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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도 보일 정도...이건 지구마저 파괴하는 숨은 주범"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War Has Become a Force of Planetary Destruction by Sunil S. Amrith

0221 뉴욕타임스 번역
 

* 수닐 암리스 박사는 예일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다. 최근 저서로는 "불타는 지구(The Burning Earth)"가 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토양, 공기, 물을 오염시켰다. 화학공장에서 새어 나온 유독 물질과 폭발물의 잔해가 환경을 파괴했다. 수천, 수만 킬로미터를 태운 화재로 초토화된 참상은 우주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가자지구의 생태 위기도 재앙에 가깝다. 이스라엘의 계속된 폭격으로 유독성 먼지가 대기를 뒤덮었고, 하수처리장이 폭격으로 파괴돼 가동을 멈추면서 하수가 정제되지 않은 채 방류돼 하천과 해안이 오염됐다.

두 전쟁 지역의 환경 파괴는 지난 200년간 우리가 목도한 군국주의 역사가 남긴 폐해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인종적, 종교적으로 한쪽이 다른 쪽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을 수반한 제국의 영토 확장 야욕과 지배욕은 끝없는 전쟁을 낳았고, 전쟁은 인간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파괴한 가장 큰 원흉이었다.

기후위기의 원인을 자본주의의 진행 단계와 거기 맞물린 기술 혁신이 낳은 부작용에서 찾는 과학 연구는 최근 들어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플랜테이션, 증기기관, 20세기 후반의 세계화가 모두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런데 전쟁이 지구 환경에 얼마나 큰 위협을 가하는지에 대한 지적은 놀랍게도 거의 없다.

세계 1차 대전이 유럽을 집어삼켰을 때 산업화된 무기가 낳은 파괴는 대규모 자연재해의 피해에 비견될 만큼 심각했다. 서부 전선에서 싸운 한 인도 병사가 집에 쓴 편지에는 자신이 직접 본 참상이 장황한 비유로 담겼다. 소와르 소한 싱이라는 이름의 병사는 1915년 7월에 쓴 편지에 이렇게 묘사했다.
 
전장 곳곳에 커다란 불길이 치솟는데, 더운 날 바짝 마른 잡목과 나뭇가지가 무성한 숲에 강한 바람이 불면 산불이 나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잖아요. 그때 같아요. 신이 아니면 누구도 끌 수 없을 것 같은 강렬한 불길이에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전쟁이 끝날 무렵이 되자, 비유의 순서가 바뀌었다. 중위도 지역에서 열대성 저기압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효과적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던 노르웨이의 기상학자 빌헬름 비예르크네스 연구팀은 따뜻한 기단과 차가운 기단 사이의 비좁은 경계를 전장에서 대치 중인 두 부대 사이의 전선에 비유했다.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막 경험한 유럽인들에게 비예르크네스의 "극전선(polar fronts)" 이론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뇌리에 박히는 비유 덕분에 극전선 이론은 오랫동안 인용됐다. 인간이 일으킨 전쟁의 파괴력은 지진이나 태풍의 파괴력을 능가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이제 강력한 대기의 힘을 인간의 군대에 비유해 묘사하는 건 논리적으로 당연했다.

이는 다가올 일들의 서막에 불과했다. 독일과 일본은 군국주의 야욕을 드러내며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수많은 사람의 토지와 가옥 등 삶의 터전이 전쟁으로 파괴됐다. 스탈린그라드의 얼어붙은 황무지 위로 타오르는 불길을 두고, 한 독일군 장교는 "거대한 연기구름에 눈이 멀 정도"라고 묘사했다.⁠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의 화장터 불길은 100만 명 넘는 유대인의 시신을 태우고 또 태웠다. 홀로코스트로 유대인 600만 명이 살해됐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작가 프리모 레비는 인간성이 말살된 상황에서 자유를 향한 실낱같은 희망을 자연 세계에서 찾고자 했다. 그는 수용소에서의 하루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진흙투성이 지평선 위로 밝은 태양이 떠올랐다. 오늘 여기를 사는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봄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아직 원자폭탄이 차원이 다른 수준의 폐허를 낳기 전인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이미 연합군의 대대적인 반격은 전례 없는 기이한 현상을 만들었다. 주요 도시에 대량으로 투하된 소이탄으로 토네이도를 연상케 하는 불기둥이 일었다. 드레스덴과 함부르크, 도쿄에서 10만 명 이상이 폭격과 이어진 화재로 숨졌다.

과학자들은 1944년과 1945년 2년 동안 전쟁 중에 발생한 화재로 대기 중에 50만 톤 넘는 그을음이 유입됐다고 추정한다. 이 그을음이 전 세계 기후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제 와서 검증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이론적으로 50만 톤의 그을음은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 태양 복사를 감소시키고도 남을 양이다. 어쨌든 이렇게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치는 현상을 인간이 일으킬 수 있게 됐다는 건 곧 가공할 만한 새로운 힘이 도래했다는 뜻이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 뒤 일본 과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원자폭탄의 피해를 묘사하기 적절한 단어들로, "인종 청소", "생태 학살", "생물 학살", "지구 학살" 같은 단어를 골랐다. 이 끔찍한 단어들의 조합은 앞서 한 세기 넘게 지속된 인간과 환경의 파괴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정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1960, 70년대 과학자와 평화운동가들은 군국주의가 지구와 그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인류의 생명을 끝장낼 위험한 사상이라는 점을 마침내 지적하기 시작했다. 1970년, 예일대학교의 식물학자 아서 갈스톤은 미군이 앞서 9년간 패전의 수렁에 빠져서도 오히려 인도차이나반도의 열대우림에 끝없이 뿌려댄 고엽제의 실상을 지적하며, "생태 학살(ecocide)"이란 단어를 썼다. 베트남 민간인 수백만 명이 고엽제에 노출됐고, 암, 당뇨, 면역 이상, 평생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아이들 등 피해는 몇 세대에 걸쳐 이어졌다. 미군이 전쟁 중에 살포한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의 성분 중 하나인 다이옥신은 독성이 강하고,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데, 비엔 화와 다낭 등 미군의 저장고가 있던 일대 토양에 스며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이옥신은 동물의 지방에 축적됐는데, 베트남 사람들의 주식인 생선에서도 검출됐다.

갈스톤 박사는 고엽제 살포를 "생태 학살"로 명명하면서 이는 인종 청소나 다름없는 전쟁범죄가 될 수 있다고 조심스레 주장했다. 그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환경을 고의로 파괴하는 행위를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갈스톤 박사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의 아라바 환경연구소는 가자지구의 환경과 인도주의가 얼마나 파괴됐는지 기록한 보고서를 펴냈다. 예를 들어 계속된 폭격으로 발생한 유해 가스와 독성 먼지를 포함한 구름은 앞으로 몇 년간 가자지구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할 것이다. 연료도 바닥난 데다 이스라엘군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된 하수처리장이 가동을 멈추면서 매일 10만 톤의 하수와 오염된 물이 그대로 지중해로 방류됐다. 위성 사진을 보면, 휴전 협정이 발효된 시점에 이미 가자지구의 나무 80%가 사라졌다.

우크라이나에선 공장을 비롯한 산업시설이 파괴되고 불에 타면서 폴리염화바이페닐(PCBs), 다이옥신,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와 같은 독성 물질이 대기로 방출됐다. 이러한 물질은 사라지지 않고 먹이사슬에 쌓여 사람이 먹는 음식에도 쌓인다. 철새 12만 마리의 보금자리인 흑해 생물보호구역은 군대가 주둔하면서 전쟁 지역이 됐다. 2023년 6월, (러시아군이 작전을 통해 폭파한 것으로 보이는) 카호우카댐이 붕괴하면서 물을 가둬뒀던 저수지는 말랐고, 수백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주변 땅과 숲이 침수됐다. 이로 인한 피해는 너무 심각해서 UN 환경계획의 보고서에 따르면,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산정하는 데만 앞으로 몇 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전쟁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은 또 있다. 당장 불균형적인 탄소 배출도 문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시작된 전쟁 첫 2년 동안 전쟁 때문에 배출된 이산화탄소만 1억 7천500만 톤으로 추정된다. 이는 인구 1억 7천100만 명인 방글라데시가 1년 동안 연료를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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