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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100만 명이 죽겠어" 했는데…모두의 삶을 바꾼 경고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The Covid Alarmists Were Closer to the Truth Than Anyone Else, by David Wallace-Wells

스프 nyt
 

* 데이비드 윌러스웰스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명 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 팬데믹이 창궐한 지 5년이 지났다. 첫 확진 사례는 2019년 12월에 나왔다. 세계보건기구는 2020년 1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관련해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미국 정부는 3월 13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어 3월 16일에서 27일 사이 미국 모든 주 정부가 각급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거나 휴교를 권했다. 뒤이어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바이러스에 너도나도 감염되면서 비교적 안전하게 지내던 사람들의 삶도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다음 주에는 이 세계사적 소용돌이가 결국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돌아보는 칼럼을 쓸 계획이다. 공중보건 비상사태 자체보다도 세상을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완전히 갈라놓은, 지금도 믿기 어렵고 되돌아간다면 여전히 상상하기 어려울 이 전염병이 우리 삶에 명백히, 또 미묘하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두루 짚어보려 한다. 하지만 오늘은 우선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이름조차 아직 생소하던 5년 전 이맘때로 돌아가 보자.

개인적으로는 2019년 12월 31일,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트위터를 통해 처음 접했다. 의학 전문기자 헬렌 브랜스웰이 중국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이 발견됐다는 경고를 담은 트윗을 올렸다. 처음에는 할리우드나 공상과학 소설을 통해 지겹게 들어 온 공중보건 위기 이야기와 이를 극복하고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다소 뻔한 전개가 이어질 것 같았다. 당장 나만 해도 전 세계를 휩쓰는 전염병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믿었지, 우리가 실제로 전염병이 창궐한 세상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전염병은 이미 영원히 극복한 것, 즉 과거의 문제라고 확신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이 미래에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다는 이런저런 우려를 표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이를 일축했다.

두 달이 흐른 3월 초의 어느 날, 오랜 친구와 저녁 식사를 했다. 친구는 자기 아버지랑 이번 전염병으로 미국인이 얼마나 죽게 될지 가벼운 내기를 했는데, 아버지는 예상 사망자를 10만 명 이하로, 자기는 10만 명이 넘을 거로 예측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구가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나는 얼굴을 좀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아무래도 사망자가 100만 명 넘을 것 같아."

친구와의 일화를 다시 떠올린 건 최근 작가이자 팟캐스트 진행자인 샘 해리스가 팬데믹 초기에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였던 일론 머스크와 자신이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사실을 언급한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끔찍한 위기를 두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재미 삼아', '가볍게' 내기를 했는지 생각하면 소름이 돋지만, 또 그 내기를 통해 그 사람의 특징을 짐작해 볼 수 있기도 하다.)

머스크는 이 모든 것이 금방 지나가고 말 거라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2020년 3월 19일, 그는 트위터에 "지금 추세를 보면, 4월 말쯤이면 더는 감염자가 나오지 않을 거로 보인다"고 썼다. 그러면서 (당시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이던) 해리스에게 이번 전염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를 다 더해도 3만 5천 명이 안 될 거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4월에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3만 5천 명이 넘자, 해리스는 머스크에게 이제 당신이 내기에서 이겼다고 봐야 하는 거냐며 그를 에둘러 저격했다. 머스크는 여기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제 와서 해리스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니, 바로 그때가 둘 사이의 우호적인 관계는 끝나고 서로 완전히 다른 길로 갈라선 시점인 것 같다.

현재 미국의 공식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122만 명이다. 다른 질병이나 사고로 숨진 사람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이 없었다면 제때 치료해 살릴 수 있었을 사람까지 추산해 집계한 숫자는 150만 명으로 더 많다.

다시 말해, 코로나19가 정말 위험한 전염병이 될 수 있다고 가장 진지하게 경고하던 사람들이 결국, 현실을 가장 정확히 예측한 것이다. 여기엔 2020년 3월에 미국인이 10만 명에서 많게는 20만 명까지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가 과장이 심하다며 욕을 잔뜩 먹은 앤서니 파우치 전 국립 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장도 포함된다. 영국의 과학자 니얼 퍼거슨도 비슷한 예측을 했는데, 퍼거슨의 임페리얼 칼리지 예측 모델은 미국인의 80% 이상이 코로나19에 걸리고, 220만 명 넘는 사망자가 나올 거로 예측했다. 다행히 전체 인구의 80%가 감염되기 한참 전에 대량으로 백신 접종이 이뤄져 사망자는 덜했지만, 2020년 3월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의 코로나19 대응을 돕던 데보라 버크스는 퍼거슨의 예측 모델이 내놓은 수치에 비하면, 정부가 내놓은 자가격리나 사업장 폐쇄, 재택근무, 여행 제한 같은 대책 덕분에 더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코로나19가 준 사망자와 질병의 상처가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팬데믹과 그에 대한 대응을 자세히 살펴보자고 주장했다가는 굳이 왜 또 상처를 들춰내느냐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이제 미국 정부의 보건 당국은 코로나19의 피해는 과장됐다고 생각하는 백신 회의론자가 이끌고 있다. 하지만 우파들의 인식이 문제의 전부라고 보긴 어렵다. 이미 많은 주 정부가 미래의 전염병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주 보건 당국의 역량을 약화했고, 심지어 뉴욕주 같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주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의무로 명령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통과됐다.

누구나 팬데믹 대응 방식에 불만을 품을 수 있다.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은 이미 수없이 억눌리고 부정되고 뒤틀린 끝에 누군가 코로나19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을 바꿔 말해도 이제는 그저 무덤덤하게 넘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달 조 로건 쇼에 출연한 우디 해럴슨은 파우치 박사를 악마라고 불렀다. 또 지난해 같은 쇼에서 조 로건은 토니 힌치클리프와 나란히 앉아서 백신의 후유증, 부작용과 미국 사회 전체의 사망률 증가를 아무렇지 않게 연관 지었다. 이런 문제의 발언을 접하고도 별로 놀라지도 않는 내 모습이 사실 더 걱정스럽다.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면, 그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억지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그런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공유하며 시시덕거릴 수 있는 이유가 백신 덕분이다.) 미국보다 백신 접종률이 훨씬 높아 거의 모든 국민이 빠르게 백신 접종을 완료한 영국 같은 나라는 훨씬 일찍 팬데믹으로 인한 비상사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 내가 2년 전 칼럼을 통해 지적했듯 전체 사망자 추이는 코로나19 확진자 추세와 긴밀히 연관돼 있다.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도 늘어나고, 환자가 줄면 자연히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도 주는데, 그렇다고 정확한 사망 원인을 진단하지 못한 죽음의 원인이 코로나19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라고 막연하게 예측하는 건 솔직하지 못한 태도다.

미국의 반대론자 가운데는 스웨덴의 사례를 아직 언급하며 미국도 덜 엄격하게 방역 대책을 펼 수 있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하지만 스웨덴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설계해 이른바 스웨덴 예외주의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장본인이 벌써 5년째 스웨덴의 정책은 사실 다른 나라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팬데믹에 대한 대응은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팬데믹은 실제로 일어났고, 정말 가혹했다. 무엇보다도 팬데믹은 우리의 생물학적, 사회적, 정치적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리고 비상사태가 끝나자, 미국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많은 사망자와 질병의 심각성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쉬쉬하고, 온 사회가 너무 민감했다거나 보건 정책이 과도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느덧 지난 팬데믹이 준 가장 큰 교훈으로 미생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도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점을 꼽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의 진짜 후유증과 여파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미묘했다. 우리는 전염병과 그로 인한 죽음이 만연한 상태에서 온라인 공간에 갇혀 고립된 채 두려움에 떨며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실히 느꼈다. 우리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사라지거나 산산조각 난 세상을 살아내야 했다. 우리가 아무리 일상을 회복하기를 갈망하고 이제 다 끝났다고 되뇐들 끔찍했던 기억을 온전히 극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팬데믹 초기 아주 비관적인 축에 드는 전망치가 내놓은 사망자만큼이 실제로 목숨을 잃었다. 그마저도 코로나19 초기에 보여준 놀라운 연대 의식이나 기적에 가까운 백신 개발 등 생명의학 분야의 혁신이 없었다면, 상황은 얼마든지 더 나빠졌을 거다. 어쨌든 150만 명을 잃은 채 5주기를 맞는 미국은 지쳐있고, 분노에 차 있으며, 불신과 착각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힘겨운 시련 속에서 다시 만들어진 세계에 살고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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