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촉구한 데 대해 "중앙은행 총재로서 침묵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총재는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외교정책협회(FPA)가 수여하는 메달을 받고 만찬사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고 한은이 전했습니다.
그는 "대통령 탄핵이 조기 대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재정 정책에 대한 양당의 견해가 상반된 가운데 재정 부양책을 언급할 경우 정치적 편향으로 비칠 수 있었다"고 돌아봤습니다.
이어 그럼에도 발언한 것을 두고 "계엄 사태 이후 내수가 예상보다 빠르게 위축되고 있었다"며 "금리 인하와 함께 어느 정도 추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총재는 "추경안이 초당적으로 통과된다면 한국의 경제 정책만큼은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는 메시지를 국제 투자자들에게 줄 수 있어 국가신용등급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부연했습니다.
그는 "중앙은행가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하지만, 케인스가 그의 스승 마셜을 가리켜 말했듯이 경제학자는 때로는 정치인만큼 현실적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총재는 또 "최근의 정치적 난관들 속에서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것뿐 아니라 정치로부터도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한은은 민감한 시기에도 계엄 사태가 우리 경제와 환율에 미친 영향 등과 같이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사안에 균형 잡히고 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평가를 하고, 가장 필요한 시점에 객관적 정책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습니다.
한편, 이 총재는 최근 세계 경제가 직면한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수출 중심 구조를 가진 우리 경제는 대외 환경 변화에 특히 취약하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요국 관세 인상은 우리나라 수출에 직간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생산하는 수출품들도 상당히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과 관련, "작년 말 계엄령 선포 이후 고조된 정치적 불확실성이 그간 대외 환경 변화로 인한 어려움을 한층 가중해왔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 총재는 이밖에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의 기여를 언급하며 "복잡한 지정학적 긴장, 무역 갈등 속에서도 굳건한 한미 관계는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한은에 따르면 미국 비영리 기관인 외교정책협회가 수여하는 메달은 국제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책임감 있는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준 인물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입니다.
역대 수상자로는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등이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