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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후하하 죽였다" 아이 시신에 남긴 잔혹한 메시지…아동 연쇄 살인사건 진범은 어디에

[꼬꼬무 찐리뷰] "후하하 죽였다" 아이 시신에 남긴 잔혹한 메시지…아동 연쇄 살인사건 진범은 어디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5일 방송된 '내 아이가 사라졌다' 특집 3부작 중 두 번째 ''후하하 죽였다' 범인의 메시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김종국, 개그맨 겸 배우 임하룡, 가수 겸 배우 정은지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시신으로 발견된 아이

때는 1975년 8월 25일 새벽 6시. 부산 서구의 한 어시장 근처야. 방파제 옆엔 야외 작업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새벽부터 상자들을 정리하던 장 씨의 눈에 뭔가 수상한 게 들어왔어. 장 씨는 쌓여있는 상자들 사이를 유심히 들여다봐. 그러다 거기서, 어린 남자아이를 발견해.
꼬꼬무

아이의 상태는 충격적이었어. 속옷 하나만 걸친 채 손과 발이 묶여 있고, 입안은 신문지로 가득 채워진 상태로 숨이 멎어 있어. 살인사건이었어. 50년 전의 그 사건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형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꼬꼬무

"이 사건 자체가 머리에 남아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현장을 기억하고 있어요. 제가 서 있는 위치에서 왼쪽이 수산 센터 공판장이에요. 현장 날씨가 그때 더웠어요. 바닷가이기 때문에 바람은 좀 불었는데 더웠어요. 앞쪽 여기에 나무 상자가 그 당시에 쭉 있었어요. 상자들 중간 지점에 그 당시에 (남자아이의 시신이) 이 상자 더미 속에서 있었어요. 지금은 완전 변형이 됐습니다 이 지역이."
-서정우, 당시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

누군가 끈으로 아이의 목을 조른 걸로 보여. 이 끈은, 아이가 입고 있던 메리야스를 찢어 만든 거야. 그 외 다른 흉기나 도구는 발견되지 않았어.
꼬꼬무

"족적이라든지 혈액이라든지 담배꽁초에 있는 타액이라든지 이런 걸 찾아내야 하는데 전혀 그 당시에는 그런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고. 그 당시엔 CCTV가 없던 시절이에요."
-서정우, 당시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

어시장은 발칵 뒤집혔어. 경찰들이 몰려들고 상인들도 죄다 나와서 현장을 지켜봐. 그땐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던 시절이야. 이 동네 아이라면 누군가는 알아봤을 텐데, 아무도 아는 이가 없어. 경찰은 아이의 신원부터 파악해. 그리고 숨진 아이가 사건 현장에서 7km 떨어진 곳에서 실종된 아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
꼬꼬무

아이의 이름은 박도훈(가명). 2남 2녀 중에 막내야. 장 씨가 어시장에서 이 작은 아이를 발견하기 하루 전인 8월 24일 저녁. 도훈이는 오후 7시쯤 가족들과 집에서 저녁을 먹었어. 그렇게 식사를 한 후 엄마가 잠깐 외출하고, 오후 9시쯤 돌아와 보니 도훈이가 안 보이는 거야. 가족 중에서 아이가 나가는 걸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 부랴부랴 가족들은 막내를 찾아다녔고, 그때 도훈이를 봤다는 사람을 만났어. 당시 도훈이 아버지가 공장을 운영했는데, 공장 직원이 도훈이를 만났다는 거야.

"일 끝내고 가는데 도훈이가 길에서 놀고 있어서, 동전 20원 주고 후딱 집에 들어가라 했습니다."
-공장 직원

돈을 받자마자 구멍가게로 달려가는 걸,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집에 가라고 돌려보냈대. 그렇게 도훈이가 집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마지막이었다는 거야.

부검 결과에 따르면, 도훈이의 사망 시각은 저녁 식사 후 2시간 이내로 추정돼. 아마도 공장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길에, 누군가에 의해 유괴된 걸로 보여. 가족들은 어땠겠어. 사랑스러운 막내아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어.

"강 부인은 경찰의 연락을 받고 남편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끔찍하게 숨져 있는 차디찬 시체가 바로 도훈 군이었다. 강 부인은 외마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쓰러져 실신했다. 이 마을에서는 총명하고 명랑하다고 귀여움을 받고 있는 도훈 군은 언니들의 책을 펴놓고 공부도 하고, 저녁이면 온 가족이 모여 도훈 군의 노래를 들으며 단란한 한 때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신문 기사 中

한 가족을 무너뜨린 범인, 꼭 잡아야지.

▲ 아동 연쇄 살인사건

형사들은 우발적인 범행이라 보지 않았어. 아이 유괴부터 살인, 사체 유괴까지 과정이 너무 빠르고 일사불란하니까. 사실, 60~70년대는 어린이 유괴 사건이 잘 발생하던 시기야. 목적은 금전 혹은 원한. 그런데 이 사건은 범인이 돈을 요구해 오지도 않았고, 가족 모두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은 없었다고 해. 그럼 왜 범인은 아이를 참혹하게 살해한 걸까.
꼬꼬무

"어떤 금품의 목적이 아니고 어린아이를 잔인하게 죽이고 자기가 어떤 희열을 느끼는, 자기 범죄의 도구로 충족시키는 특이한 범죄가 아니겠느냐. 그 당시에 전국적으로 큰 사건이었습니다. 애들이 연속으로 죽은 사건이기 때문에."
-서정우, 당시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 사실 도훈이가 처음이 아니었어. 도훈이기 사라지기 나흘 전에도 한 여자 아이가 사라졌어. 8월 21일 새벽 용두산 공원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거야.
꼬꼬무

공원 관리인이 수풀 속에서 발견한 아이 시신은, 알몸 상태에서 속옷만 입은 채로 손발이 결박돼 있었어. 도훈이 때랑 똑같아.
꼬꼬무

소녀의 이름은 김지은(가명). 7살이야. 8월 21일 저녁 10시쯤. 외할머니네서 놀던 지은이는 할머니로부터 용돈을 받자 집 근처 핫도그 가게로 달려갔어. 핫도그를 사 먹고 집으로 돌아가던 지은이는 그대로 사라졌어. 가족들은 지은이를 찾아 헤매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다음날 생각지도 못한 모습의 딸을 만나게 된 거지. 도대체 누가 왜 내 딸의 모습을 앗아간 걸까.

그런데 이 끔찍한 사건은, 그대로 묻힐 뻔했어. 당시 이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꼬꼬무

"국제신보 사회부에 박몽계 기자라는 분이 계셨어요. 이 사건은 이 분의 특종으로 인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어요. 그 현장이 용두산 공원이거든요. 그 남쪽에 약간 나무가 있는 거기에 시신이 버려져 있었는데, 기자들이 갔을 땐 시신 부검을 위해 옮겨진 다음이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나와 있는 형사들이 기자들에게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다. 이건 단순 변사 사건이니까'라고 해서 다수 기자들이 그걸 믿고 내려왔어요. 박몽계 기자만이 '조금 이상하다' 느꼈죠. 왜냐하면 신발이 없는 상태에서 버려졌거든요. 신발이 없다는 게 참 이상하다 느끼고, 혼자서 다시 올라갔어요. 거기 있던 사진사, 상인들도 있을 텐데. 그걸 취재해 보니까, '노끈으로 묶여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겁니다. 살인 사건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거든요. 그래서 보도가 됐습니다."
-조갑제, 당시 국제신보 기자

경찰은 왜 살인 사건을 단순 변사 사건이라 했을까. 경찰은 나중에 이렇게 입장을 발표해. '사건이 워낙 끔찍해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단순한 변사 사건이라 보고한 거다'라고.

▲ 아이의 몸에 새긴 글

지은이의 부검 결과, 성폭행 흔적과 함께 목이 졸려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어. 결국 이 특종 기사로 사건이 커지게 되며, 특별 수사본부가 차려졌어. 서 형사를 비롯해 다른 지역 형사들이 이때 대거 투입됐어. 당시 보도 기사야.
꼬꼬무

"21일 새벽 5시 45분. 부산시 중구 용두산 공원 입구 계단 옆 숲 속에서 두발이 나일론 끈으로 묶이고 목 졸려 숨진 8세 가량의 소녀 시체가 발견됐다. 시체의 가슴에는 '대신공원서 죽여 이곳에 갖다 버린다'는 사인펜 글씨가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경찰은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펴고 있다."
-당시 신문 기사 中

사인펜으로 아이의 몸에 글씨를 썼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야. 범인은 아이의 몸에 이런 글을 새겼어.
꼬꼬무

"범천동 임재은이 대신공원에서 죽었다"

범인은 이렇게 알 수 없는 단서만을 남겼어. 그런데 지은이가 살해된 지 나흘 만에, 또다시 도훈이도 주검으로 발견된 거야. 경찰은 두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판단했어. 사실 도훈이 몸에도 뭔가가 남겨져 있었어. 바로 이 글씨야.
꼬꼬무

"후하하 죽였다"

다섯 살 도훈이의 배에 범인이 남긴 글자였어. 보통 범인들은 최대한 현장에 자신의 흔적을 없애려 하잖아. 이렇게 대놓고 알리려 하지 않지. 50년이 지난 지금의 전문가가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래
꼬꼬무

"소위 시그니처라고 하는 거. 나는 이 아이의 배에다가 사인펜으로 이렇게 그림으로써 '한국을 발칵 뒤집어놓고 싶다'는 그런 욕구. 예컨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이춘재가 몸에 남겨놓던 거. 그것도 일종의 시그니처예요. 이런 거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얘기가 됐냐면, 1990년 후반기.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저 범죄 같은 경우는, 굉장히 시간을 앞질러간 그런 사건이라고 볼 수 있어요. 통상적으로 피해자의 옷이라든가 이런 걸 이용한다는 건, 어떤 측면에서는 굉장히 교활한 측면이 있다는 거죠. 굉장히 지능적인 그런 범죄를 하고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이 사건, 당시로선 전무후무한 어린이 연쇄 살인사건인 데다가, 시신에 글자까지 남긴 엽기적인 사건이야. 형사들은 이를 갈고 범인 검거에 나섰어.

▲ 아동 연쇄 살인범을 잡아라

형사들은 두 사건의 공통점을 파악하기 시작해. 먼저 지은이가 사라진 곳, 부산 영도구였어. 지은이의 시신이 발견된 용두산 공원은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이야. 그리고 도훈이가 실종된 곳은 동구, 발견된 곳은 서구의 방파제 인근이야. 다 근처지. 이 지역이 범인에게 익숙한 장소일 가능성이 높아.
꼬꼬무

그리고 범인의 특징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건 '시간'이야. 지은이의 사망 추정 시간은 밤 11시쯤이었고, 도훈이의 사망 추정 시간은 밤 9시경이야. 자정이 되기 전에 범행들을 저질렀어. 범인은 아이를 유괴한 즉시 살해 및 유괴할 장소로 이동한 거야. 그럼 범인은 왜 자정 전에 범행을 저질렀을까? 이 시절엔 치안 및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야간 특정 시간에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하는 '통금'이 있었어.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진, 특별한 사유 없인 돌아다닐 수 없어.

"통금이 있었기 때문에 11시 이후 되면 한적한 그런 시간이고, 범인들이야 뭐 잠적하기가 좋죠. 특히 어린애들을 묶어 놓고, 입에 자갈 같은 거 넣으면 꼼짝 못 하잖아요."
-서정우, 당시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

그런데 두 아이 모두, 유괴된 곳과 발견된 곳의 거리가 수 km 떨어진 곳이야. 범인은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이동했을까? 형사들은 범인이 차량을 이용했을 거라 생각했어. 거리도 꽤 있고, 아이들과 함께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이동해야 하니까. 당시엔 차가 엄청 고가라서, 가진 사람들이 흔치 않던 시절이야.

경찰은 부산 시내의 택시 5천대를 조사했어. 그땐 형사의 머리와 발이 첨단 수사 장비였고, 검거는 탐문으로 시작해 취조로 완성했어. 완전히 아날로그 수사야. 아이들이 사라진 동네와 시신이 발견된 곳 주위를 모두 탐문했어. 그러자 하나 둘, 목격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그런데 목격자들의 진술이 조금씩 어긋나고, 범인을 특정할 단서는 나오지 않았어.

일부 형사들은 범천동을 샅샅이 뒤졌어. 지은이 몸에 남긴 메시지 '범천동 임재은이 대신공원에서 죽었다' 때문이야. 처음에 형사나 기자들은, 범인이 대신공원에서 지은이를 살해해 용두산 공원에 유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어. 지은이의 이름을 재은이로 잘못 알고, 그런 글을 남겼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니, 이게 만약 이름과 장소를 잘못 쓴 게 아니라, '죽였다'를 '죽었다'로 잘못 쓴 거라면? '범천동 임재은'이 범인과 관련된 사람일 수도 있잖아. 그래서 형사들은 '범천동 임재은'을 찾아 나섰어. 임재은이 꼭 범인이 아니라 해도, 혹시나 범인과 연결고리가 있을 수 있으니까. 같은 이름, 비슷한 이름 전부 조사했어. 하지만 허탕이었어.

형사들은 찾다 찾다 여기까지 털었어.
꼬꼬무

"유괴범을 잡기 위해 다각도로 수사를 펴고 있는 경찰은 범인이 죽은 도훈 군의 배 위에 써놓은 '후하하 죽었다'의 '후하하'라는 특유의 비웃는 웃음은 'ㅅ'문화사에서 출판된 만화 속에 들어 있음을 찾아내고, 범인은 만화책을 즐겨 읽는 성격의 소유자로 판단하고 있다."
-당시 신문 기사 中
꼬꼬무

경찰은 총 2,400여 종의 만화책을 다 뒤져서, '후하하' 표현이 나온 만화책 4종류를 찾아냈어. 그리고 이 만화책을 빌려본 사람들까지 전수 조사를 했어.

▲ 죽음의 퀴즈

당시 사건을 취재하던 조갑제 기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어. 그러다 조 기자는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듣게 돼. 지은이가 발견되고 이틀 뒤인 23일 밤 11시쯤. 영도의 한 파출소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대.
꼬꼬무

"8월 23일 밤 11시쯤 파출소로 전화가 걸려 왔는데, 전화 건 사람이 '용두산 공원 김지은 양 피살 사건을 압니까?'라고 물었어요. 방범대원이 '압니다'라고 하니까,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내가 ㅇㅇ공고와 ㅇㅇ중학교 사이에서 죽였습니다'… 방범대원이 놀라서 '지금 전화 거는 곳이 어디입니까?'라고 하니까, 이 남자가 네 자리 숫자를 불러줬어요."
-조갑제, 당시 국제신보 기자

수화기 너머 남자가 불러준 네 자리 숫자는 '7698'. 경찰은 이 네 자리 숫자가, 전화번호 뒷자리라고 추측했어. 파출소가 영도에 있었으니, 앞에 영도 지역번호를 넣어 찾아보니, 여관 하나가 나왔어. 범인의 작은 단서라도 남아있길 바라며, 형사들은 당장 그 여관으로 달려갔어.

여관방 하나하나, 손님 한 명 한 명을 모두 조사했는데, 안타깝게 용의점은 발견되지 않았어. 형사들은 범인이 언급한 학교 주변도 수색했지만, 작은 단서조차 나오지 않았어. 그럼 이 전화, 장난전화일까? 범인이 경찰들을 유인하고 도망간 걸까?

그런데 그 이상한 전화가 온 다음날 밤에 다섯 살 도훈이가 유괴됐고, 범인이 시신에 '후하하 죽였다'라는 메모를 남겼어. 마치 자신이 낸 문제를 풀지 못한 대가라는 듯이.

"분개했죠 분개. 범인을 잡지 못하고 어린애가 연쇄적으로 죽고 하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아주 분개했죠."
-서정우, 당시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

무고한 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어. 그런데 범인은 게임하 듯, 단서를 던지고 조롱하고 있어. 화는 나지만, 범인은 누군지 종잡을 수 없고, 또 피해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형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꼬꼬무

"우리 경찰은 보통 큰 사건이 터지면 동일 수법 전과자부터 먼저 추적하거든요. 그런데 동일 수법과 전과자도 없었어요. 어린애 죽여놓고 글 쓰는 그런 동일 수법 전과자를 그 당시에 찾았는데. 그 당시에는 희대 사건으로 희귀한 사건으로 수사본부에서도 방향 제시를 바로 하지 못했어요."
-서정우, 당시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
꼬꼬무

"그리고 경찰에 전화해서 '너희 경찰 수사 똑바로 해라'. 자기가 범행하기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그런 여러 가지 어떤 욕구를 한번 현실화시켜 보는 거예요. 본인은 시대를 앞질러간 그런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 당시에 경찰은 도대체 이런 종류의 범죄가 자기들은 형사 생활 몇 십 년 하면서 본 적이 없으니. 그것에 대해 대처를 못 한거죠."
-오윤성, 순천향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당시 부산은 발칵 뒤집혔어. 특히 아이 키우는 집들은 비상사태야. '소중한 내 아이 우리가 지키자' 거리 곳곳에서 유괴 예방 캠페인이 펼쳐지고, 학교 앞엔 아이를 데리러 나온 엄마들로 바글바글 해.

"잇따른 불시 무차별한 살인은 며칠 사이 부산 시민의 생활 방식을 눈에 띄게 변모시켜 가고 있다. 도훈 군이 변을 당한 24일 이후 시내 술집들은 손님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해 질 녘이 두려워진 부모들은 레슨이고 과외수업이고 집 밖에 아이들이 나가지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중구 대교동 김 모씨는 애들 걱정에 일이 손에 안 잡혀 하루에도 10번 가까이 집에 전화를 걸어 이상 없나를 확인하고 있다. 주부들도 몇 분 동안 시장에 갈 사이라도 애들을 이웃집에 데려다 두고 가는 등 조심하고 있다."
-당시 신문 보도 中
꼬꼬무

"'후하하 사건' 때는 워낙 언론이 집중적으로 보도를 하고 그때는 공포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죠. 산에 들판에 경찰이 동원돼서 수색도 하고 하니까. 공포 영화 보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죠."
-조갑제, 당시 국제신보 기자

범인에게 걸린 현상금만 100만원. 당시 공무원 초봉이 2만원 정도였대. 수사당국의 의지가 느껴지지? 도대체 범인은 어떤 가면을 쓰고 사건을 지켜보고 있을까.

▲ 유일한 생존자

그때, 경찰서로 누군가 찾아왔어. 30대 남성이야. 그 남자의 말에 경찰서는 발탁 뒤집혔어.

"저희 딸이 그놈한테 유괴 됐었어요. 그놈이 확실해요."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거야. 이 남자의 딸은 아홉 살이었어. 이름은 임재은(가명). 맞아. 아까 그 '범천동 임재은' 메시지 속 그 이름이야.

그날 재은이는 오전 11시쯤 피아노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고 있었어. 교습소에서 집까진 걸어서 10분 내외 거리야.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걸어가던 재은이 어깨를 덥석 잡아. '따라오지 않으면 죽인다. 조용히 따라와' 하며. 재은이는 악 소리도 못 내고 조용히 남자를 따라갔어. 얼핏 봐서 2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 벌건 대낮에, 재은이의 동네에서 태연하게 아이를 유괴한 거야.
꼬꼬무

지은이가 유괴된 게 8월 20일, 도훈이가 24일이야. 재은이가 유괴된 건 8월 18일 월요일이야. 재은이가 셋 중에 가장 먼저 범행대상이 됐던 거야.

범인은 재은이를 데리고 골목을 돌아 대로변에 다다르자, 재은이와 함께 택시에 탔어. 얼마 후 택시가 도착한 목적지는 대신공원 입구. 아까 지은이 시신에 남겨진 메시지 '범천동 임재은이 대신공원에서 죽었다' 알지? 재은이의 존재를 몰랐던 형사들은, 범인이 지은이를 대신공원에서 죽이고 용두산 공원에 유기했을 가능성을 고려했잖아. 근데 그 대신공원에 온 건, 지은이가 아니라 실제로 재은이었던 거야.

그럼 대신공원은 어디냐. 재은이네 집은 부산 진구에 위치한 범천동이야. 도착한 곳은 재은이 동네에서 5km 정도 떨어진 대신공원. 지은이와 도훈이가 발견된 곳과 멀지 않은 곳이야.

범인은 재은이를 데리고 마치 산책하듯 자연스럽게 약수터까지 올라가. 8월 중순의 부산. 얼마나 더웠겠어. 범인은 재은이에게 약수도 한잔 마시라고 건네. 그런 친절한 행동에, 말만 잘 들으면 집에 보내줄 수도 있겠다 기대도 했어. 재은이는 범인이 시키는 대로 옷을 벗고 계곡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기도 했어. 범인과 함께. 재은이는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계곡에서 나온 뒤 범인은 재은이에게 뜻밖의 주문을 했대.

"나를 주인님이라고 불러라."

범인은 재은이를 데리고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어. 인적 드문 곳에 이르자 범인이 재은이를 앉히고 물어봤어. 이름이 뭔지, 집에 TV가 있는지, 집 전화번호는 뭔지. 재은이는 집 전화번호를 댔고, 범인은 주머니에서 작은 성냥갑을 꺼내 받아 적었어. 호구조사가 끝나자 범인은 이런 말을 했어.

"이제부터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라."

그리고 그때부터 범인은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어. 아이를 폭행하고 결박하더니 재갈을 물린 거야. 심지어 추행까지 하려던 그때, 멀리서 인기척이 들려왔어. 조급해진 범인은, 재은이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 평소라면 피아노 학원에 다녀와 엄마가 해준 간식을 먹고 오빠와 놀고 있을 시각에, 재은이는 범인의 손아귀에서 정신이 아득해져 갔어. 아이의 몸이 축 늘어지자 범인은 잽싸게 자리를 떴어.

그날 오후, 재은이의 집에 전화가 걸려왔어. 초등학생 오빠가 전화를 받자 범인은 "재은이가 대신공원에 죽어있다. 빨리 가봐라. 알겠나?"라고 말했어.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부모님은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았대. 재은이가 피아노 교습소에서 돌아오지 않아 가족들이 걱정하고 있던 그때, 재은이가 사망했다고 알려온 전화야.

그런데 곧이어 또 다른 전화 한 통을 받아. 파출소였어. 알고 보니 가족들이 범인의 전화를 받고 충격에 빠졌을 때쯤, 재은이의 눈이 번쩍 떠져. 죽음의 끝자락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거야. 범인이 떠나고 얼마 뒤, 재은이는 정신이 들었어.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 등산객들이 재은이를 발견한 거야. 그리고 목을 조르고 있던 끈부터 풀어줬어.

"공공거리는 신음소리가 났다. 잡초 속에서 어린애의 얼굴이 보였다. 임 양은 손발이 묶인 채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반시신 상태. 임 양의 몸은 땀과 흙으로 뒤범벅. 구출자들을 보고도 악한을 보듯 겁에 질려 있었다. 일행은 임 양을 업고 내려오면서 수건으로 땀과 흙을 훔쳐 줬다. 임 양의 아버지는 당황한 나머지, 그때까지 자기가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당시 신문 보도 中

범인은 재은이가 살아있다는 걸 모른 채, 재은이 집에 전화를 건 거야. 다행히도 재은이의 상태는 양호했어. 며칠 치료만 받으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대. 그런데 가족들은 불안해했어. 범인이 재은이의 이름부터, 얼굴, 집 전화번호도 아니까. 재은이가 살아있다는 걸 알면 보복할까 봐,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꽁꽁 숨기기로 한 거지. 차라리 범인이 재은이가 죽은 걸로 아는 게 낫겠다 싶었던 거야. 그래서 재은이 사건은 한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어.

▲ 범인의 메시지

아마도 범인은 그게 이상했던 거 같아. 자기가 친절하게 집에 전화까지 해서 재은이가 죽었다고 알려줬는데, 신문이나 라디오에 한마디도 나오지 않으니까.
꼬꼬무

"자꾸 알리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을 죽여놓고 신문에 자기가 죽인 사건이 크게 보도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고. '내가 사람을 죽였는데 보도가 안돼?' 해서, 그 사건을 저지른 거 아닙니까."
-조갑제, 당시 국제신보 기자

그래서 범인은 이틀 뒤 또 다른 아이를 유괴해 살인을 저질러. 용두산 공원에서 발견된 7살 지은이야. 그리고 지은이 몸에 '범천동 임재은 대신공원에서 죽었다'라고 썼어. 심지어 범인은 이렇게까지 했어.

"8월 21일에 범인은 실망했을 거라고. 두 사람을 죽였는데, 용두산 공원에 버린 그 사건만 보도되거든. 또 배 위에다가 메모까지 남겼는데도 안 알아주는 거야. 그거 (지은이 사건) 하나만 알아주는 거야. 그래서 23일 지은 양을 죽인 사흘 째죠. 영도에 있는 어느 경찰서 파출소에 전화를 건다고."
-조갑제, 당시 국제신보 기자

시신에 메시지를 남겼는데도 아무도 자신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자, 파출소에 전화해서 '7698'라는 번호까지 알려줬어. 이 숫자의 의미는 알고 보니, 재은이네 집 전화번호야. 경찰에 지은이를 죽였다고 말하며, 그 전 범행인 재은이에 대한 단서까지 일부러 투척한 거야. 마치 자신이 한 일을 제발 알아달라는 듯이.
꼬꼬무

"아이를 유괴해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살해하고 하는 그것으로써 자신의 욕구가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 거예요. 시신이 어디에 버려져 있다, 그 과정을 통해서 가족들이 얼마나 놀라고, 그 고통 속에 있는 상황을 본인은 즐기는 거예요. 그것은 자기가 일종의 가지고 있는 권력이에요. 자기만 가르쳐 줄 수 있어요. 어디에 뭐 시신이 있다는지 하는, 그런 정보를 자기가 줄 수 있으니까. 자기는 마치 이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거죠. 이 범인의 목적은 자기가 한 행동이 부산 지역을 발칵 뒤집어 놓기를 바란 거죠. 그러니까 경찰에게 수사 똑바로 하라고 이런 얘기를 하죠. 그래야 내가 의도하는 그 뭔가가 이렇게 드러나서, 내가 어떤 행위를 한 것에 대한 성취감 이런 게 있을 거 아니냐."
-오윤성, 순천향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꼬꼬무

"(범행을) 제대로 알려서 희대의 살인마가 나타났다든지 하는 이런 1면 머리기사를 기대하고 있었겠죠. 그래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까. 24일 남자아이를 유괴해서 죽이고 그 배에다가 또 그걸 썼죠. '후하하 죽였다'. 그는 살인을 통해서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인간 아니겠느냐."
-조갑제, 당시 국제신보 기자

▲ 범인의 몽타주

기사를 통해서 지은이와 도훈이의 사건을 알게 된 재은이 부모님이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게 된 거야.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으려고. 재은이는 범인을 만난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니까. 덕분에 미궁에 빠졌던 이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 됐어. 재은이는 힘든 시간을 되짚어 차분히 범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어. 9살 재은이는 범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려고 최선을 다했어. 생각보다 디테일한 걸 기억하고 있어서 형사들도 놀랄 정도였어. 그렇게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완성한 범인의 몽타주는 이랬어.
꼬꼬무

나이는 추정컨대 20~30대 정도. 키는 170cm 정도. 머리는 짧게 깎아서 두 귀가 완전히 드러났대. 결정적으로 오른쪽 코 옆에 2개, 입가에 쌀알만한 점이 하나 있었다는 거야. 이 중에 도훈이가 발견된 방파제 근처에서 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목격자의 증언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어. 눈 밑과 코 주변에 여드름 같은 흔적이 있다고 했거든. 당시 몽타주는 6명 이상의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작성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더 이상의 목격자는 없었어. 이 몽타주의 얼굴을 한, 억센 사투리를 쓰는 남성. 그렇게 수사망이 좁혀졌어.

"희망을 가졌죠. 왜냐하면 용의자 인상착의가 처음 나왔으니까. 그게 얼마나 큰 도움이 돼요. 너나 할 것 없이 다 자식을 키우기 때문에 이 범인을 우리 손으로 잡아보겠다는 그런 사명감을 갖고 의지를 갖고 탐문하고 탐문하고. 아주 그 당시에 굉장했습니다."
-서정우, 당시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

경찰은 범인의 몽타주가 단긴 수배전단을 10만장 넘게 뿌렸어. 부산 사람들 발길 닿는 곳마다 범인의 얼굴이 도배됐어. 그리고 반상회. 당시 부산 전 지역에서 3만여 회의 반상회가 열렸대. 다 같이 모여 범인의 몽타주를 확인하고, 동네에 비슷한 사람은 없는지, 낯선 사람이 다니지 않는지 조사한 거야.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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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 지역의 만여 명의 택시 기사들도 한 목소리를 냈어. 내 차에 탔을지도 모르는 유괴범을 내 손으로 잡아내자고. 범인이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는 걸 알게 된 후 혹시라도 수상한 사람을 태우면 적극적으로 신고하자는 결의를 다졌어.

그러던 어느 날, 몽타주랑 비슷하게 생긴 남자가 5살쯤 돼 보이는 아이와 함께 가는 걸 봤다는 신고가 접수됐어. 신고자는 동래구에 있는 한 주민. 마침 약수터 인근 복덕방에서 범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코 밑과 옆에 점이 있는 남자가 아이와 지나가는 걸 똑똑히 봤다는 거야. 대규모 경찰, 주민들이 투입돼 산을 샅샅이 뒤졌어. 밤에는 기동대까지 동원해 철야 없이 일했어. 하지만 수상한 남자와 어린아이, 둘 다 발견되지 않았어.

이 제보 속 남성은 범인과 닮은 사람으로 일단락 됐어. 그즈음에는 젊은 남자가 아이 손만 잡고 다녀도 신고감이었어. 그 시각 형사들은 메리야스 공장도 수사했어. 왜? 재은이의 기억 중에 이것도 있었거든.
꼬꼬무

범인의 바지 뒷주머니에 노란색 접이식 나무자가 꽂혀 있었다는 거야. 형사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의류재단사를 떠올렸어. 범인이 메리야스를 찢어 결박하는 끈으로 썼잖아. 그런 소재를 많이 다뤄본 사람이라 추측한 거지. 수십 개의 메리야스 공장을 찾아가 일하는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살폈어. 하지만 몽타주와 비슷한 사람, 안타깝지만 없었어.

어느덧 사건 발생 열흘째. 검경 수사력을 총동원해서 어린이 유괴범을 체포하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대통령 특별지시가 떨어졌어. 이에 부산 경찰들이 총동원 됐고,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탐문수사, 검문 검색이 계속 진행됐어. 심지어 코 옆에 점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조사 대상이야. 그래서 점 빼는 가게가 문전성시를 이뤘대.

"인상착의 가지고 수사하다가 혼난 사람이 많아요. 코 밑에 점박이 혼쭐이 났죠. 수사할 때 참 어려웠어요. 범인을 용의자로 지정하기가. 참 수사하는데도 난관에 많이 부딪쳤죠."
-서정우, 당시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

그러던 9월 1일. 유력 용의자가 붙잡혔다는 소식이 들렸어.

"연쇄 유괴 살인 수사본부는 1일 유력한 용의자로 김 모 씨의 신병을 확보, 추궁 중이다. 경찰은 김 씨의 집에서 도훈 군의 복부에 쓴 것처럼 '후하하'라고 쓴 대목의 만화책 5권을 압수했다. 얼굴에 점이 3개 있는 등 임 양이 본 범인의 인상착의와 비슷하고 변태 성욕자로 10세 미만의 여아를 강간한 사실이 2~3회 있다는 것이다."
-당시 신문 보도 中

하지만, 이 또한 아니었어. 두 달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형사들은 백여 명의 용의자를 수사했고, 그 중 30여 명의 용의자를 재은이와 대질시켰지만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없었어.
꼬꼬무

"앞에 봤던 사람, 그 다음에 봤던 사람, 그 다음에 봤던 사람 얼굴이 입력이 되잖아요. 그걸 가지고 자기가 진짜로 봤던 사람이랑 대조하게 되는데, 아이의 기억 속에 있는 범인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이 경험으로 인해서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어요. 나중에는 진짜 범인을 보고도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김태경,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언제까지 수사를 아이의 기억에만 의존할 수는 없었어. 부산 바닥을 뒤지며 백방으로 범인을 쫓았던 특별수사본부는 설치 73일 만에 해체됐어. 경찰은 수사본부 해체가 수사 포기는 아니며, 각 서별로 계속 수사를 이어 나가겠다고 했지만. 형사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어.

▲ 진범은 어디에

그렇게 잔혹한 아동 연쇄 살인 사건도 조금씩 잊혀갈 무렵. 76년 6월, 부산의 형사들이 급히 이리역으로 가고 있어. 1년 만에 범인의 꼬리가 잡힌 걸까?

76년 6월 22일 밤이야. 30대 부부는 5살 딸과 함께 열차에 탔어. 밤새 운행하는 야간열차라, 한 7시간을 자리에 앉은 채 자면서 가는 거야. 밤 12시쯤. 기차는 계속 달리고, 대부분의 승객들이 잠든 시각이야. 남편이 뒤척이다가 눈을 떴는데 뭔가 허전해. 옆에서 자고 있던 딸이 보이지 않는 거야. 놀란 부부는 열차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녔어. 그러다 한 승객의 이야기를 듣게 돼.

"방금 청색 옷 입은 남자가 어린 여자애를 데리고 이리역에서 내리던데요."

부부는 열차에서 내려 바로 실종신고를 했고. 경찰은 당장 수사에 나섰어. 그런데 이리역에 있는 역무원이, 이상한 사람을 봤다고 했어.

"20대 남자가 애를 데리고 서성거리길래 왜 안 나가냐고 물으니까. '애가 배고파서 밥 사줄 곳을 찾는다면서' 역 밖으로 나가더라고요."

부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으니까. 근데 그때 그 이야기를 듣던 다른 역무원이 뜻밖의 이야기를 해.

"방금 어떤 남자가 급히 목적지를 바꿔서 표를 교환해 갔는데. 표가 다 젖어있고,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거든요. 애는 없었는데. 혼자였어요."

남자가 표를 바꿔서 탔다는 열차의 출발 시간은 새벽 1시. 그가 범인이 맞다면, 이리역에서 아이와 내린 지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혼자 다시 열차를 탄 거야. 경찰은 남자가 바꿔 끊은 다음 도착지로 향했어.

새벽 1시 30분, 논산역이야. 열차가 도착하자마자 경찰과 역무원들이 열차에 올라 승객들을 한 명 한 명 살펴보는데, 열차에 그 남자가 있었어. 아래 위로 청색 옷을 입은 20대 남자. 경찰은 당장 그 남자를 데리고 내렸어.

16시간을 조사한 끝에, 범인은 범행 일체를 자백했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날 새벽 아이는, 이리역 인근 논두렁에서 발견돼. 추행당한 후 옷이 벗겨진 채 목이 졸려 숨져 있었던 거야.

범인은 공공장소에서 대담하게도 아이를 유괴한 후 잔혹하게 살해한 뒤 한 시간 만에 태연하게 다시 열차에 올라탔어. 초범이라기엔 빠르고 일사불란하게 범행을 저지른 이 남자. 부산 영도구에 사는 사람이야. '후하하 사건'의 범인이 전화를 걸었던 파출소가 있는 곳. 그리고 지은이가 사라진 곳. 그래서 부산 형사들이 급파됐던 거지. 특수본부는 해체됐지만 경찰은 계속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거든. 이제, 희생당한 아이들의 한을 풀 수 있을까.

결론은, 아니었어. 이리역 사건의 범인은, 부산에서 일어난 범죄는 끝까지 부인했고, 경찰 역시 그 사건과 관련됐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어.

시간이 흘러 1990년, 범인에 대한 공소시효까지 만료되며 이 사건은 영구미제가 됐어.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사라진 미제사건. 사회는 더 불안해지고 유가족들은 더 고통스러울 밖에 없겠지. 지은이 도훈이 부모님은, 내 아이를 죽인 범인이 어딘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생각에,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어. 그래서 형사들은 범인을 검거한 사건은 잊어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은 잊을 수가 없대. 피해자 가족과 사회에 미안해서.
꼬꼬무

"많이 아쉽죠. 허무하지 허무해. 지금 후배들한테 참 끝까지 사명을 다 못해서 범인을 못 잡은 데 대해서는 지금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마음의 짐이 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겠다는 동기가 되죠."
-서정우, 당시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

서 형사님이 인터뷰 도중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부끄럽다'는 말이었어. 50년이 지난 일인데도 말이지.

문제를 풀 때 맞은 건 들여다보지 않지만, 틀린 건 왜 틀렸는지 한 번 더 확인하잖아. 형사들에게도 미제 사건은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오답노트 같은 거래. 서 형사님이 12년 차 베테랑 형사가 됐을 때, 부산에서 4살 아이가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어. 그 사건을 해결하는 동안, 75년도 이 사건을 떠올리며 그때 놓친 걸 계속 복기했대. 초동수사부터 증거 확보, 목격자 탐문까지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고, 그 집념으로 몇 달간 추적한 끝에 결국 범인을 검거했대.
꼬꼬무

"'너를 죽인 범인은 내가 꼭 잡을게' 그런 의지가 범인을 잡겠다고 하는, 내가 눈물 흘리고 이랬다고요. 아이와 한 약속이 결국에 되더라고요 나중에."
-서정우, 당시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

범인들이 내는 새로운 문제를 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오답노트. 우리가 미제 사건을 끝까지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꼬꼬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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