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칼부터 무늬 벽돌까지…백제인의 마음 채운 '상상의 동물'

은은한 불빛이 일렁이는 전시장.

책상 위에 두툼한 '책' 한 권을 올리자 벽면이 환해졌습니다.

눈앞에 등장한 건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칼.

1천500년 전 세상을 떠난 백제 무령왕(재위 501∼523)의 왼쪽 허리 부근에서 출토된 유물입니다.

두 마리의 용이 교차한 모습이 화려한 금빛에 담겨 있었습니다.


반면, 왕비의 무덤에서 발견된 은팔찌 속 용은 머리를 뒤로 돌린 모습이었습니다.

혀를 길게 내민 채 꼬리를 둥글게 말았고 한 쌍의 팔찌에 한 마리씩 조각돼 있어 '왕의 용'과는 달랐습니다.

실제 유물을 3차원(3D)으로 스캔해 펼쳐낸 영상은 눈으로 보기 어려운 용 문양을 자세히 비추며 특징을 소개했습니다.

백제 문화에 깃든 용의 의미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립니다.

내일 국립공주박물관에서 개막하는 특별전 '상상의 동물 사전 - 백제의 용(龍)'을 통해서입니다.

갑진년(甲辰年)을 맞아 열리는 전시는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국보 '무령왕비 은팔찌'를 비롯해 총 174점의 유물로 백제인들이 용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봅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상상의 동물 사전' 책이 펼쳐진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선민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전시 설명회에서 "옛사람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신과 같은 존재를 믿었는데 그렇게 만들어 낸 존재 중 하나가 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용은 십이지(十二支) 동물 가운데 유일한 상상 속 동물입니다.

비와 바람을 일으키는 특별한 능력을 갖췄다고 여겼고, 지배자를 상징하는 존재이자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믿었습니다.

전시는 용의 머리 모양을 상상해 만든 용머리 조각, 용무늬를 새긴 목판, 용무늬 벽돌, 숙종(재위 1674∼1720)이 돌에 쓴 '용' 글씨 등 다양한 용 관련 유물을 소개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용 유물 3종입니다.

용과 봉황으로 장식된 고리 자루 큰 칼, 글자를 새긴 용 무늬 은팔찌, 받침이 있는 은잔 등은 모두 지배자의 권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용의 의미를 부각하는 것입니다.

기존 전시와 달리 칼을 세워 두거나 팔찌 안 글씨가 보이도록 진열한 점에 눈에 띕니다.

3D 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영상과 함께 보면 유물을 보다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백제 사람이 용을 어떻게 여기고,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주목한 전시지만, 주변 국가에서 용을 어떻게 다뤘는지 함께 다룬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낙랑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는 금실과 금 알갱이를 이용해 화려하게 장식한 용 7마리가 돋보이는 유물입니다.

경주 미추왕릉 앞에 있는 무덤에서 발견한 보물 '도기 서수형 명기'는 곳곳에 뾰족한 뿔이 달려 있고 혀를 길게 내민 모양이 독특합니다.

백제 문화권에서 출토된 유물을 비롯해 고리 자루 큰 칼 15점을 한데 모은 것도 눈에 띕니다.


다만, 백제 금속 공예 최고의 걸작으로 여겨지는 국보 '백제 금동대향로'가 함께 전시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금동대향로는 하늘로 치솟는 듯한 용 한 마리가 향로를 떠받드는 형태로 잘 알려졌습니다.

박물관 측은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향로의 받침 재현품을 제작해 전시를 보는 관람객들이 용의 형태를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나 학예연구사는 백제의 용이 단순한 장식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며 용이라는 주제로 풀어낸 이번 전시를 통해 유물을 새롭게 바라보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에 맞춰 용의 문화적 의미를 주제로 한 특별 강연회를 두 차례 열 계획입니다.

매월 둘째 주부터 넷째 주 토요일에는 가족 체험 행사도 열며, 전시회는 내년 2월 9일까지 이어집니다.


(사진=연합뉴스)