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묘장도 사과밭도 아수라장'…슬퍼할 시간조차 없는 농민들

오늘(27일) 화마가 온 마을을 삼켜 쑥대밭이 된 안동 임하면의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지만 슬퍼할 겨를조차 없습니다.

한평생 벼농사를 지어온 임 모(74)씨는 연기와 재가 날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인 잿더미 속에서 소 여물통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임 씨는 빨갛게 충혈된 눈을 연신 비비며 "소들이 기적처럼 살아남았는데 우선 먹이는 줘야지 않겠느냐"며 "우리 육묘장은 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불씨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지난 25일 오후 4시쯤 강풍을 타고 날아든 축구공만 한 불덩이는 임 씨의 육묘장을 뭉개버렸습니다.

모를 키우던 시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게차 등 농기계들은 녹아내려 주저앉았습니다.

수천만 원을 들여 미리 사둔 볍씨 100포대와 못자리용 상토 2천 포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타버렸습니다.

불이 꺼지고 이틀이 지났지만, 타다 만 잔해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임 씨는 "4월에 모종을 키우고 5월에 논밭에 심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모든 게 타버려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며 "태어나서 이런 불은 처음 겪어 당장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간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이번 산불은 임 씨 육묘장에서 6㎞가량 떨어진 오대리의 한 사과밭도 집어삼켰습니다.

2층짜리 집과 30평 규모 냉동창고, 수천만 원대의 농기계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창고와 맞닿은 1천 평 규모 사과밭은 군데군데 새까맣게 그을렸고, 사과나무 3분의 2 정도는 죽었습니다.

꽃이 피어야 할 시기지만 불길에 휩싸여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일부 꽃눈은 바짝 말라 건드리기만 해도 가루처럼 부서졌습니다.

주인 강 모 씨는 "대피하지 않고 물을 계속 뿌렸다면 집이라도 남아 있었을 텐데 어떡하냐"며 "죽은 나무를 걷어내고 다시 심어도 수확까지 최소 5년은 지나야 하는데 앞날이 캄캄하다"고 가슴을 쳤습니다.

안동시는 피해 지역이 너무 광범위해 아직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집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 관계자는 "오늘부터 본격적인 피해 조사를 시작했다"며 "아직 불이 잡히지 않아서 어느 정도 진화가 이뤄져야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