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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하루를 버틸 힘을 준다…지금 더욱 좋은 레시피 세 가지 [스프]

[스프카세] 호박이라는 무한한 우주 (글 : 정고메 작가)

정고메 스프카세
 

먹방과 레시피, 와인 등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 스프에서 맛깔나게 정리해드립니다.
 

처음 그것을 발견한 건 6월이었다. 집 뒤편에는 작은 산이 하나 있다. 경사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도심으로부터 이어져 온 길이 끝나고 왼편으로는 비탈진 산의 경계가 있으며, 비탈길을 끼고 돌아 올라가면 산으로 진입한다. 도심과 산의 경계에서 호박잎을 보았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호박과 비슷한 종이 있는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누구도 이곳에 호박을 심을 리가 없었고, 근처에 호박씨가 흘러 들어올 만한 텃밭 같은 것도 없었으며 이곳은 주거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잎의 모양새가 너무나 호박잎이어서(나는 식물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 번 먹어본 채소의 모양새는 잘 기억한다) 그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호박일까, 아닐까 생각하며 여름을 보냈다. 그렇게 10월이 왔다. 거대한 잎 사이에서 공룡같이 거대한 노란 꽃을 피우고, 그 밑에는 동그란 호박이 보였다. 아, 호박이구나. 어쩌다 이곳에 호박이...

정고메 스프카세
호박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식물도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느다란 덩굴손을 사방으로 바닥과 담벼락을 더듬어가며 힘차게 전진해 간다. 인간의 속도로 보면 호박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호박의 속도로 보자면 온 힘을 다해 돌진 중이다. 공룡 같은 기세의 잎들은 햇빛과 공기 중의 생명력을 빨아들여 호박에 저장한다. 호박 하나를 키우려면 건강한 잎사귀 4장 이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서리가 내리면 호박 잎사귀는 열매로 영양분을 모조리 저장하고서는 자연으로 돌아간다.

호박은 못 먹을 것이 없다. 연한 잎을 따서 삶아 먹기도 하고, 애호박은 볶음이나 조림 구이도 해 먹고, 늙은 호박은 겨우내 보관했다가 비상식량처럼 활용한다. 게다가 호박의 씨앗도 먹는다. 호박 하나엔 온 우주가 담겨 있다.

올여름과 가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웠다. 따뜻한 기후를 좋아한다는 호박에게도 이 정도의 폭염은 원하던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수상하게 더운 날씨 때문에 호박의 꽃과 열매도 10월이 되어서야 조심스럽게 보였던 걸까? 사람도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생사를 넘나들 정도로 더웠던 올해의 폭염. 그 더위를 버틴 호박이 용맹하게 느껴졌다. 호박은 당당하고 용감하며 신비스럽고 무한한 세계를 품고 있으며, 그것들은 모두 내가 닮고 싶은 모습들이다. 부엌 한편에 조용히 자리 잡은 호박을 바라보며 야요이 쿠사마가 "호박, 호박 때문에 살아내는 것이다"라고 했던 호박에 대한 시와 작업들을 떠올렸다.

애호박은 풋 상태로 수확한 호박이다. 비닐 속에 들어있는 애호박은 개량 품종으로 비닐을 씌워서 그 모양에 맞춰 자라게 한 것이다. 늦여름과 가을에는 둥근 애호박을 먹을 수 있다. 단맛이 있고 수분이 많으며 껍질과 씨앗은 늙은 호박보다 연해서 다양한 반찬과 국으로 먹을 수 있다. 여러 종류의 호박이 있지만, 오늘 소개할 요리들은 10월에 먹으면 더욱 좋을 '둥근 호박'을 주재료로 했다. 이 요리들과 함께 호박으로부터 전쟁 같은 하루를 버틸 힘을 받아보시길 바란다.
 

하루를 버틸 힘을 주는 호박 레시피

1. 둥근 호박구이

둥근 호박은 수분이 많아서 볶거나 구울 때 잘 부서진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소금이다. 호박을 슬라이스한 뒤 소금을 미리 앞뒤로 뿌려두면 수분이 빠져나가고 단맛은 더욱 강해진 호박구이를 맛볼 수 있다. 발사믹 식초와 간장을 섞은 드레싱을 얹어 먹으면 고급 요리를 먹는 기분이다. 드레싱에는 발사믹 대신 사과식초를, 올리브유 대신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써도 좋다.

정고메 스프카세 
- 재료: 둥근 호박 350g, 소금 1/2T, 올리브유 약간
- 드레싱 양념: 올리브유 1T, 발사믹 식초 1/2T, 간장 1T
*1T는 밥숟가락, 1t는 찻숟가락에 평평하게 담은 것을 기준으로 했다.

호박은 1cm 두께로 슬라이스하고 앞뒤로 소금을 뿌려 10분간 둔다. 빠져나온 수분은 키친타월로 닦아낸다. 양념을 모두 섞어 드레싱을 만들어 둔다. 예열한 팬에 올리브유를 한 바퀴 두르고 호박을 약간 약한 불로 굽는다. 노릇하게 익으면 뒤집어 마저 굽고 접시에 담는다. 드레싱 양념을 뿌려주면 완성.

2. 호박 수프(2회분)

호박의 맛으로만 먹는 담백한 수프. 열량도 100kcal가 되지 않는다. 어떤 양념에도 방해받지 않은, 오로지 호박만의 향과 풍미를 살린 간단한 수프다. 한식 느낌의 호박국처럼 먹고 싶다면 올리브유 대신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이용한다. 바싹하게 구운 시큼한 사워도우 빵과 함께 먹으면 조합이 좋다.

정고메 스프카세 
- 재료: 둥근 애호박 중간 크기 1/2개 (200g), 물 450ml, 후추 약간
- 양념: 소금 1/5t, 올리브유 1T

둥근 호박은 2cm 크기로 깍둑썰기한다. 냄비에 호박과 올리브유, 소금을 넣고 볶는다. 호박이 익어서 수분이 나올 때쯤 물을 넣고 뚜껑 덮고 13분간 푹 끓인다. 맛을 보고 소금을 모자란 간을 맞춘 뒤 그릇에 담아 올리브유, 후추를 뿌려 마무리한다.

3. 얼큰 호박탕(2~3회분)

해산물을 넣은 것처럼 감칠맛이 뛰어난 얼큰한 호박탕. 가을에 자주 먹곤 했던 호박을 넣은 꽃게탕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어 좋아하는 요리다. 감칠맛의 비법은 된장을 미리 볶는 것과 다시마 한 장을 넣는 것이다. 탕을 끓이기 전 들기름에 된장 한 스푼을 볶아주면 된장의 단백질이 기름과 열에 마이야르 현상이 생기면서 감칠맛을 끌어올릴 수 있다. 부추 대신 미나리나 파를 넣어도 좋다.

정고메 스프카세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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