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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재선충병④] 예산은 왜 부족한가

”돈이 없어서 나중에“


재선충 감염 소나무가 많은 마을에 갈 때마다 지자체에 벌채를 요청한 적 있느냐고 주민들에게 매번 물어봤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당장 베어낼 수 없다는 지자체의 답변을 자주 들었다는 것입니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기간이 10월~3월까지로 제한돼 있는 것과 별개로 예산이 없어 당장 베어내지 못한다는 소리입니다. 재선충 감염 소나무 미방제율은 올해 7월 기준 24%로, 전국에 죽은 소나무 약 47만 그루가 현장에 남아있습니다. 단순히 시간이 부족해 베어내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돈이 없어서 베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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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예산, 3월에 다 썼다“


소나무재선충병 예산은 국비와 지방비로 구분해 살펴봐야 합니다. 먼저 국비는 해마다 정부에서 산림청에 배정해 주는 돈입니다. 산림청은 이 돈을 다시 각 지자체에 상황을 고려해 배분합니다. 지방비는 각 지자체에서 마련한 돈입니다. 지자체는 국비와 지방비를 가지고 한 해 동안 재선충 방제를 합니다. 국비와 지방비를 다 쓰면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지자체는 예비비를 긴급 편성해 투입합니다.
 
재선충병 피해가 극심한 경주시는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항상 예산 부족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경주시는 올해 국비 약 35억 원, 지방비 약 14억 원(도비 4.4억, 시비 약 10억)을 받았습니다. 경주시 관계자는 이 돈을 올 3월에 대부분 다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숲 가꾸기 사업을 위해 마련한 예산 등을 끌어다 쓰고 있고, 이마저도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현장에서는 방치된 재선충 감염 소나무가 더 잘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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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충병 투입 예산, 왜 줄었나?


최근 5년간 산림청이 받은 소나무재선충 예산을 살펴봤습니다. 산림청 관계자는 재선충 감염목 수와 예산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전체적인 추이는 엇비슷합니다. 2020~2022년 간 연간 투입 예산은 500억 원대입니다. 이때 재선충 감염 소나무류도 30~40만 그루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2023년 감염 소나무류가 106.5만 그루로 정점을 찍었을 때 예산은 약 933억 원으로 함께 뛰었습니다. 감염 소나무류가 3배 가까이 급증한 것에 비해 예산은 2배 정도 늘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예산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2023년에 방제를 끝내지도 못하고 남은 소나무류가 약 28만 그루가 생겼습니다.
 
2024년도는 감염 소나무류 수와 예산이 함께 줄었습니다. 감염 소나무류 수가 106.5만 그루에서 89.9만 그루로 줄었습니다. 예산도 이에 따라서 약 933억 원에서 약 804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산림청 홈페이지에서 <2024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사업설명자료>를 살펴봤습니다. 2023년 대비 2024년에 예산이 감소한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생활권수목진료비, 항공 방제비용을 아예 없앤 게 눈에 띄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피해고사목 방제 비용이 100억 원 이상 줄었습니다. 재선충 감염 소나무 숫자가 줄었으니 방제 비용도 이에 따라 줄인 셈입니다.
 

2023년 미방제 소나무, 감안했나?

2024년에 소나무재선충병 예산을 짤 때 반영되지 못한 게 있습니다. 2023년에 발생한 감염 소나무 가운데 ‘미방제’ 잔여 부분입니다. 그 수치는 약 28만 그루입니다. 28만 그루의 죽은 소나무도 베어내야 하는 나무들이지만, 이 나무들을 베어낼 때 발생한 비용에 대해서는 2024년 예산에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지자체는 2024년 배정된 예산을 가지고 2023년에 베어내지 못한 재선충 감연 소나무도 방제를 해야 하고, 2024년에 신규 발생 건도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처리해야 합니다. 마을 주민들이 민원을 넣어도 돈이 없어서 벨 수 없다는 말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이 신규 발생 고사목 숫자만 따져서 피해고사목 방제 비용을 책정할 게 아닙니다. 잔여량을 함께 고려했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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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방제 예산 전액 삭감


2024년 예산에서 재선충병 항공 방제 예산이 빠졌습니다. 2023년에는 8.9억 원이 배정됐습니다. 항공방제는 말 그대로 헬기 등을 이용해 항공에서 약을 살포해 방제를 하는 작업입니다. 정부는 항공방제를 올해 예산에서 뺀 대신에 지상방제 예산을 9.8억 원에서 17.8억 원으로 2배 가까이 늘렸습니다. 항공 방제 예산이 빠진 이유 중 하나는 임업 종사자들의 민원 때문입니다. 약제의 성분이 농작물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효과가 있는 방제를 못하고 있는 셈인데, 이 부분에 대한 조정도 다음 해 예산 배정 때 고려해봐야 할 것입니다.
 

결국엔 돈이지만…예산 증액이 능사인가?


언론은 소나무재선충병의 심각성을 해마다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예산 증액의 목소리가 함께 대두됩니다. 이번에도 취재진이 현장을 둘러봤더니 결국 돈이 없어서 방제를 못한다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인력과 자원의 추가 확보가 결국에는 재선충병 확산을 저지하고, 인간의 안전을 위협하는 소나무를 우선적으로 제거할 수 있게끔 만들어줄 것입니다. 간단하면서도 해결하기 참 어려운 난제인데, 산림청이 기획재정부 등을 상대로 재선충병 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잘 설명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와 반대로 예산 증액 문제에 회의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산림 당국의 재선충병 방제 실패를 단순히 돈 부족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방제 전략에 문제가 있다면 방제 전략을 재수립해야지 예산을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코로나19처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염병이 아닌데, 확산을 막지 못한 것은 인재라는 지적입니다.  
 

뒷전으로 밀리는 재선충병 방제


소나무재선충병이 다수로부터 그 심각성에 대해 공감을 받지 못하는 부분도 문제입니다. 산림청은 현재 방제 부분에서 산사태, 산불, 재선충병을 다루고 있습니다. 산사태와 산불은 인명피해, 재산피해와 직결됩니다. 당장 눈앞에 펼쳐질 피해가 그려지기 때문에 보다 많은 관심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재선충병은 당장은 소나무 고사 피해에 그칩니다. 당장 위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명 피해가 당장 일어날 것 같지 않으니 뒷전으로 밀립니다. 죽은 소나무가 넘어지면서 사람 머리를 치고, 토사 붕괴로 마을이 매몰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장에서는 이미 이러한 안전사고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이 많지만 공감을 받지 못합니다.
 
분포 지역의 특성도 영향을 끼칩니다. 피해는 현재 영남 지역이 극심하고, 강원 지역에서도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수도권에서는 경기 북부를 제외하고는 심각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지방에 국한된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론 역시 지방에서는 전부터 큰 문제로 다루고 있지만, 수도권에서는 그만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습니다. 도시와 농촌의 정서적 차이로도 볼 수 있습니다. 도심 지역 사람들에게 소나무는 조경에 불과할 뿐 일상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농촌에서는 주거 문제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생업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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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제 전략, 예산‧인력, 시민 공감


결국 소나무재선충병의 안전 위협 문제는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일단 방제 전략을 일부 수정해야 합니다. 방제 기간을 한정한 게 사람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한다는 관점에서 바람직한지 곱씹어봐야 합니다. 이제는 특정 기간이 아닌 '연간 방제'를 검토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산 증액과 인력 증원입니다. 현장에서는 결국 돈과 사람 부족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증액과 증원을 경계하되 적재적소에 돈과 사람이 추가 투입돼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민 공감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재선충병은 생소합니다. 재선충이 산림과 주민 안전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널리 알리는 것도 산림 당국이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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