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계엄 그곳' 찾아 군 사기 독려…국방장관 만지작?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7일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에서 열린 군사대비태세 점검 회의에 참석하며 주일석 해병대사령관 등 지휘관들과 인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7분이 지난 10시 30분쯤, 비상계엄을 주도한 김용현 당시 국방장관은 합동참모본부 지하 3층 '작전통제실'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포고령 선포에 앞서 계엄 관련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 같은데 어느덧 66일이 흘렀습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행 체제 들어 처음으로 바로 그곳을 찾았습니다. 군사대비태세 점검 차원에서입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권한대행 시절 바쁜 일정에다 2주 만에 직무정지돼 성사시키지 못했던 일정이기도 합니다. 정부 관계자는 "(합참 방문에) 절대 정치적 의도는 없다"라며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다시 믿겠다" → "혼란한 국내 상황에 위축되지마라"

최 권한대행은 합참에서 특히 군 사기가 저하되지 않게 해 달라고 주요 지휘관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최 권한대행은 계엄 사태와 관련된 현 상황을 "혼란한 국내 상황"이라고 평가하며 "군이 위축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훈련하고 안정적으로 부대를 운영하며 군 본연의 임무에 매진해달라"고 강조했습니다. 12‧3 비상 계엄에 일부 군 지휘부가 적극 가담하거나 동원되는 등의 여파로 군 사기가 저하돼 있다는 걸 고려한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 1일 경기 김포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해 부대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앞서 최 권한대행은 지난달 1일, 경기 김포시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해 군 장병들을 직접 다독였습니다. 당시 최 권한대행은 장병들과 함께 식당에 둘러앉아 "여러분들을 '다시' 믿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다시'라는 표현을 써 여러 해석이 있었지만, 큰 틀에서는 계엄 사태에 흔들리지 말라고 주문한 겁니다.
 
두 차례 행보에서 내놓은 발언을 종합하면, '다시 군에 신뢰를 보낼 테고, 또 여러 혼란스러운 국내 상황이 있지만 위축되지 말라'는 메시지로 정리됩니다. 최 권한대행 측 관계자는 "서부지법 폭동 사태와 각종 집회 시위 등 1월부터 잇따르는 여러 정치적 사건이 군 사기에 미칠 영향도 함께 고려한 발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왼쪽),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오른쪽)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특히 최근 군 장성들이 잇따라 국회와 법정에 출석한 장면 또한 군 장병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장병들 시선에 장성은 하늘의 별과 같은데, 이들의 몰락을 지켜 봤으니 지휘 체계가 평시처럼 작동하겠느냐. 최 대행의 점검은 그런 군 내부 여론도 고려한 조치일 것"이라고 반응했습니다. 
 

군 주요 지휘부 10자리 넘게 공석

 사실 군 사기 문제는 군 지휘부 공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대행 체제로 어떻게든 굴러가고 있기는 하지만 명령의 주체이자 결과에 책임을 지는 지휘관의 부재는 명령으로 굴러가는 군 특성상 일선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한 군 관계자는 "명령을 내려주고 그에 대해 책임질 사람이 없는데 누가 적극 나서 일을 하겠느냐.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 아니냐"고 자조 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합참 작전통제실을 찾아 사기 진작을 주문했던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대행이었고 최 권한대행을 수행했던 국방장관, 육군참모총장도 모두 대행이었습니다. 국군통수권자가 부재한데다 현재 계엄 여파로 국방부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특수전사령부, 방첩사령부 등에 지휘부가 사실상 공석인 곳은 10자리가 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특히 안보수장격인 국방장관의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은 군 안팎에서도 꾸준히 문제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내각이 완성돼가는 중이라, 안보 분야에서 호흡을 맞춰야 할 시점인데 미 국무‧국방장관의 '카운트 파터'라 할 수 있는 국방장관이 수 개월 자리를 비울 가능성이 크니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미 간 국방 외교 수장 2+2 회담이 있는데 외교장관 혼자 막아내기 버거울 것"이라며 "회담 준비하고 의제를 정하려면 국방장관이 필요하다"라고 밝혔습니다.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NSC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국방장관 부재가 뼈 아프다고 했습니다. 미국 정부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신뢰도 높은 채널이 NSC인 만큼 트럼프 행정부와 교감이 있는 국방수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NSC 채널을 통해 신뢰를 구축해야 안보에 국한하지 않고 경제 등 다른 분야로 논의를 뻗어나갈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국방 고위 관계자가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며 말했다"

한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20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주재한 비공개 회의 석상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올렸다고 합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씀드린다. 군은 사기를 먹고 사는 조직인데 주요 지휘관들이 공백 상태라 명령이나 지휘 계통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다. 하루빨리 공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한덕수 총리는 이로부터 일주일 뒤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공은 최 권한대행에게 넘어간 상태입니다. 여러 정치적 어려움에도 관철해 나갈 수 있을지 여부는 최 권한대행에게 달렸습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최 권한대행이 안보 공백의 심각성과 그 연장 선에서 국방장관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최 권한대행 측 핵심 관계자는 '야당이 합의 안 해주면 권한대행도 여기서 스톱이냐. 소극적인 자세인가'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행이 이 사안에 소극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국방장관 임명 필요성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논의의 전제 조건은 여야의 합의"라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권한을 대행하는 입장인 만큼, 여야에 논의와 합의를 읍소해야 하고 이후 후보자 추천과 청문회 등의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한 전직 국방장관은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국민들이 대통령을 바라듯, 국방부도 장관을 바라는 마음은 군도 마찬가지"라며 "장관은 분명 필요하다. 다만, 정치적 상황이 녹록지 않다"며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다른 전직 국방장관은 "가령, 현직에 있는 차관이나 합참의장을 장관으로 올리는 것도 새 후보자를 임명하는 것보다 잡음이 덜하지 않겠느냐"라고 조심스레 의견을 전했습니다.
 

"서울청장 인사 안 할 줄 알았는데"…국방장관도 만지작?

최 권한대행의 행보에 대해 기사를 쓰면 댓글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내용 중 하나가 '대통령 놀이'라는 반응입니다. 최 권한대행 측에서는 이러한 반응에 대해 "권한대행은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하자'는 주문을 하는 게 전부"라며 대응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박현수 치안정감 내정자
주목할 점은 최 권한대행이 최근 국내 치안 문제를 고려해 박현수 치안정감 승진인사를 단행한 부분입니다. 경찰청은 박현수 치안정감을 서울청장 직무대리로 발령했습니다. 서울청장은 경찰 서열 2위로 꼽힙니다. 경찰 내부에서도 사실상 정무직 인사로 보는 시각이 다분합니다. 그것도 일명 '친윤석열 인사'로 꼽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최 권한대행의 일부 참모들은 '앞으로 진통이 있을지언정 다른 정무직 인사도 필요하면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아니겠냐'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안 할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최 권한대행은 국회에서 수차례 "정무직 인사가 아니다"라며 "치안 공백 해소 차원"이라고 했지만, 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공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6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 출석한 최상목 권한대행(왼쪽)과 민주당 윤건영 의원(오른쪽)
민주당 윤건영 의원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질의 답변 중 (2월 6일 3차 청문회)

[윤 의원 : (서울청장은) 사실상 정무직입니다. 경찰의 수장이에요, 경찰청장이 없는데. 이런 인사가 가능합니까.]
[최 대행 : 의원님은 그렇게 지적하실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제가 드리는 말씀은 지금 서울청장이 공석이라는 것 자체의 문제 의식은 없으십니까? 저희는 그 부분에 대해서….]
[윤 의원 : 서울청장이 만약에 문제가 있으면 치안정감 보직을 이동을 하면 되죠.]

'계엄 쪽지' 관련 내용 외에는 거의 원론적 입장으로 일관하던 최 권한대행이 오른손을 들어올려 흔들어가며 윤 의원의 지적에 반박을 하며 반문을 하는 모습입니다. 이어서 윤 의원이 1급 외 다른 인사도 단행할 가능성 있느냐고 묻자 최 권한대행은 '정무직 인사는 말씀을 드리지 않겠다'고 짧게 답했습니다. 
 
최 권한대행을 보좌하는 여러 참모들은 국방장관 임명 논의 추진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들 참모들은 마침 다음주 초에 열릴 뻔(?) 했던 여야정 국정협의회에서 이 사안을 언급이라도 해보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협의회는 불발됐고 국방장관 임명 여부 논의는 다시 오리무중인 상태가 됐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6일 국회에 출석해서 경제를 비롯한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을 가리켜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사자성어에 빗댔습니다. 미리 준비해 온 말이라고 합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지금의 행태와 달라지지 않으면 현재 진행 중인 논의와 목표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데 불과하게 된다는 겁니다. 

(사진=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폴리스코어 시즌 2 - LLM과 빅데이터로 분석한 정치인 주간 랭킹 & 이슈 FAQ
SBS 연예뉴스 가십보단 팩트를, 재미있지만 품격있게!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연합뉴스 배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