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 보고는 우리 역사에 남을 기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2.3 비상계엄의 주인공 대부분이 등장하는 배신과 음모의 드라마였습니다. 이번 사건 취재를 담당하는 SBS 외교안보팀장으로서 더 이상 받을 충격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주인공들의 자백으로 재구성한 비상계엄의 실체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능력 있는 드라마 작가들이 이번 사건으로 영화 시나리오로 만들어주시길 강력 건의드림)
원톱 주연은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곽 전 사령관은 자신의 잘못이 너무나 엄청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알고 있는 것을 하나둘씩 털어놨는데 악역에서 선역으로 회심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드라마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자백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TV를 보고 비상 계엄을 알았다고 하는 걸 보니 말을 맞춘 것 같다"며 다른 장군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나도 불었으니, 너희들도 다 알고 있는 걸 털어놓으라는 의미로 보였습니다.
이미 중죄를 피하기는 어렵지만 곽 전 사령관이 부하들에게 억지로 유혈사태까지는 지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고려해 줄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부대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간 병기로 구성돼 있는데 특전사령관이 만약 '김용현급'의 광기를 지녔다면 우리는 지금 이렇게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을 겁니다.
"문을 부수고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곽 전 사령관이 실토한 윤석열 대통령은 한마디로 그냥 전두환이었습니다. 10일 국방위에서 확인된 윤 대통령은 법치 자체를 깡그리 무시하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곽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전화해 "문을 부수고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걸 생생하게 증언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조바심을 내며 계속 전화해 강경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목적은 명확해 보였습니다. 자신이 내린 비상계엄을 헌법적인 절차로 해제하는 것을 물리력으로 막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조폭이나 건달도 이런 초법적인 지시를 내리면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증언만으로도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죄를 피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전두환이 했던 쿠데타를 모델로 그대로 실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포고령의 섬뜩한 문구 자체도 모두 그 모델은 전두환의 포고령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선진국 반열에 올라있던 대한민국의 시계를 1979년 12월 12일로 돌려놨습니다.
실패했지만 모든 계획이 준비된 계엄이었다
계엄이 하루라도 더 길어졌으면 어딘가에서 느닷없이 방화 같은 일이 일어나면서 사회가 극도의 혼란에 빠지지 말라는 법은 없었습니다. B-1 벙커는 수방사의 전쟁 지휘소로 그 안에 무슨 시설이 있는지조차 극비이며 들어가면 외부와의 모든 연락을 쉽게 끊을 수 있는데 여기 의원들을 수감할 계획이었습니다. 계엄 확대, 총선 무효, 계엄군 관리하에 재선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을지 모릅니다. 다른 나라에서 우리를 본다면 제3세계의 비민주국가로 볼 수밖에 없는 엄청난 음모가 가동됐다는 의미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을 것이고 계엄군이 모든 걸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면 우리가 알던 한국은 더 이상 없었을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