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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폭은 참모총장 책임"이라면서 '부하 과오' 부각에 진심 [취재파일]

오폭 사고 대국민 사과를 하는 이영수 공군참모총장

경기도 포천 노곡리 KF-16 민가 오폭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 만인 어제(10일) 공군은 대국민 사과와 중간 조사 결과 발표를 한꺼번에 해치웠습니다.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모든 책임은 참모총장에게 있다", "통렬히 반성하고 뼈를 깎는 각오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며 머리 숙였고, 이어서 공군 고위 관계자들은 조사 결과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2시간 가까이 했습니다. 사건사고 터지면 장·차관이 사과하고 군복은 뒤로 빠지는 군의 문화가 유구한 터라 카메라 앞 참모총장의 대국민 사과는 한편으로 신선했습니다. 중간 조사 결과라지만 나흘 만에 발표하는 속전속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거기까지였습니다. 대국민 사과에 이어 열린 조사 결과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들춰보면 참모총장의 책임지겠다는 발언이 무색해집니다. 조종사, 대대장, 전대장 등 중급 장교들의 잘못은 깨알같이 설명했고, 한발 더 나아가 몇몇을 콕 집어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고급 장교들과 지휘부의 책임이 도드라지는 상황 관리의 실패는 육성 브리핑도, 제공된 자료도 하나같이 부실했습니다. 대국민 사과로 외견상 수뇌의 책임을 앞세웠지만 실상은 꼬리 자르기를 위한 빌드업 아니냐는 의구심이 듭니다. 별도의 노림수가 숨어있다는 수군거림도 들립니다.
 

'상황 관리 실패' 자료는 고작 1쪽

공군은 어제 중간 조사 결과를 설명하는 2종류의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하나는 6쪽으로 상세했고, 다른 하나는 달랑 1쪽으로 허술했습니다. 6쪽 자료는 대위, 대령 등 중급 장교들의 과오를 분석한 것으로 그 내용들은 오늘까지 대서특필되고 있습니다.

1쪽 자료는 상황 관리 실패를 짚은 것입니다. 눈여겨볼 만한 팩트가 없었습니다. 합참과 육군, 해군의 협조와 지원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 공군작전사령부 상황실은 신속하게 합참 상황실에 사고의 개요를 전파해야 했는데 합참 전파 시간은 자료에서 제외됐습니다. 교육훈련 책임자인 공군참모총장은 언제 보고받았고, 또 총장은 이를 국방장관 직무대행에게 언제 보고했는지도 자료는 적지 않았습니다.

공군은 사고 1시간 30분 만인 오전 11시 34분에야 민가 오폭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진심으로 참모총장이 책임질 생각이라면 별 넷 참모총장이 10시 4분부터 11시 34분까지 1시간 30분 동안 언제 어디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세세하게 밝혀 잘잘못을 따져야 했습니다. 공군은 이런 내용을 일절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KF-21 오폭 사고로 폐허가 된 포천 노곡리의 주택
 

중급 장교 과오는 치밀하게

중간 조사 결과 백그라운드 브리핑에서 공군 고위 관계자는 오폭 사고를 낸 두 전투기의 조종사들 중 한 명의 과오가 분명하다고 특정했습니다. 1번기 조종사가 좌표를 잘못 불렀는지, 2번기 조종사가 잘못 입력했는지 결론이 나지 않은 가운데 조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발언입니다. 브리핑 때 고위 관계자 바로 옆에 조사 책임자가 앉아 고위 관계자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공군 고위 관계자는 두 조종사를 지휘하는 대대장, 전대장의 책임도 부각했습니다. 고위 관계자는 실사격 같은 중요 임무의 경우 "관리자, 감독관 등이 표적 정보를 확인하게 돼 있지만 이번에는 미흡했다"고 말했습니다. "대대장이 확인했어야 했나?"라는 기자 질문에 고위 관계자는 "임무가 맞지만 안 했다"고 답변했습니다. 사실과 달랐는지 공군은 브리핑 1시여 후에 "대대장이 입력 좌표를 점검하는 규정은 없다", "고위 관계자의 언급은 대대장의 실무장 사격 계획서 검토·조언 등 세밀한 지휘감독을 의미한 것"이라고 진화했습니다.

백그라운드 브리핑 내내 중급 장교 닦달하고 고급 장교 감싸는 분위기가 읽혔습니다. 책임지겠다며 카메라 앞에서 머리 숙인 참모총장은 어디 갔나 싶었습니다. 전파, 보고, 상황 관리는 늦었지만 덜 익은 조사 결과라도 번개처럼 발표해 오폭 사고의 여파를 최단 기간에 잠재우려는 의지가 엿보였습니다. 평소 공군의 모습과 딴판이었습니다.

계엄의 여파로 통수권과 국방장관이 온전치 않지만 합참의장 교체한다면 0순위는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현 합참의장은 해군 대장이고 육군은 한동안 곁방살이가 불가피해서 차기 합참의장 자리는 공군 몫이 될 법도 합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어제 대국민 사과, 중간 조사 결과 발표의 어색함과 장밋빛 인사 전망이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촌평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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