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세계적인 안보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의 전쟁이었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 안보현안으로까지 확대됐고, 남북한과 미국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향후 한반도와 유럽의 안보 지형에도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드러난 북한군 파병 관련 사실들을 점검해 보면서, 우리가 주시해봐야 할 몇 가지 포인트들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군의 전투력은
북한군이 대거 러시아 전선에 투입된다고 하지만, 북한군의 실제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검증된 바가 없습니다. 영화 속에 그려지는 북한 특수부대원들은 무적인 것처럼 묘사되기도 하는데, 영화는 영화일 뿐 북한군이 실제 전장에서 어느 정도의 능력을 발휘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것은 이번에 파병되는 북한군들이 최정예 특수부대인 폭풍군단(11군단)의 일원들이라는 것입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파병에 앞서 지난 9월 11일과 10월 2일 특수부대원들의 훈련을 참관했는데, ‘차력 쇼’라고 할 정도의 각종 격파와 체력훈련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쇼’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강도 높은 체력단련과 군사훈련이 특수부대원들에게 행해져온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수부대원들의 전투력이 다른 부대의 군인들보다는 일반적으로 높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국정원은 파병된 북한군의 연령대가 주로 20대 초반이며 10대 후반도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10대 후반까지 파병됐을 가능성이 있는 이유는 북한의 군 입대 구조에서 추론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보통 고급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군대에 가기 때문에 입대한 지 얼마 안 된 군인들의 경우 10대가 존재합니다. 특수부대로 입대한 지 얼마 안 된 군인들이 파병돼 왔다면, 10대 파병자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군대에 가는 신체검사 기준은 키 148cm, 몸무게 43kg 이상입니다. 예전 신체검사 기준은 키 150cm, 몸무게 48kg이었는데, 식량난으로 청소년들의 체격이 왜소해지자 1994년부터 신검 기준을 하향 조정했습니다. 특수부대의 경우 일반 병사들보다는 신체조건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북한 청소년들의 전반적 체격이 왜소해진 상태인 만큼 특수부대라고 해서 대단히 뛰어난 체격조건은 아닐 수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대단히 뛰어나지는 않은 신체조건에다, 나라와 가족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역만리에서 다른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은 북한 군인들의 전투의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못하더라도 도대체 왜 러시아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회의감을 가진 북한 군인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보면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이 상당한 전투성과를 내게 될지, 아니면 별다른 전과 없이 목숨만 잃게 될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좀 더 시간이 흘러봐야 이번 전쟁에서 북한군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평가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만약 북한군이 이번 전쟁의 판도를 바꿀 정도의 전과를 올리고 그로 인해 러시아가 유리한 상황에서 휴전을 하게 된다면,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상당한 반대급부를 챙길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적 영향력도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파병된 북한군이 이렇다 할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사상자만 늘어가면서 추가 파병을 놓고 북한과 러시아가 실랑이를 벌이는 상황으로 간다면, 국내외적으로 북한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과 함께 북러 간에도 미묘한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북한군의 작전지휘권은
북한 특수작전사령관 출신인 김영복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이 북한군 총책임자로 러시아에 파견됐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북한이 혹시 일정 지역에서의 독자적인 작전지휘권을 행사하는 것 아닌가 하는 관측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북한군은 러시아군 편제에 들어가 전투를 수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정원은 지난 10월 29일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러시아군이 북한군에게 러시아 군사 용어 100여 개를 교육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위치로’ ‘포격’ ‘발사’와 같은 용어들을 러시아어로 교육하고 있는데 북한군이 어려워한다는 후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군인들이 북한군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한국어를 익히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북한군에게 러시아 군사용어를 교육하고 러시아군이 한국어를 익히고 있다는 것은 두 나라 군대가 혼합 편제돼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북한군이 러시아군 편제에 들어가게 되면 러시아군의 기존 전쟁수행 방식대로 북한군이 전투를 치르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 러시아군 사상자는 지금까지 6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군이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이 인력 소모전 방식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군이 이런 소모전에 러시아식으로 투입된다면 개별 전투력과는 상관없이 사상자가 막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군 사상자가 계속 늘어가고 추가파병이 불가피한 상황이 이어지면 북러 간 갈등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한군 귀순자가 생긴다면
국정원은 국정감사에서, 북한군이 귀순을 요청할 경우 “국제법, 국내법적으로 당연히 우리나라가 받아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 권력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부분도 존재하기에 고민해야 하는 면도 있지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서 귀순 요청을 검토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군 귀순자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그 수가 늘어날 경우, 이는 북한 정권에게 상당한 타격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믿고 보낸 군인들마저 북한 정권을 배신한다는 것은 체제 보위의 마지막 보루마저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파병 군인들의 귀순 소식이 북한 내부로 퍼져갈 경우 체제의 취약성이 한층 더 부각될 것이고, 북한은 추가파병에도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