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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결혼도 불사할 정도, BTS급 인기였다"…'정년이'로 본 여성국극의 세계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미디어 아티스트 정은영 작가 / '여성국극 프로젝트' 현대미술 작업 진행

정은영 커튼콜
드라마 '정년이'로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남성 역까지 모두 소화했던 여성국극은 1950년대 가장 각광받은 장르였습니다.

여성국극단 배우들은 가는 곳마다 팬들을 몰고 다닌, 그야말로 오늘날의 '아이돌'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여성국극단 창고에는 비단이 넘쳐났다'는 증언도 전해집니다.

그 시대 여성국극이 그렇게 커다란 인기를 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팟캐스트 중 여성국극단 '진진'은 '진경'으로 정정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병희 아나운서 : 먼저 여성국극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정은영 작가 (미디어 아티스트) : 이름처럼 여성들이 무대에 서서 극을 만들어 나가는데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판소리 바탕이에요. 근데 판소리는 한 명의 창자가 나와서 모든 걸 다 소화하죠. 주인공이 100명이면 100명의 이야기를 다 혼자 해야 되고, 고수가 한 명 같이 나오긴 하지만 소리로는 그분이 모든 걸 전달하게 되는데.

말하자면 매우 근대화되고 서구화된 뮤지컬이나 오페라 양식으로 분창화(창이 분리)되고 극으로 만들어지면서 장면화되면서 무대를 만들게 되는 거죠. 그래서 쉽게는 판소리라는 전통문화유산 공연의 형태를 머릿속에 떠올리시면서 동시에 그것이 뮤지컬이나 오페라처럼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공연되는 형태를 상상하시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요.

여성국극은 무대에는 오로지 여성만 올라가게 되는 형태여서 남녀노소를 다 여성이 연기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남성 주연을 연기하는 여성 배우들의 인기가 엄청나게 하늘을 찔렀던 거죠.

이병희 아나운서 : 창극하고 비슷한데 배우들이 다 여성이라고 보면 될까요?

정은영 작가 : 네 맞습니다. 창극이 원래 처음에 만들어지기 시작했고요. 근대화된 형태의 공연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큰 성과를 못 내다가 여성국극, 여성들만 공연을 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데요. 여러 가지 설들이 있어요.

근데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이몽룡과 성춘향 이야기가 나오면 저희가 그들이 10대였다는 걸 다 알고 있잖아요. 근데 판소리에서는 60, 70, 80 먹은 명창들이 이몽룡을 연기해야 되는 거죠. 시각적으로 매칭이 잘 안 되는. 근데 20대, 30대 여성이 남성의 분장을 했기 때문에 꽃미남 같은 얼굴을 하고 이몽룡을 연기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엄청난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던 거죠.

정은영 커튼콜
이병희 아나운서 : 실제로 여성국극이 인기 있었던 때가 언제쯤이에요?

정은영 작가 : 50년대가 가장 절정이었고요. 너무 인기가 있어서 한국전쟁 동안 피난을 다니면서도 공연을 했었던 기록이 남아 있고요. 60년대가 되면서는 박정희 정권이 한국의 많은 전통 문화유산들을 국가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하거든요. 그러는 과정에서 여성국극은 사실상 탈락되고, 남녀 혼성 창극인 지금의 국립창극단이 생기고, 당시 할리우드 영화니 악극이니 많은 인기 있는 장르들이 생겨나게 되면서 여성국극이 거의 사라져 가게 되죠.

근데 당시 유일하게 극단 진경이라는 곳이 60년대 후반까지도 계속 인기를 누렸어요. '정년이'에 등장하는 매란국극단이 아마도 이 진경국극단의 모습을 이어받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병희 아나운서 : 실제로 있었군요, 이런 형태가. 근데 완전히 뚝 끊겨 모르고 살았다는 게 신기하네요.

김수현 기자 : 인기가 많아서 가상 결혼식도 열리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이병희 아나운서 : 남자 역을 했던 여성 배우가 너무 인기가 많아서요.

정은영 작가 : 웹툰 '정년이'에서도 묘사가 되는데 실제로 남성 주연 역할을 했던 여성 배우들의 인기가 너무 하늘을 찔러서, 제가 당시 배우님들을 따라다니면서 인터뷰를 했는데요. 그때 사진관에 가면 여성국극 배우들의 분장을 할 수 있는 소품들이 있었대요. 지금 우리가 인생 네컷 찍으러 가면 소품이 쫙 늘어져 있는 것처럼 당시에 배우들의 소품을 몸에 걸치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어 있었대요. 대중 잡지들이 배우들을 엄청나게 조명하고요. 그런 사료들이 다 남아 있거든요. 정말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건 확실하고.

제가 인상 깊게 봤던 글 중에 하나는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 여성 1세대인 노라노 선생님이 당시 연극 옷들을 몇 번 만든 경험이 있는데, 무슨 신 연극 이런 데를 가면 다들 너무 가난한 옷차림을 하고 공연을 해서 정말 보기가 정말 안 좋았다. 옷을 좀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햄릿처럼, 오델로처럼 입히고 싶은데 너무 가난하니까 그게 안 됐는데, 여성국극 공연에 가면 창고에 비단이 넘쳐나더라, 이런 증언을 하신 일기를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정말 당시에 여성국극의 인기는 거의 BTS급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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