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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제비 한 마리', 이제 봄을 부르러 가야 합니다" [스프]

[커튼콜+] 한국 문학, 세계 문학 변방에서 중심으로

김수현 커튼콜+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게 10월 10일이었으니 시일이 꽤 지났는데, 아직도 처음 소식 접했을 때의 흥분과 벅찬 감동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관련 기사들이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고, 저도 이 코너에  <한강의 수상이 통쾌했던 이유... '노벨상 시즌'의 헛고생을 떠올리다>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또다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문학 번역 지원 사업을 민간에서는 교보생명이 설립한 대산문화재단이, 공공에서는 한국문학번역원이 진행하고 있는데요, 지난 5월 임기를 마친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커튼콜에 초대했습니다. 그는 시집을 여러 권 낸 시인이기도 한데요, 한국문학번역원 이전에는 1992년부터 대산문화재단에서 번역 지원 업무를 해왔습니다. 한국 문학 번역의 역사와 현재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그가 대산문화재단에 재직하던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에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노벨문학상 받고 안 받고가 문제가 아니다. 한국 작가들은 지금 작품을 따라 읽는 독자층이 무너진 상태에서 혼자 작품을 쓰고 있는 것'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던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에도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줬는데요, 그중 일부를 문답 형식으로 간추려 전해드립니다.

김수현 커튼콜+ 

노벨문학상 수상을 예언했다?

Q. 노벨문학상 수상 예상했나? '예언했다'는 얘기도 나오던데.

A. 최근 1-2년 사이에 '한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했다. 그게 '예언'으로 와전된 것 같다. 하지만 올해 받을 줄은 몰랐고, 한강 작가가 받을 것으로 예측하지 못했다. 한강 작가가 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만 노벨문학상의 성격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노벨문학상은 '작품상'이 아니라 '공로상' 성격이 강하고,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평가해 주는 상이다. 그래서 한강 작가는 아직 젊으니 좀 기다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Q.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판단한 이유는?

A. 한국 문학 번역이 이제 1년에 200종 이상이 됐다. 이 200종은 '공급자'가 고르는 게 아니라, 수요자, 그러니까 해외 문학 출판사와 독자가 원해서 번역된 것이다. 시장이 그렇게 바뀌었다. 초창기에는 '공급자'인 우리 쪽에서 해외에 소개하고 싶은 작품을 정하고 번역가를 모집해 번역을 했다. 번역이 끝나면 그 원고를 들고 보따리 장사처럼, 책을 출판해 줄 외국 출판사를 찾아다녔다. 잘 안 될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제도를 바꿔서 외국 출판사도 작품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미미했는데 2020년 이후부터는 외국 출판사가 한국 작가나 한국 출판사와 원하는 작품의 저작권 계약을 하고 선인세를 주고, 그 계약서를 갖고 번역원에 번역 지원 신청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문학 번역이 2020년에 100종 정도였는데, 단기간에 급속히 늘었다.

뉴욕타임스라든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이런 각국의 유명한 매체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 리뷰가 나오는 경우도 굉장히 늘었다. 특히 2016년 한강 작가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이후부터 매년 한국 작가들이 해외 여러 문학상 후보로 올라간다. 적어도 한 해에 2-3개, 많을 때는 2-8개의 문학상을 받는다. 이런 변화가 정말 놀랍다.
 

노벨문학상 수상도 압축 성장으로 이뤘다?

Q. 한국 문학 위상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는데, 그중에서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결정적 이유는?

A. 아무래도 부커상 받은 게 컸다. 한강 작가가 해외 무대에 소개되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10년 <채식주의자>가 베트남에서 번역 출판되었는데 파급 효과가 크지는 않았고, 2015년에 영국에서 영문판이 나왔다. 대산문화재단에서 당시 영국 출판사에 번역 출판을 지원했다. 그 이듬해 바로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 영어권에 처음 소개된 그 작품이 상을 받은 것이다.

<채식주의자>는 일반 독자가 읽기에 쉬운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서구의 전문 독자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놀라운 작품이다. 채식을 선언한 이 여성은 스스로 자기가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여성은 채식을 선언하면서 아버지로부터 남편으로부터 굉장히 폭력을 당한다. 가부장적 질서라든지 한국 사회의 완강한 유교적 질서를 이야기하면서, 희생자가 된 개인의 수난, 고통을 아주 탁월하게 보여준다. 당시에는 채식이 한국 독자들에게 좀 낯선 것이었지만, 유럽 독자들에게는 낯익은 소재이고, 그게 한국의 여성, 유교적 질서 이런 것들과 맞물리면서 아주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채식주의자> 이후 해외 독자들이) 한강 작가의 다음 작품을 주목해서 봤을 텐데,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나왔다. 앞의 작품(채식주의자)가 개인으로서의 희생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뒤의 두 작품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과 연관되어, 거대한 권력이 빚어낸 참극 속에서 한 개인이 겪게 되는 고통, 비극을 그려낸다. 다른 작품들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소년이 온다>가 정말 탁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서구 독자들, 혹은 세계 문학의 중심축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작품들이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준 것 같다. 그러니까 한 번에 된 건 아니지만 이런 작품의 단계들이 굉장히 효과적으로 묶였던 것 같다.

서점에 진열된 한강 작가의 책들
Q. 노벨문학상도 압축 성장?

A. 한강 작가의 작품이 총 28개 언어 82건 번역 출판되었다. 일본과 비교하자면, 일본에서 가장 최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게 1994년 오에 겐자부로 선생이었다. 겐자부로 선생이 노벨상 받기 전까지 17개 나라 79종이 번역 출판되었다. 번역된 숫자가 겐자부로 선생과 비슷하다. 그런데 한강 작가 작품은 2010년부터 따지면 14년 정도, 그것도 실제로는 <채식주의자> 영문판이 주목받은 2015년 이후 대부분 번역되었다. 그러니까 짧은 기간 '선택과 집중의 승리'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 문학 번역 18세기부터... 해외 독자 관심은 1990년대부터

Q. 한국 문학 번역의 역사는?

A. 한국 문학 번역은 18세기에 시작되었다. 18세기 말에 미국에서 영어로 된 한국 민담집이 나왔다. 또 후에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가 프랑스에 있으면서 1892년쯤에 <춘향전>, <심청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초창기에는 주로 선교사들이나 한국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한국 고전을 많이 번역했다. 우리가 번역 출판을 정책적으로 지원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1968년에 한국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생겼다. 바로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을 탄 것이다. 인도 타고르에 이어 두 번째로 아시아에서 받은 건데, 인도만 해도 우리한테는 멀게 느껴지지만, 일본은 다르다.

왜 우리는 노벨문학상 못 타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그래서 1974년 지금 예술위원회 전신인 문예진흥원에서 번역 출판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6년 후 황순원의 <별>이라는 단편집이 영국도 미국도 아니고 홍콩에서 나왔다. 시작은 그랬다. 그러다가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처음 주목받은 건 1990년대 프랑스에서였다. 영어권에서는 2010년대 이후였다.

Q. 프랑스에서 처음 한국 문학이 관심을 받은 이유는?

A. 한국 문학 번역의 흐름을 봐야 한다.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는 외국 문학을 전공한 한국인들이 주로 번역을 했다. 1세대 번역가들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한국 문학의 존재를 어느 정도 알리기는 했지만 예술 텍스트로 전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1990년대 대산문화재단을 설립하면서 실무 책임을 맡았는데, 파격적으로 번역비를 인상하면서 '공동 번역' 제안을 했다. 외국어에 밝은 한국인과 한국어·한국 문화에 밝은 외국인이 팀을 이뤄서 번역하는 것이다. 2세대 번역가의 출범이고, 한국 문학이 비로소 예술 텍스트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때 이청준, 이문열 작품들을 프랑스에 소개한 탁월한 공동 번역자들이 나온 것이다.

소설가 최윤은 본명이 최현무로 유명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최현무 선생이 프랑스 사람인 부군과 같이 이문열, 이청준 작품을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주목받았다. 오정희, 최인훈도 소개됐다. 2000년대 초반에는 최미경-장 노엘 쥬떼라는 새로운 번역팀이 등장해 이승우와 황석영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당시 스위스에 출장 갔더니 한 출판사 편집인이 '이승우 읽었는데 좋더라' 해서 우쭐했던 기억이 난다. 이건 번역의 승리다.

그다음, 2010년대 들어서 3세대 번역가가 등장한다. 3세대 번역가를 '원어민 번역가'라고 하는데, 이건 국적이나 인종은 상관없고, '도착어'인 영어 표현 능력이 아주 뛰어나고, '출발어'인 한국어에 대한 이해도 뛰어난 번역가다. 3세대 번역가 맨 앞에 있는 사람이 2012년에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영어로 번역한 김지영이다.

김지영이 번역한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의 아주 큰 상업 출판사인 크노프 출판사에서 나왔고, 뉴욕타임스에도 베스트셀러로 소개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신경숙 작가가 그 이듬해 지금은 없어진 맨부커 아시아상을 받았다. 3세대 번역가의 등장과 함께, 가장 영향력 크고 독자가 많은 영어권에서 2010년대 초,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한국문학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3세대 번역가로 김지영뿐 아니라 허정범(안톤 허), 데보라 스미스, 김소라, 이런 번역가들이 등장했다. 번역가의 진화가 한국 문학 세계화와 아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 작가(오른쪽). 나란히 선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을 맡았다. 

3세대 번역가들, 한국 문학 세계화에 큰 힘

Q. 한국인은 한강 작가의 작품을 '원어'로 읽을 수 있지만, 외국 독자들은 번역을 거쳐 읽는다. 뛰어난 번역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할 것 같다.

A. 신문에 AI 번역과 전문 번역가의 번역을 비교하는 기사도 실렸던데, AI 번역은 기본적인 속성이 다르다. AI 번역은 정확성과 표준성을 강조하지만, 예술 텍스트가 지향하는 건 독창성과 유일성이다. 근본적으로 AI가 할 수 없고, 사람이 할 수 있는 번역이다. 그래서 뛰어난 번역가들이 있는 게 정말 중요하다.

예술 텍스트 중에 문학은 독특한 특성이 있다. '문학은 한 집단 혹은 한 시대의 삶과 정신의 지형도'라는 말이 있다. 러시아 문학이나 프랑스 문학을 읽으면, 당시의 프랑스 사회, 러시아 시대를 이해하게 된다. 가장 평등하면서도 가장 온전하게 예술, 정신문화의 세계를 그대로 옮겨갈 수 있는 게 문학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번역이 따른다.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문화의 주도권을 서구 사회가 가져갔기 때문에, 서구 사회로부터 문화적 근친성이 멀수록 불리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중국 소설이나 일본 소설을 읽으면 금방 이해가 된다. 문화적 근친성이 있어서다. 그런데 러시아 소설을 읽으면 끝날 때쯤 되어야 주인공 이름이 익숙해진다.

주변국이고 근대화 후발국일수록 번역이 어렵다. 그만큼 많은 거리를 뛰어넘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정책적 지원 30-40년 만에 그 벽을 뛰어넘었다는 게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에 '한강 작가의 수상이고, 그다음에 한국 문학과 번역의 수상이고, 그다음에 한국 문화예술의 수상이다'라는 글을 썼었는데, 그만큼 번역이 중요하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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