팅에 입김이 작용하기도 하죠. 대신 연주를 안 해요. 연주 때는 오케스트라로 하니까.
김수현 기자: 해외 오페라하우스의 오페라 코치는 보통 피아노 하는 분이 있더라고요.
백윤학 지휘자 : 맞아요. 피아노를 해야 돼요.
김수현 기자 : 그걸 하다가 나중에 지휘하는 분도 있고.
백윤학 지휘자 : 맞아요. 그런 분들은 커리어가 갑자기 상승하는 경우가 많아요. 계속 피아노를 쳐보는 사람이니까 오페라를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거죠. 이런 분들이 지휘를 하게 되면, 김명민 씨나 이영애 씨 같은 분이 훌륭한 배우죠. 근데 유아인 씨 같은. 피아노는 따라 할 수 없지만 지휘는 좀 따라 하기 쉽거든요. 동작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으니까.
김수현 기자 : 지휘자가 하는 일이 그냥 동작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백윤학 지휘자 : 맞아요. 아무나 할 수 있고 아무나 할 수 없는 거예요.
김수현 기자 : 미국에서 오페라 쪽도 많이 하셨더라고요.
백윤학 지휘자 : 미국에서는 오페라를 더 많이 했어요. 실제로 오케스트라 할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고, 그때 많이 배웠죠. 오페라 델라웨어라는 작은 컴퍼니에서 일했는데, 오페라 코치 하는 분이 성악가들 얘기를 해 주는데 많이 배웠어요. 좋은 소리가 뭔지, 좋은 성악이 어떤 건지. 성악하는 분들과 다른 접근 방법인데 저한테는 훨씬 좋았던 것 같아요.
20세기 초반에 바이올린 하는 사람들한테는 하이페츠가 신 같은 존재거든요. 그럼 저는 생각하는 거예요. '왜 이 사람은 신이야? 왜? 뭐가 잘났기 때문이야? 빨라서?' 그게 아니라, 이 사람은 아무리 짧은 음표라도 비브라토 살짝이라도 넣어요. 보통 긴 음표에 비브라토 넣고 짧은 음표는 그냥 넘어가는데, 조금씩이라도 다 넣는 거예요. 비브라토가 들어가면 음의 방향성과 진행이 구석구석까지 바뀌거든요.
20세기 초반에는 성악이 그랬어요. 그래서 당시 성악을 들으면 재미가 없어요. 비브라토가 균일하게 그려지는데 당시에는 이게 기준이었던 거예요. 음역대가 어디 있든 간에 그 비브라토를 똑같이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성악가였어요. 우리가 듣기에는 염소 소리 같은데, 실제로는 어느 구석에 있든지 그 소리가 작든 크든 다 들렸을 거예요. 비브라토를 계속 가져가니까. 그게 신기하게도 악기에도 있었고 성악에도 있었던 거죠.
그때 이런 개념을 많이 배우게 된 거예요. 옛날 레코딩을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접근하면 안 되는구나. 소리가 크구나, 작구나.' 그게 뒤집힌 게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예요. 기본적인 성악에 드라마를 실은 거죠. 너무 전문적인 얘기인가요? 재밌으세요? 이거 아무 데서나 하는 얘기 아닌데.
김수현 기자 : 이거는 새로운 얘기인데요. 재미있어요.

백윤학 지휘자 : 새로운 얘기, 제 영업 비밀일 수도 있고. (웃음) 마리아 칼라스는 여기에 드라마를 넣어요. 예전까지는 '카르멘'을 부르든 '토스카'를 부르든 들으면 다 똑같았어요. '똑같은 사람이 기계처럼 노래를 하고 있구나' 생각이 드는데, 칼라스는 그 소리 안에 드라마를 넣은 거죠.
요즘 성악가들은 사실 드라마만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듣고 있으면 드라마는 격정적으로 하는데 소리에서 주는 감정은 많이 떨어져요. 근데 아주 잘하는 성악가들도 있어요. 음역대 등을 프리하게.
예전에 '카르멘' 보면 메조소프라노가 아니라 소프라노라고 쓰여 있어요. 오페라 코미크(대사가 포함된 오페라 형식)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옛날에는 성악에 기준이 없었어요.
김수현 기자 : 그렇게 음역대를 딱 나누는 (기준이 없었다)
백윤학 지휘자 : 맞아요. 지금 성악하는 분들도 오페라 코치도 지휘자들도 얘기하는데, 도시 전설처럼 '언제부터인가 나눠서 얘기하기 시작했다'라고.
김수현 기자 : 근데 '모차르트' 오페라 보면 '이건 메조소프라노가 하는 역' 이런 게 다 (정해져) 있잖아요?
백윤학 지휘자 : 그것도 원본을 한번 찾아봐야 해요. '카르멘'이 (음역대가) 낮긴 한데, 사실은 좀 구분되긴 하는데. 예전에 마리아 칼라스는 다 불렀죠. '카르멘'도 부르고.
김수현 기자 : 소프라노도 하고.
백윤학 지휘자 : 테너는 좀 달라요. 테너는 19세기 중반에 새로 생긴 역할이기 때문에. 오페라 델라웨어 선생님한테 그런 걸 많이 배웠어요. 옛날 음악 많이 듣고.
김수현 기자 : 오페라를 코치하려면 외국어를 다 알아야 되잖아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심지어 체코어도 있고.
백윤학 지휘자 : 딕션(노래할 때 발음)으로 접근할 수 있고 언어(언어 전체의 구조)로 접근할 수 있는데, 언어로 접근하는 게 좋고. 예를 들면 이탈리아어는 이탈리아에서 배운 이탈리아어를 딕션으로 할 수 있는데, 독일어는 달라요.
독일어 'der, des, dem, den'(정관사)에서, 'der'는 '데어'거든요. 우리말로 치면 글자가 2개예요. '데어'. 'r'이 '어'가 되는 거예요. 근데 노래할 때는 '어'가 뒤에서 나기 때문에 안 좋은 모음이에요. 이탈리아어는 (입) 앞쪽에 붙어서 뚜렷하게 들린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큰 장소에서 독일어로 노래한다면 '데어' 하면 잘 안 들리고 '데르' 해야 발음이 사는 거예요.
외국어가 written language가 기본이 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you are / you're'처럼 단어가 축약되면 글자로 보셔야 돼요. 노래할 때는 쓰여 있는 대로 읽어야 될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모든 말(발성)이 이탈리아어화 되게 돼 있어요.
김수현 기자 : 무슨 뜻이지요?
백윤학 지휘자 : '데어'가 아니라 '데르'
김수현 기자 : 독일어로 노래를 부르더라도, 노래할 때는 그런 식으로.
백윤학 지휘자 : 불어도 (목에서 나는) 'r'을 앞으로 꺼내서 해줘야 돼요. 노래할 때는 그래야 들리거든요. 한국어는 목에서 나는 소리가 많아서 이런 면에서 좀 안 좋긴 해요. '박 씨' 얘기하는데 외국 사람은 '팍'으로 듣잖아요. '김'도 '킴'으로 듣고. 제가 독일에서 유학했으면 이런 걸 몰랐을 거예요.
김수현 기자 : 근데 미국에서 하시니까.
백윤학 지휘자 : 유럽은, 이탈리아어 하고 싶으면 (이탈리아인) 친구 데려오면 이탈리아어 잘하게 되고, 독일어 배우고 싶으면 독일어 친구 데려오면 독일어 잘하게 되는데, 딕션은 달라요. 모음으로 노래하는 게 잘 들려야 되니까 이런 딕션을 공부한 게 좋았고, 언어를 계속 공부했죠.
유펜이라는 아이비리그 학교에서 교환 학생으로 독일어를 2년 정도 들었어요. 미국인들이 하는 독일어니까 재밌더라고요. 불어 클래스도 많이 듣고 재미있었어요. 도움이 많이 되죠.
김수현 기자 : 오페라 지휘 하려면 알아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백윤학 지휘자 : 알긴 알아야 돼요. 도움도 되고.
김수현 기자 : 정작 한국에 와서는 오페라를 할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백윤학 지휘자 : 거의 없었다고 봐야죠. 학교 오페라 한두 번 하고, 가끔 피아노 치면서 학생들하고 같이 한 적 몇 번 있었어요. 언젠가 또 할 일이 있겠죠.
김수현 기자 : 사실 지휘하는 분들도 오페라를 같이 하는 분도 있는데, 어떤 분은 오페라는 별로 안 하고 심포니 위주로 하고, 어떤 분은 오페라가 전문이고. 지휘라는 점은 똑같은데, 오페라와 심포니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