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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 되찾고, 순서 제대로…병풍 위에 펼쳐진 200년 전 큰 잔치

생기 되찾고, 순서 제대로…병풍 위에 펼쳐진 200년 전 큰 잔치
▲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 일부분

1826년의 어느 날, 평안 감영이 있던 평양 일대는 시끌벅적했습니다.

큰 길가에는 사람들이 모였고 강에서는 뱃놀이가 펼쳐졌습니다.

그 중심에는 관직 생활을 앞둔 젊은 선비들이 있었습니다.

평안도 도과(道科·조선시대 각 도의 감사에게 명해 실시한 특수한 과거시험)에서 뛰어난 성적을 낸 문·무과 장원 두 사람을 축하하는 잔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99년 전에 열린 잔치를 생생하게 담은 조선시대 그림이 세월의 흔적을 딛고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삼성문화재단과 함께 미국 피보디에식스(Peabody Essex) 박물관이 소장한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平安監司道科及第者歡迎圖) 8폭 병풍의 보존 처리 작업을 마쳤다고 오늘(10일) 밝혔습니다.

보존 처리는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에서 약 1년 4개월간 진행됐습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측은 "30여 년간 쌓아온 보존 기술을 활용해 병풍을 원형으로 복원했다"며 "국내 사립 미술관이 나라 밖 문화유산 보존을 지원한 첫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랜 노력 끝에 제 모습을 되찾은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은 일종의 기록화입니다.

도과 급제자 일행이 배를 타러 이동하는 순간부터 평양성의 동쪽 부벽루에서 벌인 연향(잔치), 환영 행사의 '정점'이었던 야간 뱃놀이 등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8개 화면을 모두 펼친 폭은 5m가 넘으며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박물관 측은 1927년 은행가이자 자선가였던 조지 피보디와 W.C. 엔디콧 기금으로 산 유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은 1994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유길준과 개화의 꿈'에서 한 차례 선보인 적 있으나, 지금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당시 병풍은 분리된 낱장 상태였고, 제작 당시 모습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순서를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손상되거나 훼손된 부분도 상당했다고 합니다.

비단을 부착하는 모습

리움미술관 측은 그림을 가능한 온전한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미술관 소속 보존 처리 전문가들은 오래된 안료가 떨어지지 않도록 처리하고, 그림 뒤에 덧대진 오래되고 산화된 배접지를 제거했습니다.

여러 연구·조사를 토대로 병풍 틀을 제작해 복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물 명칭은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에서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로 분명히 했습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관계자는 "인물의 복식, 시간 흐름에 따른 색감 변화 등을 토대로 잃어버렸던 그림의 순서를 찾아내고 원래의 병풍 형태로 복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재단은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이 소장한 활옷도 국내 전문가의 손을 거쳐 되살아났다고 밝혔습니다.

활옷은 조선시대 여성이 입던 예복 중 하나로, 붉은 비단 위에 봉황, 꽃 등 다양한 문양을 수놓고 금박으로 장식한 옷입니다.

19세기 말부터는 왕실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혼례 때 입었습니다.

현재 국내에 30여 점, 국외에 20여 점 등 50여 점이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의 활옷은 18∼19세기 유물로 추정됩니다.

박물관 측은 활옷을 입수한 경위와 관련해 "1927년 야마나카(山中) 상회가 기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야마나카 상회는 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한국 문화유산을 내다 판 업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존 처리 작업을 맡은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은 소매 부분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김포 지역의 노비로 추정되는 '갑복'(甲福)의 이름이 적힌 추수기(秋收記) 일부를 찾아냈습니다.

추수기는 경작지의 추수 현황을 기록한 문서를 뜻합니다.

재단 관계자는 "추수기에는 '무인 9월'(戊寅九月)이라 적힌 부분이 있는데 무인년은 1818년, 1878년, 1938년 중 하나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확한 연대를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시험에 떨어진 사람의 답안지인 낙복지(落幅紙)를 비롯해 여러 겹의 한지를 안감에 덧댄 부분과 일부 가려져 있었던 자수를 찾아낸 점도 의미가 큽니다.

과거시험에 떨어진 사람의 답안지

옛 모습을 되찾은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과 활옷은 이달 11일부터 4월 6일까지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상설 전시장인 M1 2층에서 공개합니다.

이후 두 유물은 5월에 재개관하는 피보디에식스박물관 한국실에서 주요 문화유산으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사진=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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