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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차 · 쓰레기차는 되고 택배차만 안되나"

"이사차 · 쓰레기차는 되고 택배차만 안되나"
▲ 수레에 택배를 담는 모습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A아파트 단지는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수백 개의 택배 상자가 잔뜩 쌓여있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A아파트 담당 택배기사 C 씨가 한 손으로 수레를 끌며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시간 내에 신선제품을 배송하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이었습니다.

C 씨는 이 아파트 단지에서 수레를 이용해 택배를 배송해왔습니다.

아파트 측이 안전을 이유로 주말 등 공휴일과 평일 오후 7시 이후에 단지 내 택배차량 진입을 금지한 데 따른 것입니다.

해당 시간에는 인근에 차를 세워둔 채 택배 물품을 수레에 옮겨실은 후 아파트 단지를 돌아야 합니다.

이 아파트는 지상 공간을 공원으로 조성해 '차 없는 길'에 최적화된 형태로 설계됐습니다.

차량용 지상도로가 있지만 택배 차량은 저녁과 공휴일에는 이용할 수 없습니다.

길 위에 택배 물량이 산처럼 쌓여있는 모습이 익숙한 듯 오가는 주민들도 이따금 눈길을 줄 뿐 이내 가던 길을 향했습니다.

C 씨는 "이사차, 쓰레기 수거차, 가구 운반차는 군말 없이 다 열어주는데 택배차만 안 된다고 하니 화가 난다"고 토로했습니다.

"설날이나 추석처럼 연휴가 길어지면 일주일 내내 수레를 끌고 뛰어다녀야 합니다. 아파트 단지가 넓다 보니 끝에 있는 동까지 다녀오면 지칠 수밖에 없어요."

수레를 이용할 경우 업무 시간은 평소 대비 2∼3배 소요됩니다.

지상 도로를 이용한다면 3시간가량 소요될 배송 작업이 6시간 이상으로 늘어난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C 씨는 "수레를 끌고 배송하다 보니 여름에는 땀이 많이 나고 비가 오면 몸이 젖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면 주민분들이 냄새가 난다거나 물 떨어진다고 안 좋아하신다"며 "그럴 때면 저도 창피하고 작아지고 어딘가로 숨고 싶다"고 털어놨습니다.

저상탑차를 불러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택배차량은 높이가 2.5m 이상인데 해당 아파트 지하주차장 진입로 높이는 2.3m에 불과해 택배기사들은 별도로 저상탑차를 대여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수레로 배송하는 것보다 시간은 단축되지만 택배기사들에게는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저상탑차는 기사들이 몸을 굽힌 채 물건을 옮겨야 해 부상의 위험이 높고, 짐을 많이 실을 수 없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상탑차 대여 비용은 택배기사 몫입니다.

C 씨의 팀장 J 씨는 "저상탑차를 빌리는 비용을 감안하면 택배 한 건당 배송료의 70%밖에 못 받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의 택배 이용량은 증가 추세입니다.

C 씨는 "2년 전 이 아파트 단지에 배송하는 일평균 택배량은 200여 개였는데 현재는 약 1.5배 수준이다"라고 밝혔습니다.

C 씨 등은 차단기를 열어 달라고 꾸준히 요청했지만, 아파트 관리소 측은 주민들의 안전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관리소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주말에는 많은 입주민이 지상에 나와 있어 택배차가 진입할 경우 안전이 우려돼 이러한 조치를 실시 중"이라며 "많은 공원형 아파트가 이러한 방침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하주차장은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원형 아파트와 택배기사 간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8년 남양주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을 통제하자 택배기사들이 반발해 문 앞 배송을 중지한 바 있습니다.

2020년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2021년 서울 강동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 등에서도 유사한 갈등이 재현됐습니다.

현재까지 제시된 해결책은 주민과 택배업체가 원만한 합의점을 찾는 방법뿐입니다.

2019년 1월 지상공원형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높이를 2.7m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마련됐지만, 이미 건축된 아파트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택배 회사들은 명확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저마다 소비자에게 '빠른 배송'을 약속하면서 정작 현장의 택배 기사들이 처한 어려움은 나 몰라라 하는 것입니다.

한 물류택배사 관계자는 "모든 기사에게 차량을 일률적으로 저상탑차로 교체하라고 강제하기 어려운 만큼 사안별로 양측 입장을 듣고 중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도 정해진 대응 방침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개별 사업자인 경우가 대부분인 택배 기사들은 생업 전선에서 일감이 줄어들까 우려해 회사와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냉가슴을 앓고 있습니다.

합의점이 도출된 사례로는 인천 미추홀구의 아파트가 있습니다.

이곳은 2016년 8월부터 노인 인력을 활용하는 실버택배를 도입해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이 아파트 역시 입주 초기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제한해 마찰을 빚었으나, 입주자대표회의를 통해 실버 택배를 시행하면서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어르신 배달원이 지하주차장 거점지역에 배송된 택배를 분류해 각 세대로 재배송하는 방식입니다.

여전히 지상 출입은 어렵지만 택배기사들은 물건을 거점 지역에 내려놓기만 하면 돼 업무 부담이 줄었습니다.

어르신들에게는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이 지급됩니다.

또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는 택배 차량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동할 수 있는 별도 이동 동선을 만들고 택배기사들도 단지 내 운전수칙을 준수하기로 합의하면서 갈등이 봉합됐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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