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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판결"…아르헨서 '유죄' 전 대통령 지지 대규모 시위

"정치적 판결"…아르헨서 '유죄' 전 대통령 지지 대규모 시위
▲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지지자인 사라(54)가 '민주주의가 위험하다'란 팻말을 들고 있다.

"사법부 불신이 잠자는 야당(페론당)을 깨웠다. 크리스티나는 증거도 없이 유죄를 받았고 이것은 부패한 사법부의 민낯을 보여준다."

18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5월 광장'에서 만난 아리엘(45) 씨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말문을 열었습니다.

최근 아르헨티나 대법원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의 부패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 징역 6년형을 확정하자 아리엘과 같은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의 지자자들이 판결에 항의하기 위해 이날 거리로 쏟아져나왔습니다.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1950∼2010) 전 대통령(2003∼2007년 재임)을 이어 2007∼2015년에 대통령을 연임한 아르헨티나 좌파의 거물입니다.

그는 재임 당시 국가 공공사업을 친한 사업가에게 몰아준 뒤 도로 건설 자금 등 일부를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고, 최근 대법원 판결로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부패 혐의에 대한 정황만 있을 뿐 물적 증거가 없다며 '정치적 판결'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판결에 반발하며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자 지난 17일 그를 교도소에 수감하는 대신 가택연금으로 형의 집행 방식을 바꿨으나 지지자들의 분노를 잠재우기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날 집회는 아르헨티나 최대 노동계 연합인 전국노동자총연맹(CGT)을 비롯해 대학생, 은퇴자, 주부 등 각계각층에서 참여했는데, 주최측은 참가자가 최대 100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했습니다.

대규모 시위를 예상해 집회 시작 몇시간 전 5월 광장을 찾았는데 이미 광장은 많은 인파로 인해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집회 장소 인근에 있는 주요 시설물에 대한 방호를 강화했습니다.

5월 광장을 마주 보는 대통령궁 주변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졌습니다.

경찰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진입하는 차량에 대한 검색과 대중교통 승객에 대한 임의 검문도 진행했는데, 곳곳에서 반발하는 시민들과 마찰도 빚기도 했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법부에 대한 깊은 불신감을 드러냈습니다.

자신을 윤리 교사라고 소개한 사라 씨는 "이미 짜여 있던 시나리오대로 나온 엉터리 판결"이라고 말했고, 후안(62) 씨도 "이번 판결은 한마디로 미쳤다. 서민을 위한 정권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기소당하고 증거도 없이 유죄 선고했다"고 비판했습니다.

후안 씨는 또 "(사법부는) 우파 정부는 건들지도 않는다"며 사법부의 불공정성을 꼬집은 뒤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이 사건에 대해 현명한 판결을 내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마르티나(20) 씨는 "사람들은 크리스티나가 부정부패했다는데, 단 한 사람도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정적인 마크리 전 대통령의 친구 판사들이 내린 불공정한 판결이다"라며 가세했습니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시위에 참여한다는 에두아르도 씨는 "크리스티나 재임 기간 중 우리는 많은 권리를 되찾았으며, 소비하고 저축하고 바캉스를 즐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과금 내기도 바빠서 소비 자체가 없다"며 밀레이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난했습니다.

18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5월 광장에서 개최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 지지 시위에서 한 지지자가 '크리스티나를 석방하라'란 팻말을 들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무자비한 정치적 탄압을 의식한 듯 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시위 참가자도 더러 있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시민은 "어제 밀레이 대통령이 대통령령으로 경찰이 이유 없이 시민을 12시간 구금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오늘 지방에서 오는 모든 장거리 버스에 군사경찰과 경찰이 올라가 불시 점검도 했다. 지난 70년대 독재시절에나 있었던 일"이라면서 "사진은 찍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전 대통령 지지자는 아니지만 법치국가를 포기한 사법부의 판결을 비판하기 위해 시위에 나섰다는 시민도 있었습니다.

자신을 변호사라고만 밝힌 한 시민은 "난 크리스티나 지지자도 아니다"면서 " 증거도 없는 판결을 한 사법부를 성토하기 위해서 여기에 나왔고 우리는 이 판결로 법치국가를 포기하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바나나 공화국'이 되었다"면서 한탄했습니다.

이날 집회에서 가택연금 중인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사전 녹음된 음성 메시지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뒤 "더욱 현명해져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더 강해져서 돌아올 것이다"라며 지지자들에게 결속을 당부했습니다.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이날 집회에 대해 대법원 유죄 판결이 분열되어 잠자고 있던 제1야당 페론당을 깨워 결집하는 계기가 됐다며 이번 시위를 통해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끝난 게 아닌 '전설'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에 대한 아르헨티나 우파 진영의 평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밀레이 대통령은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드디어 '정의'가 행해졌다"고 말했고, 중도우파 공화제안당(PRO)의 마리아 에우헤니아 비달 하원의원도 "다 도둑질을 하고서는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정의 구현이었다"며 환영했습니다.

밀레이 대통령 지지자들도 삼권분립의 사법부가 독립된 기관으로 적절한 판결을 내렸면서 "이로써 드디어 키르치네리즘(페론당 내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 내외를 지지하는 당파)은 끝났다"라며 환호해 확연한 인식의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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