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 세계를 휩쓴 첨단 기업의 공통점…'항저우 여섯 용'의 저력 [스프]

[종횡만리,성시인문(縱橫萬里-城市人文)]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 문화산업을 주요 발전 동력으로 : 저장성 항저우(杭州) (글: 한재혁 전 주광저우 총영사)

스프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라부부 라부부. 출처 : AP연합뉴스

최근 몇몇 국내외 유명 연예인들의 최애 아이템으로 SNS를 달구며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인형 캐릭터가 있다. '라부부(Labubu, 拉布布)'이다. 홍콩 태생 카싱룽(龍家昇)이 네덜란드에서 자라면서 영감을 받은 북유럽 신화에 기반해 디자인한 몬스터 요정 캐릭터로, 2010년 왕닝(王寧)이 베이징에서 창업한 팝마트(Popmart, 泡泡瑪特)의 전 세계 매장을 통해 유통 판매된다.

작년에만 30억 개가 판매되었다고 하며 오픈런에 웃돈까지 얹어 거래되면서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AI <딥시크(DeepSeek)>, 게임 <검은 신화, 우콩(Black Myth, Wu Kong)>, 애니메이션 <너자(Nezha) 2>에 이은 새로운 중국 문화산업의 성공 사례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지난주에는 급기야 항저우(杭州)에 새로 오픈한 팝마트 신규 매장에 상품이 동이 나면서 2시간 만에 영업을 종료하였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인 6월20일 항저우에서는 테슬라, 알리바바 등이 참여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전시회가 개최되어 피아노 연주 로봇 등 첨단 기술을 선보였고, 이에 앞서 같은 항저우에서 5월 말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격투기 대회가 CCTV 방송 주관으로 개최되기도 하였다.

'항저우 여섯 용(杭州六小龍)'이란 신조어가 요즘 들어 회자된다. 미국의 M7(매그니피센트 세븐 :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엔비디아, 테슬라, 메타)이라는 용어와 유사하게 항저우를 기반으로 하는 딥시크(深度求索), 게임사이언스(遊戲科學), 유니트리(宇樹科技), 딥로보틱스(雲深處科技), 브레인코(强腦科技), 매니코어(群核科技) 등 6개 첨단 기업을 뜻한다.

딥시크는 항저우의 저장대를 졸업한 량원펑이 창업한 AI 기업이고, 게임사이언스는 우콩 게임을 만들었으며, 유니트리는 위 로봇 대회에 파트너사로 참여한 로봇 분야 선두 기업이다. AI, 로봇, 디지털 문화산업 등 첨단 산업 분야를 대표하는 최정상급 강소 기업들이 항저우라는 한 도시에 운집해 있는 것이다.

항저우는 저장성의 성도(省都)로 2천년대 초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성 당서기로 재직시부터 첨단 기술과 문화산업을 집중 육성하였고, 시와 구정부 차원에서도 2010년 50명의 고급 전문가와 50개의 매출 규모가 큰 스타트업을 양성한다는 '5050 계획'이나 '해외 인재 창업기지' 조성 사업 등 적극적 지원 정책을 편 결과이기도 하다. 저장대(浙江大), 저장공업대(浙江工業大) 등 우수한 대학들의 연구 능력과 교육 환경, 인근 상하이 등의 경제 역량 외에 역사적, 인문적 요소도 작용했다고 하겠다.
중국본색 한재혁1 항저우와 서호. 출처 : 바이두

사실 항저우가 중국의 첨단 기술의 요람으로 인식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항저우는 일찍이 오월국(吳越國)과 남송(南宋)의 수도였고, 서호(西湖)와 전당강(錢塘江)을 낀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간 세상의 천당(人間天堂)'으로 불렸다. 수많은 문인과 호걸들이 거쳐 가며 시와 문장으로 찬미하였다. 이백(李白), 육유(陸游), 임승(林昇), 유영(柳永), 양만리(楊萬里) 외에 백거이(白居易)와 소식(蘇軾)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낙천(樂天) 백거이(772-846)는 50세가 되던 해에 항저우의 자사(刺史)로 부임한 후 우물을 정비하여 음수 문제를 해결하고 서호(西湖)에 둑인 백제(白堤)를 쌓아 치수 문제를 해결하였다. 3년간의 선정 기간 중에, 그리고 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항저우의 풍광을 추억하며 명시들을 남겼다. <강남을 그리워하며(憶江南)>에서는 "강남이 좋더라, 풍경 좋은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해뜨면 강빛이 불보다 더 붉고, 봄되면 강물이 쪽빛처럼 푸르네. 어찌 강남을 그리워하지 않으리.(江南好, 風景舊曾諳, 日出江火紅勝火, 春來江水綠如藍, 能不憶江南); 강남이 그립네, 가장 그리운 건 항저우라네, 산사의 달빛 아래 계화꽃을 찾고, 마을 정자에 누워 강물을 바라보았네, 언제나 다시금 둘러볼 수 있으려나.(江南憶, 最憶是杭州, 山寺月中尋桂子, 郡亭枕上看潮頭, 何日更重遊)"라고 읊었다.

동파(東坡) 소식(1036-1101)은 백거이보다 약 250년 후쯤인 36세 때와 54세 때에 항저우의 부시장과 시장 격인 통판(通判)과 지주(知州)를 각각 약 3년씩 맡았었다. 백거이가 백제를 남겼다면 그는 서호를 정비하고 소제(蘇堤)를 남겼다. <맑았다가 비 내리는 서호에서 한잔하며(飮湖上初晴後雨)>에서는 "맑은 날씨에 호수 물결과 물방울이 튀어 반짝이는 것도 좋고, 비오는 날씨에는 몽롱한 산 빛깔 또한 특이하게 아름답네, 서호를 미인 서시(西施)에 견주어 본다면, 가벼운 화장이나 짙은 메이크업이나 모두 다 잘 어울린다고 하겠네(水光瀲灩晴方好, 山色空濛雨亦奇, 欲把西湖比西子, 淡粧濃抹總相宜)"라고 서호의 풍광을 찬미했다.

80~90년대까지만 해도 항저우 서호는 먼 과거의 한가하고 광활한 경관을 유지하면서 샹그릴라 호텔 등 한두 개의 높은 건물만 존재하였지만, 오늘날의 항저우와 서호는 마천루로 둘러싸이고 식당과 카페, 관광객들과 각종 행사 및 이벤트로 북적인다. 밤이면 장이머우(張藝謨) 감독이 연출한 '인상 서호(印象西湖)' 공연이 오색 조명을 밝히며 화려하게 선보인다. 당송시에서 느끼는 시적 정취를 느끼고자 찾았던 이들의 관점에서는 실망하거나 지나친 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사(詩詞)와 고전(古典)을 사랑하여 최근 항저우에 정착한 문화계 인사가 있으니 인기 만화가 차이즈중(蔡志忠)이다. 우리 국내에도 <논어(論語)>, <장자(莊子)>, <당시(唐詩)>, <송사(宋詞)> 등 그가 그린 중국 고전 만화책들이 채지충이란 한자음 이름으로 다수 번안 출판되었다.

차이즈충은 1948년 타이완 장화(彰化) 출생으로 15세 때부터 타이베이(臺北)에서 직업 만화가로 나서서 무협만화 <대취협(大醉俠)>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현재까지 26개 언어로 61개국에서 작품집이 발간되어 총 6천만 권이 팔리는 등 중국 본토와 중화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만화가라고 할 수 있다. 1990년 캐나다에 이민하였다가 2009년 중국 항저우(杭州)로 이주 정착하였다. 불교에 심취하여 2020년에는 소림사에서 법명을 받고 출가한 후 '타이완에서 태어나, 항저우에서 생을 마치고, 소림사에서 장례를 치르겠다(生在臺灣, 死在杭州, 葬在少林)'고 말하기도 했다.

작년 11월에는 항저우(杭州)시 시시(西溪)에 그의 세 번째 개인 미술관이 설립되었다. 평생 중국 시와 고전을 쉬운 만화로 풀어썼던 그는 이제 만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을 전략산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항저우에서 미래 문화 인재 양성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본색 한재혁2 항저우 '중국 만화 애니메이션 박물관'. 출처 : 중국 만화 애니메이션 박물관 홈페이지

항저우는 중국 내 '애니메이션의 수도(動漫之都)'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최대 규모의 중국 만화 애니메이션 박물관(中國動漫博物館)을 2021년 개관되었으며, 중국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CICAF: 中國國際動漫節) 행사를 2005년 이래 중앙 및 지방 정부 주관으로 매년 고정 개최하여 오고 있다. 올해는 5월 말 5일간 일정으로 80개국의 2만여 기관, 단체 및 관련 기업들이 참여하고 2천만 명 가까운 관람객들이 참관했다고 전해진다.
중국본색 한재혁3 항저우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한국관.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더 깊고 인사이트 넘치는 이야기는 스브스프리미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콘텐츠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하단 버튼 클릭! | 스브스프리미엄 바로가기 버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SBS 연예뉴스 가십보단 팩트를, 재미있지만 품격있게!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연합뉴스 - 국내최고 콘텐츠판매 플랫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