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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관 승진하고 사표 던진 이유…'면피'와 '호치키스 행정'의 공무원 세계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작가

노한동 더골룸3
호치키스 행정, 일과와 말과, 파일명에 적는 암호 같은 단어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이라는 책에서 묘사되는 공직사회의 단면들입니다. 이 책의 작가 노한동 씨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0년간 일하고 서기관으로 승진하자마자 사표를 내고 작가로 전향했는데요, 책에서는 그가 사표를 내기까지 겪은 공직사회의 문제들이 다채로운 일화로 묘사됩니다. '블랙리스트' 사건을 간발의 차이로 피하고 그가 얻은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왜 공직사회를 '계속되는 면피의 세계'라고 했을까요?
 

김수현 기자 : 제목이 확 와닿아요. 그리고 부제가 '한국 공직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해졌는가.'

이주상 기자 :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블랙리스트 이야기가 앞부분에 나오잖아요, 한강. 원래는 출판 지원 담당을 하셨으니까. 결과적이지만 또 면피를 하신 거잖아요, 군대를 가시는 바람에. 그때 상황을 보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된 부분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공직사회에서 큰 계기가 되었거든요, 블랙리스트가. 그때의 심정은 어떠셨어요?

노한동 작가 : 저는 군대를 가서 이 문제를 알았는데요. 군대를 늦게 갔다거나 군대를 이미 갔다 와서 시험을 붙은 상황이면 꼼짝없이 그 지시를 받았을 거고, 아무리 생각해도 저도 했을 것 같은 거예요. 거부 못 했을 것 같더라고요. 초임 사무관이지, 거기서 빠져나가는 방법도 모르지, 사실은 무섭지. 그때부터는 상당히 사람의 감각이 달라지더라고요. 그 이후에도 진행이 되면서 블랙리스트 사건만이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도 국장급 이하 실무 공무원들이 구속되는 사건들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들이 켜켜이 쌓여가면서 공직사회에서는 면피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짙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수현 기자 : 네. 그래서 파일명에 면피를 위한 방법으로, '국수원', '과수원'... 과장이 수정을 한 번 지시했다. '이거는 누가 시켜서 한 거다'를 밝히려고 파일명에 넣는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나중에 혹시 문제가 되더라도 '내가 한 게 아니다, 위에서 지시한 거다'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노한동 작가 : 특히 뭔가를 실행한 사람은 빠져나갈 구멍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실행했다는 것은 기안자로서 명백히 남는 것이니까. 그러다 보니 '이건 나의 의사가 아니었고, 내 최초의 생각은 이것과 달랐다'라는 것을 남겨두려는 그런 행태가, 최소한의 자기 보호적 행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수현 기자 : 그러면 국수원, 과수원 이런 거를 많이 쓰나요?

노한동 작가 : 다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누군가는 녹음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누군가는 수첩에 '누가 며칠 어떤 지시를 했다'라는 것을 명확하게 남겨놓는 것이고. 특히 중요한 정책을 담당하시는 분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고.

이주상 기자 : 원전 얘기도 그때 잠깐 하셨죠.

노한동 작가 : 네, 이게 나중에 가서는 결국 법적 책임 공방이 될 수 있다 보니까 그렇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김수현 기자 : 직접 그런 파일명을 쓰셨던 적도 있으세요? 일하면서?

노한동 작가 : 저는 기록을 남겨놓으려고 노력을 해서 나름대로는 수첩에도 많이 적어놓고 그랬습니다.

김수현 기자 : 그래서 거대한 면피의 세계다.

노한동 더골룸3
이주상 기자 : 또 면피를 위해서 제일 많이 하는 게 위원회를 만드는 거라고 하셨죠? 그러니까 위원회가 면피뿐만 아니라 면피를 가장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요구하는 측면도 있지 않나요, 공무원들이?

노한동 작가 : 맞습니다. 위원회라는 게 정책의 민주성을 증진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인데,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이거 자체가 의사결정의 타임 자체를 늦출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이것은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위원회의 결정이라는 것으로 갈음해 버릴 수도 있고, 이런 여러 기능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활용하는 것이 관료의 기술이다. 이것과 세트로 연구 용역도 그런 기술로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상당히 똑똑한 사람들이 만드는 무능한 태도들이 밖에서 봤을 때는 '왜 그럴까' 하지만, 안에 들어와서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저는 이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주상 기자 : 좋게 말하면 영리한 거지만 저는 영악하다고 생각하는데, 중앙부처를 출입하다 보면 느끼는 게 위원회를 만들 때 (공무원들이) 자기 뜻대로 만들잖아요. 내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위주로 만들기 때문에 영악하게 자기 면피를 하면서, 위원회를 통해서 자기가 원하는 바도 관철하기 위한 제도로 악용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노한동 작가 : 맞는 말씀이고. 우리가 법정 위원회, 그러니까 법이나 시행령에 기반하고 있는 위원회들은 관리가 되는데 그렇지 않고 임의로 만든 위원회는 대한민국에 몇 개가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게 몇천 개가 있는지 몇만 개가 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거든요. 그런 위원회가 어떤 기능으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의문이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주상 기자 : 건배사 '우문현답' 문제는 현장에 있다고 하고, 현장에 안 가는 거잖아요.

김수현 기자 :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우문현답'.

이주상 기자 : 아이러니한. 말은 우문현답이라고 하면서 실제 현장에는 가지 않는 것은 공직자들의 자부심 때문일까요? 아니면 현장에 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노한동 작가 : 공무원들이 현장에 가야 된다는 생각은 많이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 조직에서 현장에 많이 가시는 분들은 장관, 차관님들. 

이주상 기자 : 그 현장은 좀 다른 현장이죠. 사진용 현장.

노한동 작가 : 그리고 고위공무원끼리 딱딱 짜서 대본이 있고 하실 말씀 서로 왔다 갔다 하는 현장은 많이 만나는데, 실제 정책 시작점이 되는 사무관들, 실무자들이 (현장을) 만나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여건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종시 이전 때문에 물리적 거리 자체도 벌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 쓰고 문서화 줄이더라도 현장을 많이 갔다 와라.' 이런 분위기라면 그런 것들이 커버가 될 텐데, 그런 것들에 대한 개선은 없이 붙박이로 앉아서 보고서 써야 하고, 근데 현장은 알아서 잘해봐?

그러면 사무관들도 모두 그런 건 아니고 잘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제 머리가 돌아가니까, 전화 몇 번 돌리고 인터넷 검색 좀 하면... 이렇게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돌아가다 보니까 현장과 갈수록 괴리가 멀어지는. 그래서 술자리 건배사에서 '우문현답'을 외치지만 실제 우문현답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 설정에는 게으른. 그런 역설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김수현 기자 : 보고서 쓰는 문화는 꼭 정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호치키스 행정.

이주상 기자 : 예전에는 보고서에 색종이 끼워서 하고 그랬어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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