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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그 사람' 생각난다?...신랄한 풍자로 돌아온 봉준호의 '미키 17' [스프]

[주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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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저희끼리는 '발냄새 SF'라고 하곤 했어요."

가장 미국적인 장르인 SF와 한국적 정서로 세계적 거장이 된 봉준호의 결합, 평범한 작품이 나올 리 만무하다. 영화 개봉을 앞둔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신작 '미키 17'에 대해 '발냄새 SF'라 명명했다.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한마디로 '죽어야 사는 남자'의 진짜 위기를 그린 SF 소동극이다.

에드워드 애슈턴이 2022년 발간한 SF 소설' 미키 7'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휴먼 프린팅'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실존을 고찰하고, 과학 발전이 야기하는 윤리적 문제를 짚으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화두인 계급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탐욕이 인류에 초래하는 비극을 신랄한 풍자와 짓궂은 유머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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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미키 17'은 '설국옥자'?... '죽어야 사는 남자'에 담긴 메시지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친구인 티모(스티븐 연)와 함께 마카롱 가게를 하다가 망해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 부닥친 그들은 지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미키는 티모의 제안에 따라 우주 행성 니플하임 개척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고 그중 경쟁자가 가장 적은 익스펜더블(Expendable: 소모품)에 지원한다. 익스펜더블은 임무 수행 중 사망할 경우 20시간 안에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그대로 가진 채 똑같이 '프린트'되는 숙명을 띤 직분이다.

원작 소설의 제목은 '미키 7'이다.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미키의 프린팅 횟수라는 걸 감안하면 영화의 주인공은 원작 소설보다 10차례 더 죽는 셈이다. 영화에 더 폭력적인 상황을 부여해 미키의 비극성을 강조하고 과학 발전에서 경시되는 윤리 문제를 제기하려는 봉준호 감독의 의도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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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는 연구진에 의해 각종 실험을 당한다. 열여섯 차례의 죽음은 충격적이고 비극적이라기보다는 측은하고 짠하다. 봉준호 감독이 말한 '발냄새'는 미키의 '짠내' 나는 상황들을 말한 것이 아닐까 싶다. 미키는 무차별 사용되고 버려지는 소모품으로 우주 개척선에서 가장 천대받는 계급이라 할 수 있다. 노동자의 기본 권리인 보험이나 산업재해 등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런 미키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죽는 건 어떤 느낌이야?"이라고 묻는다. 이 폭력적인 질문에 대해 미키는 "죽는 건 끔찍해. 여전히, 매번"이라고 답할 뿐이다.

미키는 탐사 임무 중 크레바스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던 순간, 니플하임의 생명체 크리퍼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한다. 뒤늦게 기지로 돌아온 미키는 또 다른 미키와 마주하게 된다. 연구진이 미키가 죽은 줄 알고 18번째 미키를 프린팅한 것. 니플하임에서는 익스펜터블은 허용되나 멀티플은 금지 사항이다. 소심한 17번 미키와 다소 과격한 18번 미키는 서로 살겠다고 싸우고 나샤의 중재를 통해 비밀리에 공존하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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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키를 구해준 크리퍼는 보이는 게 다인 생물체가 아니다. '우주 식민지'는 지구인 관점에서는 개척이지만, 원주민인 크리퍼 관점에선 침략이다. 후반부엔 크리퍼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지금까지의 언급만으로도 기시감이 느껴질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인 '설국열차'와 '옥자'의 짙은 향기가 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의식과 일관된 취향을 또 한 번 엿볼 수 있다.

'설국열차'와 '옥자' 그리고 '괴물'의 기시감까지 느껴지는 '미키 17'은 봉준호의 자가 복제인가 확장 버전인가. 핵심은 기시감이 아닌 이 요소요소가 '미키 17'의 서사 안에서 잘 융합됐는가다. 이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미키 17'에 대한 평가가 나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풍자? 우리에겐 '그 사람'이 생각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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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2명의 미키만큼이나 흥미로운 캐릭터는 마샬 부부다. 마샬은 우주 개척선의 대장이다.

그는 전직 국회의원으로 익스펜더블 복제 기술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마샬은 인간에게는 하나의 영혼만 있고, 익스펜더블과 같은 복제인간은 영혼이 없는 괴물과도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미키17과 18이 공존할 수 없는 이유다.

영화에서는 몇 차례의 집회 장면과 연설 장면이 나온다. 마샬의 캐릭터를 단번에 보여주는 장면으로 그의 야망과 광기가 드러난다. 그는 자기만의 세계와 철학에 갇혀 있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주하는 독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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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은 우주에 식민지를 개척하려는 야욕과 이익 우선주의,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언행 등의 모습에서 트럼프의 향기가 난다고 반응했다. 여기에 독재자 못지않은 탐욕과 집착을 드러내는 아내 일파까지 등장하면서 우리에겐 또 다른 인물이 오버랩된다.

봉준호 감독이 전작 '기생충'에서 친절하고 자비로운 부자와 악랄하고 폭력적인 빈자 캐릭터를 제시하며 사회적 고정관념을 깼다면, '미키 17'에서는 역사에서 봐온 여러 독재자 캐릭터를 섞어 다소 과장되게 묘사했다.

봉준호 감독은 '마샬'에 대해 "역사 속 나쁜 정치인들의 모습을 재밌게 섞어보고자 했다. 솔직히 참고한 한국과 미국 정치인도 있었다"면서 "과거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영화 본 분들은 요즘 실제 어떤 정치인을 상상하기도 하는 것 같다. 결국 역사가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봉준호 최고의 영어 영화?... 제2의 '기생충'은 아니다
김지혜 주즐레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 영화이자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며 유럽과 미국의 최고 영화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은 차기작에서 할리우드의 손을 잡았다.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 '옥자' 이후 선보이는 세 번째 영어 영화이자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워너브러더스의 자본 100%(제작비 약 2천158억 원)가 투입된 영화다.

베를린국제영화제를 통해 영화가 공개되자마자 외신들은 '기생충'과 완성도를 비교했다. "봉준호 최고의 영어 영화"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기생충'만큼은 아니다"라는 실망감 어린 반응도 나왔다.

'기생충'이 봉준호 영화 미학과 세계관을 집약한 최고작이었기에 이 같은 잣대가 이상하다고는 볼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제2의 '기생충'을 생각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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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세 영어 영화 중 두 편이 SF 장르였다. 그가 만든 한국 영화의 매력이 한국적 사회상을 반영한 리얼리즘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폭넓은 은유에 있었다면 미국 배경의 SF에서는 우화적 성격이 더욱 강하며, 은유보다는 직유의 화법을 선택했다.

물론 '미키 17'에도 봉준호의 개성과 취향은 살아있지만 '선', '냄새' 같은 무형의 개념을 통해 계급과 계층을 나누고 언어와 관계없이 세계 관객의 공감대를 끌어냈던 전작을 생각하면 단순하고 직접적인 풍자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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