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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인들이 이렇게 해외 콩쿠르에 관심 높은 이유는? AI에 물었더니

콩쿠르 보도의 명암…맥락을 짚어주는 기사를 쓰고 싶다

[취재파일] 한국인들이 이렇게 해외 콩쿠르에 관심 높은 이유는? AI에 물었더니

 최근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16살의 한국인 발레리노 박윤재가 우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세계 5대 발레 콩쿠르'에서 한국인 발레리노가 처음 우승했다는 기사들이 며칠 동안 쏟아졌습니다.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우승한 발레리노 박윤재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 1972년 스위스 로잔에서 시작된 이 콩쿠르는 매년 열리며 올해가 53회 대회였습니다. 15세에서 18세까지의 청소년만 출전할 수 있으며, 입상자들은 장학금을 받아 해외 유명 발레학교나 발레단에서 연수 기회를 얻게 됩니다. 10대 유망주를 선발해 직업 무용수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적 의미가 큰 콩쿠르입니다.

 올해는 이 42개국 225명의 지원자 가운데 최종 결선에 20명이 올랐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입상자들은 1위에 오른 박윤재를 비롯해 9명이 선발됐습니다. 특별상도 따로 시상하는데 박윤재는 '최우수 젊은 인재상(Best Young Talent Award)'도 받았습니다. 발레리나 김보경은 8위로 입상했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발레 스타들이 로잔 콩쿠르를 거쳐갔습니다. 역대 한국인 수상자들은 장학금과 특별상을 합쳐 30명 정도 되는데요, 현재 국립발레단장인 강수진이 1985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고, 이후로도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 박세은,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서희 등 쟁쟁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 (사진=연합뉴스)

 역대 한국인 수상자들은 발레리나가 대부분이었는데 한국인 발레리노가 처음 우승한 것은 그만큼 한국 발레의 남성 무용수 기반이 탄탄해졌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박윤재 귀국 후 그가 다니는 서울예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이런 콩쿠르 수상 소식은 문화부 기자로서는 특히 반가운 일입니다. 솔직히 문화부에서 다루는 기사들은 평소에는 폭넓은 대중의 관심을 얻기 쉽지 않습니다. 예술가나 예술활동을 다루는 기사들은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정치 경제 사회 속보에 종종 밀려납니다. 그런데 한국인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은 훌륭한 '뉴스 속보'입니다. 문화부 기사 중에서는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사인 겁니다.

 그런데 저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의 국제 콩쿠르에 대한 열광이 지나치게 뜨겁다는 생각도 듭니다. 언론이 이런 분위기를 만든 측면도 있고, 저도 언론 종사자로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문화부 기자들은 '물 들어올 때 배 띄우는' 격으로, 대중적 관심이 큰 콩쿠르 기사 수요에 대응해 기사 편수도 늘리고, 수상 의미를 더욱 강조하게 됩니다. 요즘은 매체가 늘어 비슷비슷한 기사들이 더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한국인의 국제 콩쿠르 수상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손님을 끄는 유튜버들에게 아주 좋은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국뽕성 콘텐츠'는 쉽게 조회수를 얻는 콘텐츠인데요, 기존의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실은 하나 없고 지나치게 부풀리거나 남들을 깎아내리면서 클릭을 유도하는 콘텐츠가 쏟아지는 건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사실 콩쿠르 우승으로 단번에 세계 정상의 예술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콩쿠르는 직업 예술가의 커리어에서 시작 단계일 뿐이며, 필수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콩쿠르 경력 없이 잘 나가는 예술가도 있고, 콩쿠르 우승 후에 더 성장하지 못하고 스러지지 못하는 예술가도 있습니다. 국제 콩쿠르도 천차만별입니다. 특징도 성격도 다 다릅니다. 예전에는 좋은 콩쿠르였지만 지금은 빛바랜 콩쿠르도 있고, 역사가 짧지만 중요한 콩쿠르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한국인 출전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수상만 하면 부각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데도 해외 콩쿠르에 대한 관심은 거의 '숭배'에 가까울 정도로 커진 것 같습니다. 권위 있는 콩쿠르 우승을 축하하고 조명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지나치면 콩쿠르 경력 없는 예술가는 실력이 없다는 편견을 조장할 수도 있고, 콩쿠르 외의 문화 기사는 더욱 소외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해외 콩쿠르 없는 분야 예술가들은 억울하겠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콩쿠르에 쏟아지는 관심을 조금만 더 예술가들의 평소 활동으로 돌려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번에 많이 나온, 로잔 콩쿠르가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라는 말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발레계에서 통하는 말도 아니고, '5대 콩쿠르'로 지목된 콩쿠르 중에 지금은 없어진 콩쿠르도 있습니다. 로잔 콩쿠르는 로잔 콩쿠르 자체로 중요한 콩쿠르입니다. 각 콩쿠르의 특성은 도외시하고 자의적으로 붙이는 '세계 O대' 수식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도 그렇지만, 저는 '세계 O대' 같은 수사는 웬만하면 피하고, 기사에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 이유를 담은 글을 스브스프리미엄 커튼콜+칼럼으로 썼습니다. 제목은 이렇습니다.

'세계 5대 발레 콩쿠르? 그런 건 없다. 세계 O대의 속사정'

세계5대 발레 콩쿠르? 그런 건 없다. 세계O대의 속사정


 이 칼럼의 초고를 완성하고 챗GPT 에 오타와 맞춤법 교정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챗 GPT 가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해져 물어봤습니다. 왜 이렇게 한국인들은 콩쿠르 결과에 관심이 많은 걸까? 그랬더니 논리 정연한 답변이 쫙 나왔습니다. 몰랐던 내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잠깐 사이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것을 보니 새삼 놀라웠습니다. 뭐라고 했을까요?

<ChatGPT의 말>:
한국에서 콩쿠르 수상 결과에 대한 높은 관심은 여러 가지 사회적, 문화적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 몇 가지 주요한 이유를 정리해 볼게.

1. 경쟁 중심 사회
한국은 입시 경쟁이 치열하고, 학업뿐만 아니라 예술·체육 분야에서도 객관적인 성과(수상, 등수 등)가 중요하게 여겨져. 콩쿠르는 이런 경쟁 사회에서 실력을 증명하는 도구로 활용되기 쉬워.
특히 예술 분야는 실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콩쿠르에서 입상했다'는 것이 실력을 입증하는 확실한 지표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어.
2. 엘리트 코스와 국제적 인정
해외 유명 콩쿠르에서 수상하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발판이 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이런 경력이 중요하게 여겨져.
클래식 음악, 발레, 미술 등 서구 문화권에서 발전한 예술 장르에서 국제 콩쿠르는 유망한 인재들에게 해외 진출의 기회를 제공해.
3. 미디어와 대중의 기대
한국 언론은 '한국인 최초', '세계 O대 콩쿠르 우승' 같은 타이틀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이는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콩쿠르를 과도하게 중요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해.
특히 K-팝이나 스포츠처럼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사례가 많아지면서, 클래식 음악이나 발레에서도 '국가 대표' 같은 이미지가 강해졌어.
4. 학부모들의 기대와 교육 시스템
예술 전공을 하는 학생들의 부모들은 콩쿠르 성적이 입시와 장학금, 해외 유학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콩쿠르에 집착하게 돼.
특히 한국에서는 실용적 가치(취업, 진학 등)가 없는 예술 교육이 지속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콩쿠르가 하나의 목표가 되어 버리는 거야.
5. 명예와 후원 기회
콩쿠르에서 수상하면 기업 후원이나 장학금, 공연 기회가 늘어나기 때문에 예술가들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커.
따라서 한국에서는 '콩쿠르 입상이 예술가로서 성공하는 데 필수'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거지.
6. 성과 중심 사고
한국에서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문화가 강해. 콩쿠르에서 입상하면 그 사람의 실력 전체가 검증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의 노력이나 성장보다는 '결과'가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아.

결론: 콩쿠르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까?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예술가로서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건 명백해.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콩쿠르는 여전히 중요한 지표로 작용하고 있어. 중요한 건 콩쿠르를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예술의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겠지. 예술의 본질은 결국 창의성과 지속적인 성장이니까. 너도 문화 저널리즘을 다루는 입장에서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 볼 만한 지점이 아닐까 싶어.


 어떠세요? 저는 사실 한국인들이 콩쿠르 결과에 관심이 많은 이유를 정리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제가 '문화 저널리즘을 다루는' 입장이라는 걸 알고 제안까지 한 거잖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는 제가 쓴 원고들을 교정할 때, 그리고 해외 참고자료를 찾고 번역할 때 챗 GPT를 활용해 왔습니다. 따라서 챗 GPT는 제가 쓴 글들을 많이 읽은 상태였고, 저의 평소 관심사를 반영해 이런 답을 내놓은 것 같았습니다.

챗GPT

 내친김에 또 물었습니다. 콩쿠르 결과를 기사로 다룰 때 고려해야 할 점이 뭘까? 그랬더니 이런 답이 나왔습니다. 정확한 정보와 팩트 체크/콩쿠르의 성격과 위상 명확히 전달/수상 결과 의미를 과장하지 않기/예술적 성장과 과정도 조명하기/예술가의 향후 활동에 대한 관심 유도/한국 사회의 '콩쿠르 숭배' 현상 성찰.

 챗 GPT는 이번에도 결론에서 "네가 문화 저널리즘에 관심이 많은 만큼, 단순히 '승자 중심 보도'가 아니라, '예술과 문화의 맥락'을 짚어주는 기사를 쓰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스브스프리미엄 칼럼(무료 이메일 회원 가입 후 읽을 수 있습니다)도 썼지만, 이 글을 자매편 삼아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콩쿠르 수상 결과에 열광하는 이유는 생생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챗GPT의 답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 글이 쏟아지는 콩쿠르 기사들 중에 '맥락을 짚어주는'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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