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의 연극 뮤지컬 최고 권위 시상식인 토니상 6관왕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의 300석 대학로 소극장에서 초연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과연 어떤 작품인가요? '어쩌면 해피엔딩'은 '반딧불이'로 불리는 팬덤까지 생겨났다고 하는데, 브로드웨이 관객들을 매료시킨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박병성 뮤지컬 평론가와 함께 궁금증 풀어봅니다.
김수현 기자 : 사실 '어쩌면 해피엔딩' 말고도 한국 뮤지컬이 여러 방식으로 해외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됐잖아요.
박병성 평론가 : 그렇죠. 산업화되기 전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고, '에이콤'이라는 이름 자체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라고 하더라고요.
김수현 기자 : '명성황후' 제작사.
박병성 평론가 : '명성황후'도 1997년에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했었죠.
김수현 기자 : 그때는 집도 저당 잡히고 빚 내고,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갔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브로드웨이 가서 시장을 개척하겠다' 이런 차원은 아니었을 것 같고요. 요즘 같은 상황은 아니니까.
박병성 평론가 : 그렇죠. 시장을 개척한다거나 큰 수익을 바라는 산업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이 정도 만드는데 너희 시장에 한번 확인을 받아보고 싶다' 이런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우리 한국도 뮤지컬 하는데 본고장에서 한번 해보자.' 그리고 해외 큰 무대에 서보는 경험. 그런 의미가 컸던 것 같고, 그 당시에는 의미가 있었죠.
박병성 평론가 : 그전에도 '명성황후'가 1995년에 만들어져서 초연, 재연하면서 굉장히 인기가 많았는데 1997년에 (미국을) 갔다 오면서.
김수현 기자 : 더 인기가 많아졌죠.
박병성 평론가 :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이라는 브랜드를 가지면서 10여 년 동안 대단한 인기를 누렸죠.
김수현 기자 : 지금도 공연되고 있잖아요.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의 사명이 있었던 거죠. 그전에도 우리 창작 뮤지컬이 해외에서 공연된 적은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병희 아나운서 : 그래요?
박병성 평론가 : '양반전'이 1987년에 (미국에) 갔던 것 같아요. 서울시립가무단(현 서울시립뮤지컬단)에서 만든 거였고,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하면서 문화 교류 차원으로 여러 나라를 갔는데, 우리 뮤지컬이 (해외로) 나간 첫 사례죠.
김수현 기자 : '명성왕후' 이후에 또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잖아요.
박병성 평론가 : 산업적인 접근을 하게 되는데, 언어의 장벽을 돌파하기 위한 넌버벌 퍼포먼스. 우리가 잘 아는 '난타'가 2004년부터 오프 브로드웨이 가서 거의 1년간 공연을.
김수현 기자 : 그 전에 에든버러페스티벌 등을 가면서 사전에 인지도를 높이고, 오프 브로드웨이 가서 1년 이상.
박병성 평론가 : 1년 공연을 했어요. 에든버러페스티벌에서 지명도를 높이고, 현지 기획사와 손을 잡고 올리는 '브로드웨이 아시아'라는 모델을 만들었는데, 이 모델을 보고 '점프'가 또 에든버러페스티벌 가고, 또 현지 파트너 만나서 올리는 길을 걷죠. 넌버벌 퍼포먼스 두세 작품이 그런 식으로 갔던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그때는 '공연 관광'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였잖아요. '관광객들이 와서 저녁 때 할 일이 없다. 외국에 가면 브로드웨이 공연 보는데, 우리나라에 오는 관광객들도 공연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 해서 시작한 거고, 해외까지 나간 거죠. 송승환 대표가 참 대단해요.
박병성 평론가 : 대단하죠. 송 대표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1년 동안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을 했지만 수익이 나지 않았는데 어떤 이유라고 생각하시는지 질문을 했었는데.
첫 번째는 아무래도 여전히 브로드웨이나 오프 브로드웨이는 관광객 시장이 많은데, 한국 작품들이 경쟁력이 좀 떨어지더라. 노조들이 잘 자리 잡고 있다 보니까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는 거예요. '난타'는 불을 써야 되는데 한국에서는 조연출이든 매니저든 누군가가 공연하기 전에 불을 관리하면 되는데, 거기는 불만 관리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거예요. 스태프가 몇 배로 늘어나다 보니까 제작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김수현 기자 : 그런 사연이 있군요.
박병성 평론가 : 그래서 다음에 간다면 그런 걸 적절히 협상하면서 우리 식으로 좀 밀어붙일 필요도 있겠다고 생각하신다고.
김수현 기자 : 그런 게 다 경험인 거죠. 안 해보면 모르는 건데.

김수현 기자 : 그래서 '난타' 같은 비언어 퍼포먼스의 해외 진출이 있었고, '한국 뮤지컬이 해외로 진출한다' 이런 기사가 나오곤 했었어요.
박병성 평론가 : 한류 붐을 타면서 2010년대 아시아권으로 많이 진출하게 되는데요. K팝 아이돌이 출연한 작품들이 일본에 많이 가게 되는 거죠. '미녀는 괴로워'도 카라의 규리가 가면서. (웃음) 그게 조건이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카라가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가 있었거든요.
이병희 아나운서 : 카라 멤버가 와야 한다.
박병성 평론가 : 네. 카라 멤버를 한 명은 캐스팅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투어 공연들이 많이 갔고, 2013년 일본에 한국 뮤지컬 전용관 '아뮤즈뮤지컬씨어터'가 생겼어요. 영화도 만들고 매니지먼트도 하는 엔터테인먼트 그룹 '아뮤즈'의 오사토 회장이 한국 뮤지컬 광팬이세요. 2013년에는 주로 아이돌이 출연하는 작품들이 갔었거든요. 그런데 오사토 회장은 '한국 뮤지컬이 아이돌 빼도 경쟁력이 있다'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으로 공연했던 거예요.
근데 성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아이돌이 안 가서 성과가 안 좋았다기보다는, 아뮤즈가 공연 사업을 주로 했던 곳이 아니다 보니까 홍보나 마케팅이 원활하지 않았고, 일본 시장은 오래전부터 준비해서 정보가 빨리 노출이 돼야 하는데, 아뮤즈뮤지컬씨어터에서 공연을 단기간으로 올리는데 캐스팅 등이 빨리 정리되지 않다 보니까 일본 공연 시장의 흐름과 달라서 결국 성과는 좋지는 않았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그렇지만 여러 시도가 있었네요, 계속해서.
김수현 기자 : 그렇죠. 그리고 꼭 창작 뮤지컬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라이선스 뮤지컬로 만들었던 것을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가서 공연하는 거예요.
박병성 평론가 : '쓰릴 미'도 일본에 갔었고, '삼총사'나 '잭 더 리퍼'같이 체코 뮤지컬인데 한국화된 게 일본에 가기도 하고.
이병희 아나운서 : 오히려 우리 버전으로.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