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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가사 쓰며 울컥한 스타 번역가…"'백수' 시절 떠올렸다"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뮤지컬 '틱틱붐' 황석희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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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나온 추리닝 바지, 떡진 머리, 영락없는 '백수'.

영화 '데드풀', '아바타' 등의 스타 번역가, 황석희 씨가 뮤지컬 '틱틱붐'을 번역하며 떠올린 자신의 젊은 날 이야기입니다. '틱틱붐'의 주인공 존은 뮤지컬 작곡가이지만 서른 살 생일을 앞두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죠. 서른즈음의 황석희 씨 역시 밴드 활동을 하다가 좋아하는 번역 일을 시작했지만, 불안하고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시절 황석희 씨가 자신을 다독이며 썼던 일기처럼, '틱틱붐'의 작곡가 조나단 라슨 역시 자신을 다독이며 이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요.

'틱틱붐'은 왜 황석희 씨에게 유난히 특별한 작품이 되었는지,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출연한 그의 이야기, 들어보세요.
 

황석희 번역가 : 저는 너무 존과 비슷한 삶을 살았어요. 서른쯤에 번역을 막 열심히 하던 시점이었고, 특히 한국처럼 프리랜서들을 번듯한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저처럼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백수거든요. 돈을 얼마를 벌든 어떤 일을 하고 있든 간에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그냥 백수인 거예요.

김수현 기자 : '그냥 집에만 있네?'

황석희 번역가 : 늘 무릎 늘어난 트레이닝복 입고 머리 떡져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백수인 거예요. 그 와중에 일이라도 잘 풀리면 '어? 사람들이 오해하네' 할 텐데, 일도 잘 안 되고 버는 돈도 별로 없고, 같이 시작한 어떤 친구는 대단한 어떤 일을 맡았다고 하고, 아니면 이 길을 포기하고 취업한 친구는 이번에 과장을 달았다 그러고... 이런 얘기는 계속 들려오는데, 저는 일도 안 풀리고 밤새 일을 해봐야 제 손에 들어오는 건 얼마 되지도 않고, 이게 미래가 있나 해서 매일 자괴감에 시달리고... 그런 생활을 워낙 오래 겪었기 때문에 존이 이렇게 조급해하고 불안해하고 막 똥줄 타고 이런 것들이 너무 많이 다가왔어요. 제 얘기처럼.

김수현 기자 : 물론 모든 작품을 열과 성을 다해서 하시지만, 이거는 좀 더 특별했을 것 같아요.

황석희 번역가 : 예, 많이 특별했어요. 이걸 하면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존이? 지금 저렇게 방구석에서 시간이 얼마나 흐른 줄도 모르고 밤새 건반을 치고 결과물도 하나도 없고 저렇게 초조한데 어떤 걸로 자기를 나아가게 해야 될까? 그냥 저대로 주저앉을 수도 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프로그램 북에도 길게 써놨었는데, 조나단 라슨이 이 '틱틱붐'이라는 작품 자체를 자기를 위해 쓴 것 같은 거예요.

저는 그렇게 힘들던 당시에 블로그에 일기를 많이 썼거든요. 뭐 누가 와서 보겠어요? 제가 누군지 모르니까 아무도 안 보는데 저만 일기를 쓰는 거예요. 힘들 때마다. 짧게 짧게. 그러면 어떤 일기들은 막 포부가 대단하고요. '오늘은 대답도 없는 회사에 이력서를 5장이나 보냈습니다' 이런 식인 거예요. 왜 이렇게 찌질하고 불쌍한지 모르겠어요. 그때 일기를 보면 되게 짠하고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일로 성공하겠습니다' 이런 일기들이에요. 되게 거창하게. 그때는 어리니까 막 있어 보이게 쓰고 싶었나 봐요. 보면 '제가 사랑하는 일로 성공하겠습니다. 저는 언젠가 세상을 번역하겠습니다' 이런 걸 써놨어요. 그때 그렇게 떠들어놨던 문구들이 이런 타투에 있는 거예요. '세상을 번역하다.'

김수현 기자 : 언제 새기셨어요?

황석희 번역가 : 이건 아이가 태어나기 조금 전이었으니까 한 7년 됐을까요? 6년쯤 됐을 것 같아요. 근데 아주 새파랄 때부터 막 하던 얘기예요. 제가 밤새 작업을 하다가 그 일기를 쓴 게 새벽 한 2시 40 몇 분쯤이에요. 제가 11월 3일쯤 되면 제 SNS에 종종 그게 떠가지고 올리거든요. 기념일처럼 올리는데 그때가 생생해요.

2시 40 몇 분쯤에 너무 자괴감 느껴지고 힘드니까 그런 거라도 써놓고 한 번 읽고 베란다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한숨 푹 쉬고 들어오면 그래도 그 힘으로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라도 근거도 없는 호언장담을 해놔야 일을 할 수 있었거든요. 아무도 저를 응원해 주거나 다독여 주지 않잖아요. 그럴 때는 보통 가족의 힘이 필요하잖아요.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부모님이라거나 형제라거나. 그런데 그렇지 않고, 또 한국 사회에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프리랜서들을 굉장히 처량하게 보기 때문에 저희 부모님도 늘 취업해라, 취업해라 하셨었고, 아무도 절 응원하거나 다독이지 않는 거예요. 주변 친구들도 그들 눈에는 제가 아르바이트 하는 걸로 보이는 거죠. 번역 일을 한다고 하면. 엄연한 직업으로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알바 그만하고 빨리 취직해라' 이러니까 저라도 저를 다독이고 응원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나갈 힘이 없는 거예요.

제가 볼 땐 조나단 라슨도 그랬던 것 같아요. 아무도 응원 안 해주고, '틱틱붐' 작품 보시면 알겠지만 아버지가 계속 취직하라고 그래요. '애비 죽기 전에 취직 좀 해라.' 주변에서도 친구들은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서 '너 우리 회사 와서 일해라' 자꾸 이러고. 걱정해서 하는 말이죠. 근데 자기는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결과도 안 나오고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이 작품을 자기를 위로하기 위해서, 다독이기 위해서 쓴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그렇잖아요. 아무것도 이뤄놓은 게 없는 이제 20대 후반의 극작가가 자전적인 작품을 쓸 이유가 뭐가 있어요?

김수현 기자 : 성공하고 쓴 것도 아니고. 그쵸?

황석희 번역가 : 그러니까요. 보통 세간의 시선에서 어느 정도의 입지에 오른 사람들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잖아요. '아, 나 이럴 때 힘들었는데 성공했어' 이런 것들.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는 사람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썼다? 그 의도가 뭘까를 생각했을 때 그랬던 것 같아요. 종종 자기가 그 작품을 보면서 이게 개발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써놓은 것들을 보고 그 노래를 부르고 하면서 내가 앞으로 좀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 싶다. 내가 나를 좀 다독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쓴 작품이라고 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쓰면서 저도 예전 생각이 되게 많이 났어요.

저는 20대 때 번역하기 전에는 밴드를 했거든요. 밴드를 한 10년 가까이했는데 그것도 미련이 남아서 30대 때는 직장인 밴드를 오래 했었고, 나중에 여건이 안 될 때는 버스킹을 한 4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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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기자 : 뭘 담당하셨어요?

황석희 번역가 : 계속 보컬을 했고, 밴드는 멤버를 한 명이라도 줄여야 편하거든요. 그래서 세컨 기타를 하면서 보컬을 했어요. 그 생활을 오래 하다가 그만두고 이제 일을 하는 입장이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어떤 면에서는 마이클인 거예요.


김수현 기자 : 그러네요.

황석희 번역가 : 네. 제가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을 그만두고 현실적인 일을 택한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번역 일을 시작했는데 번역계에 들어오니까 여기서 다시 또 존인 거예요.

김수현 기자 : 그럼 다 공감이 가는.

황석희 번역가 : 그럼요. 너무 공감이 됐고, 지금 입장에서 저는 배우분들한테 대본을 드리고 같이 연습하고 올라가 있는 배우분들을 보면, 저는 또 무대 밑에서 응원하는 마이클인 거예요. 그래서 배우분들한테 짧게 메모를 써드린다거나 응원을 해드린다거나 할 때 늘 그렇게 써드려요. '나의 열두 존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거든요. 앙상블분들부터 수잔, 마이클까지, 저한테는 다 존이에요. 마이클인 입장에서 너무 선망하고 존경스러운 존들인 거죠, 무대 위 연기하시는 분들이. 그래서 보고 있으면 마냥 응원하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어요. 늘 선망하고 멋있습니다.

김수현 기자 : 대본 번역하면서 울컥하셨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드는데... 저 공연 보면서 울컥하는 순간들이 좀 있거든요.

황석희 번역가 : 저도 좀 많았어요.

김수현 기자 : 특히 어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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