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와인과 페어링>의 저자 임승수 작가가 와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샴페인 한 잔 주세요."
와인바, 호텔 뷔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말하는 사람은 버블이 올라오는 화려한 와인을 떠올리며 웃고 있지만, 듣는 사람은 '어떤 걸 갖다 줘야 하나?' 잠시 망설이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샴페인은 스파클링 와인을 일컫는 통칭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파클링 와인을 떠올리며 샴페인을 말한다면, 그건 모든 자동차를 '벤츠'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 오류다. 오늘은 그 오해의 실타래를 함께 풀어보자. 샴페인은 대체 어떤 술이며, 스파클링 와인은 어떤 세계를 품고 있는 걸까.
우선 정리부터 해보자. 스파클링 와인이란 말 그대로 '거품이 이는 와인', 즉 탄산이 들어 있는 와인의 총칭이다. 병을 열면 '뻥!' 하는 소리가 나고, 잔에 따르면 기포가 올라오며 입안을 간질이는 바로 그 와인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스파클링 와인을 너무 자주,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샴페인'이라고 부른다는 데 있다.
법적으로, 그리고 와인 세계의 관점에서 샴페인은 '샹파뉴 지방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만을 지칭한다. 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비싸고 화려해도 '샴페인'이란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이는 프랑스뿐 아니라 EU, 미국 등 다수의 국가에서 엄격하게 지켜지는 원칙이다.
샴페인은 주로 샤르도네, 피노 누아, 피노 뮈니에 세 가지 품종을 블렌딩해 만든다. 각각 산도, 구조감, 과일 향에서 서로 다른 개성을 지녀, 이들의 조화가 샴페인의 복합성과 균형을 이끈다. 최근에는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이나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 같은 단일 품종 샴페인도 많이 선보이고 있다.
샴페인이 와인 애호가들에게 특별하게 취급받는 이유는 단지 브랜드의 힘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샴페인은 다른 스파클링 와인들과 비교해 구조, 향, 질감 면에서 유별나게 섬세하고 깊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산도다. 샹파뉴 지방은 프랑스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와인 산지다. 이곳의 서늘한 기후 덕분에 포도는 천천히 익고, 높은 산도를 유지한 채 수확된다. 이 산도는 샴페인에 긴장감 있는 맛의 선을 그어주며, 장기 숙성에서도 와인의 생기를 유지한다.
두 번째는 양조 방식이다. 샴페인은 2차 발효를 특징으로 하는 '전통 방식(Méthode Traditionnelle)'으로 만든다. 2차 발효는 기본 와인(1차 발효를 마친 와인)에 설탕과 효모를 더해 병 안에서 다시 발효를 일으키는 과정을 뜻한다. 1차 발효가 포도즙을 알코올로 바꾸는 과정이라면, 2차 발효는 그 알코올 와인에 탄산을 입히는 결정적인 단계다. 이때 생긴 이산화탄소가 병 속에 갇히며 와인에 자연스러운 거품이 생기고, 효모 찌꺼기와 오랜 시간 접촉하며 구운 빵이나 브리오슈 같은 복합적인 풍미도 함께 만들어진다. 병을 거꾸로 세워 효모 찌꺼기를 목 쪽으로 모으고, 그것을 제거하는 '르뮈아주(remuage)'와 '데고르주망(dégorgement)'이라는 공정도 이 샴페인의 탄생을 구성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이렇게 정성을 들이니 당연히 가격도 만만치 않다.
좋은 샴페인은 단순히 탄산음료처럼 톡 쏘는 와인이 아니라, 시간과 기술이 쌓여 만들어낸 예술적인 음료다. 그렇다고 해서 샴페인 아닌 스파클링 와인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에는 샴페인 못지않게 정성스럽게 만든 스파클링 와인이 즐비하다. 이름은 저마다 다르지만, 풍미도 훌륭하고, 개성도 뚜렷하다.
크레망(Crémant)
샹파뉴 외 프랑스 곳곳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이다. '크레망 드 부르고뉴', '크레망 드 알자스' 등이 대표적이며, 지역 특유의 품종과 토양 덕분에 샴페인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많다. 가격도 합리적이다.
카바 (Cava)
스페인의 대표적인 스파클링 와인이다. 주로 카탈루냐 지방에서 생산되며, 샴페인과 마찬가지로 병 내 2차 발효 방식을 따른다. 품종은 마카베오, 파렐라다, 사렐로 같은 토착 품종을 사용하고, 최근엔 샤르도네나 피노 누아도 종종 섞인다. 카바는 대체로 산도가 부드럽고, 가격 대비 품질이 좋아 '가성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상적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프로세코 (Prosecco)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프로세코는 '샤르마 방식(Charmat)'이라고 불리는 대형 탱크 발효 방식으로 생산된다. 덕분에 가격이 저렴하고 과일 향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거품은 샴페인보다 크고 거칠 수 있지만, 오히려 이 '라이트함'이 브런치, 애피타이저, 칵테일 베이스로 적합하다. 벨리니, 스프리츠 같은 유명한 칵테일의 재료로도 많이 쓰인다.
프란치아코르타 (Franciacorta)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프란치아코르타는 샴페인과 동일한 전통 방식으로 생산된다. 샤르도네, 피노 누아, 피노 블랑 등을 사용하며, 최소 18개월 이상 효모 숙성을 거치는 까다로운 와인이다. 프란치아코르타는 '이탈리아의 샴페인'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나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애호가들은 오히려 '숨겨진 보석'이라 부르기도 한다.
젝트 (Sekt)
한때는 값싼 스파클링 와인의 대명사였던 독일의 젝트는, 최근엔 고급화 바람을 타고 품질을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빈트저 젝트(Winzersekt)'는 독일 와인법상 최고 수준의 젝트로, 전통 방식과 고급 품종을 사용한다. 리슬링으로 만든 드라이한 젝트는 산도와 향이 살아 있는 멋진 와인이다.
이들은 각자 고유한 개성과 스타일을 갖고 있으면서도, '샴페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과소평가되곤 한다. 하지만 한 번 눈을 돌려보면, 이들 와인은 가격 대비 훨씬 풍부한 세계를 열어줄 수 있다.
이쯤에서 질문이 생긴다. 왜 우리는 스파클링 와인을 전부 샴페인이라 부르게 된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샴페인이 그만큼 '먼저 자리 잡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마케팅, 이미지, 가격, 그리고 오랜 시간 쌓아온 문화 자산까지, 샴페인은 스파클링 와인의 대표주자로 기억되고 있다. 18세기 말 루이 16세 시대부터 샴페인은 귀족들과 상류층 사이에서 특별한 음료로 여겨졌고,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전쟁 승리나 왕실 결혼식, 신년 축하 같은 공식 행사에서 빠질 수 없는 축하용 술로 자리 잡았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